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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3년 11월 6일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3.11.05|조회수423 목록 댓글 10

제1독서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 11,29-36

 

형제 여러분,
29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습니다.
30 여러분도 전에는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들의 불순종 때문에 자비를 입게 되었습니다.
31 마찬가지로 그들도 지금은 여러분에게 자비가 베풀어지도록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지만, 이제 그들도 자비를 입게 될 것입니다.
32 사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불순종 안에 가두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려는 것입니다.
33 오!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정녕 깊습니다.
그분의 판단은 얼마나 헤아리기 어렵고 그분의 길은 얼마나 알아내기 어렵습니까?
34 “누가 주님의 생각을 안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누가 그분의 조언자가 된 적이 있습니까?
35 아니면 누가 그분께 무엇을 드린 적이 있어 그분의 보답을 받을 일이 있겠습니까?”
36 과연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분께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14,12-14

 

그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을 초대한 바리사이들의 한 지도자에게 

12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13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14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 오히려 가난한 이들, 눈 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오늘 복음의 앞 장면에서,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의 태도에 대해서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오늘 복음에서는 초대를 베푸는 이의 태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루카 14,13-14)

예수님께서는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각별한 관심과 사랑을 베풀도록 요청합니다. 

친구, 형제, 친척, 부유한 이웃에 대조되는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 먼 이들은 보답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로 제시됩니다. 

이들에게 행한 은밀한 자선은 하느님께 대한 응답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자선을 숨겨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주실 것이다.”

(마태 6,4)

이는 단순히 초대한 이들에게 보답을 바라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 나아가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과 연대에 대한 말씀입니다. 

또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과 연대는 단순히 자선이나 시혜를 베푸는 인간애 차원의 선행을 넘어, 신앙행위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루카 14,14)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고통 받는 가난한 이 안에 그리스도께서 특별히 현존하심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심판에 대한 비유'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주었다.”

(마태 25,35)

이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자선을 하늘나라의 보상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삼기보다 곤경에 처한 이들에 대한 사랑의 동기에서 해야 함을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이러한 가난한 이에 대한 우선적 선택은 가난한 이 안에서 예수님을 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복음의 기쁨>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고통 받는 그리스도를 알아 뵙도록 부름 받고 있습니다.”(210항) 

또 '새로운 복음화'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교회에게 가난한 이들을 위한 선택은 문화, 사회, 정치, 또는 철학의 범주 이전에 신학의 범주입니다. 

~ 이 선택은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우리가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신 하느님에 대한 우리 그리스도인의 믿음에 포함된 것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저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바랍니다.

~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통하여 우리 자신이 복음화 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새로운 복음화는 가난한 이들의 삶에 미치는 구원의 힘을 깨닫고 그들을 교회 여정의 중심으로 삼으로라는 초대입니다.”

(복음의 기쁨. 198항)

그리고 지난 2017년에는 연중 제33주일을 '제1차 세계 가난한 이들의 날'로 발표하시고,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1요한 3,18)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복음의 길’로 나아갈 바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깨우쳐주는 분명한 가르침입니다.

곧 우리는 작고 가난한 이, 가난한 교회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 가난한 이들을 초대하여라.”

(루카 14,12-13)

 

주님!

당신 말씀의 잔치에서 사랑을 먹었으니, 당신의 향기를 뿜게 하소서.

당신 식탁의 잔치에서 사랑을 먹었으니, 당신의 생명을 건네게 하소서.

이제는 잔치를 베풀 줄 알게 하소서.

당신이 사랑하는 작은이들을 초대하여 생명의 잔치를 베풀게 하시고,

저 자신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내어주는 잔치가 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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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3.11.06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바람의노래 | 작성시간 23.11.06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십자봉 | 작성시간 23.11.06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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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앞동산 | 작성시간 23.11.06 아 멘 !
    감사합니다 ^^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11.06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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