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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3년 9월 30일 토요일 ·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3.09.29|조회수464 목록 댓글 11

제1독서
▥ 즈카르야 예언서의 말씀 2,5-9.14-15ㄷ

 

5 내가 눈을 들어 보니, 손에 측량줄을 쥔 사람이 하나 있었다.
6 내가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묻자, 그가 나에게 “예루살렘을 측량하여, 그 너비와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러 간다.” 하고 대답하였다.
7 그때에 나와 이야기하던 천사가 앞으로 나가자, 다른 천사가 그에게 마주 나와 

8 말하였다.
“저 젊은이에게 달려가서 이렇게 일러 주어라.
‘사람들과 짐승들이 많아 예루살렘은 성벽 없이 넓게 자리 잡으리라.
9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예루살렘을 둘러싼 불 벽이 되고 그 한가운데에 머무르는 영광이 되어 주리라.
14 딸 시온아, 기뻐하며 즐거워하여라.
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15 그날에 많은 민족이 주님과 결합하여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9,43ㄴ-45

 

그때에 

43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44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45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거룩한 변모를 이루신 다음, 산에서 내려와 더러운 영에 들린 아이를 고치시자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합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십니다.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루카 9,44)

그러나 제자들은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루카 9,45 참조)

이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믿음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씀은 믿음의 순명과 사랑의 마음이 아니고서는 따를 수가 없나 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합니다.

“하느님이 너에게 바라시는 것은 말이 아니라 마음이다.”

사실 성경을 읽다 보면, 때로는 성경본문이 아무 말씀도 안 할 때도 있고, 전혀 알아들을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불투명한 말이나 난해할 때도 있습니다.

곧 말씀이 뜻을 감추고 침묵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씀의 침묵은 우리의 대화가 단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침묵으로도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며, 바로 그것을 통하여 성경 본문에 철저히 복종해야 함을 깨우쳐주기도 합니다.

또한 성경을 읽는 동안 그분을 기다리도록 도와주고, 우리 힘만으로는 이해할 수도, 기도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우쳐주며, 우리를 훨씬 능가하는 분 앞에 서 있다는 의식과 함께 사랑의 자세를 깨우쳐주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 채로도 사랑의 마음, 순명과 믿음으로 응답하고 따르도록 인도합니다. 
그래서 오리게네스는 알아듣기 어려운 성경 본문을 접근할 때, 중요한 것은 ‘신앙’이라고 이렇게 강조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믿으십시오.

그러면 그대가 장애라고 여겼던 대목들이 실로 크고 거룩한 유익이 됨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필로칼리아)

또한 사막의 마카리오는 역시 믿음으로 먼저 ‘실천’할 것을 강조합니다.
“여러분은 이해할 수 있는 분량에 만족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도록 애쓰시오. 
그리하면 이해되지 않은 채 남아 있던 바가 여러분의 영에 밝히 드러날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들은 말씀을 비록 알아듣지 못한다 하더라도, 알아듣지 못한 채로 말씀하신 분에 대한 ‘믿음으로 실천’하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곧 신비를 살라는 말씀입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이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인생은 풀어야 하는 숙제가 아니라, 살아야 할 신비이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성으로 이해하는 바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신비를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니 삶은 풀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당신께 오라고 주어진 선물입니다. 

그러기에 말씀, 혹은 삶은, 품고 살아야 하는 선물이요, 그것을 통하여 그것을 주신 분을 만나야 하는 신비라 할 수 있습니다. 

이토록 우리가 참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은, 바로 그분과의 만남의 신비를 사는 일입니다.

곧 우리는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죽음으로서 만나게 되는 신비를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사람의 아들이 사람의 손에 넘겨져 죽음으로써 되살아나셨듯이, 오늘 우리도 형제들의 손에 넘겨져 죽음으로써 되살아나는 부활의 신비의 삶을 살아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루카 9,45)

 

주님!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 이해하지 못해도 신비를 살아가게 하소서.

죽음에 넘겨져 되살아나는 부활의 신비를 살게 하소서.

죽어 사라져 되살아나는 사랑의 신비를 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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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안나쌤 | 작성시간 23.09.30 아멘!
  • 작성자atti | 작성시간 23.09.30 아멘.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3.09.30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앞동산 | 작성시간 23.09.30 아 멘 !
    감사합니다 ^^
  • 작성자가을비 | 작성시간 23.10.01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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