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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3년 11월 2일 목요일 ·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 둘째 미사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3.11.01|조회수554 목록 댓글 9

제1독서
▥ 지혜서의 말씀 3,1-9

 

1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2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3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4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5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이 당신께 맞갖은 이들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6 그분께서는 용광로 속의 금처럼 그들을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7 그분께서 그들을 찾아오실 때에 그들은 빛을 내고 그루터기들만 남은 밭의 불꽃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
8 그들은 민족들을 통치하고 백성들을 지배할 것이며 주님께서는 그들을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9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제2독서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 5,17-21

 

형제 여러분, 

17 한 사람의 범죄로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죽음이 지배하게 되었지만, 은총과 의로움의 선물을 충만히 받은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통하여 생명을 누리며 지배할 것입니다.

18 그러므로 한 사람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았듯이,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어 생명을 받습니다.
19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듯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20 율법이 들어와 범죄가 많아지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
21 이는 죄가 죽음으로 지배한 것처럼, 은총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는 의로움으로 지배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11,25-30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26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7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위령의 날>

11월은 정녕 신비의 달입니다.

 절로 죽음과 비움의 신비를 묵상하게 합니다.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만들고, 우리를 존재의 심연으로 이끌고 갑니다. 

마른 풀 한 줄기를 침대로 삼아 내려앉은 서리에서도, 뒹구는 낙엽을 깨우며 소스라치게 부는 바람에서도, 우리는 그 만남과 죽음의 신비를 봅니다. 

사실 우리는 두 개의 탄생과 두 개의 죽음의 문을 통해 이 변화의 길을 갑니다.

곧 첫 번째 죽음과 탄생의 문은 어머니의 탯줄을 끊는 죽음과 동시에 태어나는 이 세상에서의 지상 탄생이며, 두 번째 죽음과 탄생의 문은 이 세상에서의 죽음과 동시에 태어나는 하늘나라에서의 천상 탄생입니다.

 

두 개의 문을 통과할 때마다 눈을 감고 낯선 곳으로 오고 낯선 곳으로 가기에 두려움에 떱니다.

그러나 첫 번째 문을 통과할 때 세상의 부모들이 기다리며 기뻐하였듯이, 두 번째 문을 통과하면 기다리며 기뻐하는 천상 형제들을 만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은 하나의 통로요, 만남입니다. 

이 세상으로 오는 통로요, 이 세상과의 만남이며, 하늘나라로 가는 통로요, 하늘나라와의 만남입니다.

 

사실 오늘 우리도 먼저 간 이들의 죽음을 통해 이 자리에 와서 서로 만나고 있습니다.

곧 그들의 죽음이 오늘 우리 만남의 통로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죽음에 대해 묵상하는 것은 죽은 다음에 오는 미지의 세계가 아니라, 생사가 갈라질 수 없게 펼쳐져 있는 삶의 세계를 성찰하기 위해서입니다.

곧 현재를 충실히 죽고, 현재를 충실히 살기 위해서입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완성을 향한 삶이요,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에티우스는 말합니다.
“흘러가버리는 지금이 시간을 만들고, 머물러 있는 지금이 영원을 만든다.” 

 이처럼 죽음의 질이 삶의 질을 결정짓고, 삶의 질이 죽음의 질을 결정짓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의 중요함을 파우스티나 성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이 첫 순간이고 마지막 순간이며 유일한 순간이다” 

오늘은 위령의 날입니다. 

죽음이 신비한 것은 죽음이 한 생을 사라지게 하기 때문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 생명의 신비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 심오한 진리를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자 내가 여러분에게 신비 하나를 말해주겠습니다. 

우리 모두 죽지 않고 다 변화할 것입니다.

~ 죽은 이들이 썩지 않는 몸으로 되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

이 썩는 몸이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이 죽는 몸이 죽지 않는 것을 입습니다.”

(1코린 15,51-56)

 

<오늘의 말·샘 기도>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서 배워라.”

(마태 11,29)

 

주님!

당신의 멍에를 메게 하소서.

위에 있지만 짓누르지 않는, 묶지만 옭아매지 않는,

오히려 편하게 하는 사랑의 멍에를 메게 하소서.

함께 지며 나누는, 함께 가며 끌어주는, 그 손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

동행해 주고 길이 되어 주는, 온유하고 겸손하신 그 마음을 따라 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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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11.02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가을비 | 작성시간 23.11.02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atti | 작성시간 23.11.02 Amen.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3.11.02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혜원 | 작성시간 23.11.02 아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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