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이영근 신부 강론

2023년 11월 26일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3.11.25|조회수525 목록 댓글 10

제1독서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 34,11-12.15-17

 

11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내 양 떼를 찾아서 보살펴 주겠다.
12 자기 가축이 흩어진 양 떼 가운데에 있을 때, 목자가 그 가축을 보살피듯, 나도 내 양 떼를 보살피겠다.
캄캄한 구름의 날에, 흩어진 그 모든 곳에서 내 양 떼를 구해 내겠다.
15 내가 몸소 내 양 떼를 먹이고, 내가 몸소 그들을 누워 쉬게 하겠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16 잃어버린 양은 찾아내고 흩어진 양은 도로 데려오며,
부러진 양은 싸매 주고 아픈 것은 원기를 북돋아 주겠다.
그러나 기름지고 힘센 양은 없애 버리겠다.
나는 이렇게 공정으로 양 떼를 먹이겠다.
17 너희 나의 양 떼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양과 양 사이, 숫양과 숫염소 사이의 시비를 가리겠다.

 


제2독서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 15,20-26.28

 

형제 여러분,
20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
21 죽음이 한 사람을 통하여 왔으므로 부활도 한 사람을 통하여 온 것입니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
23 그러나 각각 차례가 있습니다. 

맏물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분께 속한 이들입니다.
24 그러고는 종말입니다.
그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권세와 모든 권력과 권능을 파멸시키시고 나서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넘겨 드리실 것입니다.
25 하느님께서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아래 잡아다 놓으실 때까지는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셔야 합니다.
26 마지막으로 파멸되어야 하는 원수는 죽음입니다.
28 그러나 아드님께서도 모든 것이 당신께 굴복할 때에는, 당신께 모든 것을 굴복시켜 주신 분께 굴복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 것입니다.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25,31-4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1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32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33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
34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35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36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37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38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39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40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41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42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43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44 그러면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45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46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오늘은 전례력으로 연중 마지막 주일입니다. 

우리는 이날을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로 지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왜 왕이며, 어떤 왕일까요?

오늘 우리가 들은 말씀전례는 ‘예수님의 다스림’을 세상 권력의 다스림과는 분리시킵니다.

곧 세 개의 독서는 ‘돌봄과 사랑’, ‘죽음을 쳐부숨과 살림’, 그리고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시는 왕권’을 그리고 있습니다. 

제1독서는 에제케엘 예언자가 예고한 ‘왕이신 목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잃어버린 양은 찾아내고 흩어진 양은 도로 데려오며, 부러진 양은 싸매주고 아픈 것은 원기를 북돋아줍니다.”

(에제 34,16)

곧 양떼를 먹이시고 보살피시며, 공정으로 양과 양 사이, 숫양과 숫염소 사이의 시비를 가리십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되살아나 맏물이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재림 때에 모든 죽은 이들을 살리시고 ‘모든 권세와 권력과 권능을 파멸시키시고 나서,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넘겨드릴 것’(1코린 15,24)임을 밝혀줍니다. 

그리고 복음은 마지막 때의 심판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는 우리에게 마지막 때를 대비하게 해주는 동시에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깨우쳐줍니다. 

김준엽 시인의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이란 시가 떠오릅니다.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나는 나에게 많은 날들을 지내오면서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어 보겠지요.
그러면 그 때 가벼운 마음으로

'사람들을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많은 이들을 사랑해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나는 나에게 많은 날들을 지내오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일이 없느냐'고 물어보겠지요.
그러면, 그 때 얼른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아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나는 가족에게 많은 날들을 지내오면서
'부끄러움이 없느냐'고 나에게 물어보겠지요.
그러면, 그 때 반갑게 대답하기 위해

나는 지금 가족의 좋은 일원이 되도록
내 할 일을 다 하면서 가족을 사랑하고

부모님께 순종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나는 나에게 많은 날들을 지내오면서
'이웃과 사회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고 물어 보겠지요.
그러면 그 때 나는 힘주어 대답하기 위해 

지금 이웃에 관심을 가지고
좋은 사회인으로 살아가겠습니다.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나는 내 마음 밭에서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어 보겠지요.
그러면, 그 때 자랑스럽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내 마음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 좋은 말과 좋은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야겠습니다.

이 시를 쓴 시인은 중증 뇌성마비 환자입니다. 

이 시가 손가락 하나조차도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한 참담한 현실 속에서 입에 펜을 물고 쓴 시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내용이 더욱 절절해집니다. 

이 시에는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그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을 하겠습니다.”라고 반복됩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나는 ~을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설교 마지막 부분에서 결론처럼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나더러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마태 7,21)

이는 마지막 때 우리가 맞이할 '심판'의 기준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그것은 기도나 신비 체험이나 관상이 아니라, 기적이나 예배나 성사나 봉사가 아니라, 오직 ‘사랑의 실천’임을 밝혀줍니다.

 

이를 한스 폰 우르 발타살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서 심판받는 기준은 ‘그가 얼마나 종교적 체험을 했느냐?’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느님과 이웃을 얼마나 많이 사랑했느냐?’는 것이다.”

오늘 복음의 '심판'에서도, 처벌을 받은 ‘왼편’의 사람들은 무슨 큰 범죄나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이 아니라, 단지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사랑에 소극적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곧 사랑하지 않고 자비를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구원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사랑을 실천했는가?’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나에게 해준 것이다.”

(마태 25,40)

주님께서는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을 당신의 ‘형제’라고 부르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해준 것이 바로 당신에게 해준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작은이를 사랑하는 것은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 일이 됩니다. 

 

<오늘의 말·샘 기도>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마태 25,40)

 

주님!

어느 누구에게나 무관심하지 않게 하소서.

어느 누구든지 하잖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나에게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가 존귀하기에 귀중하게 여길 줄 알게 하소서.

결코 당신의 선물을 보잘 것 없이 여기지는 말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atti | 작성시간 23.11.26 아멘.
  • 작성자쉬리* | 작성시간 23.11.26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바람의노래 | 작성시간 23.11.26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가을비 | 작성시간 23.11.26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3.11.26 아멘! 감사합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