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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3년 12월 31일 주일 ·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3.12.30|조회수522 목록 댓글 9

제1독서
 집회서의 말씀 3,2-6.12-14

 

2 주님께서 자녀들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시고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권리를 보장하셨다.
3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죄를 용서받는다.
4 제 어머니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보물을 쌓는 이와 같다.
5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자녀들에게서 기쁨을 얻고 그가 기도하는 날 받아들여진다.
6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장수하고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이는 제 어머니를 편안하게 한다.
12 얘야, 네 아버지가 나이 들었을 때 잘 보살피고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슬프게 하지 마라.
13 그가 지각을 잃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그를 업신여기지 않도록 네 힘을 다하여라.
14 아버지에 대한 효행은 잊히지 않으니 네 죄를 상쇄할 여지를 마련해 주리라.

 


제2독서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말씀 3,12-21

 

형제 여러분, 

12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13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입니다.
15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또한 한 몸 안에서 이 평화를 누리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타이르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십시오.
17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18 아내 여러분,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주님 안에 사는 사람은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19 남편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아내를 모질게 대하지 마십시오.
20 자녀 여러분, 무슨 일에서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 마음에 드는 일입니다.
21 아버지 여러분, 자녀들을 들볶지 마십시오.

그러다가 그들의 기를 꺾고 맙니다.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2,22-40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36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37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38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40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사람이 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도록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의 거룩한 탄생은 하느님께서 '가정' 안으로 들어오신 사건이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가정'을 만드시며(이루시며) 오셨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으로 말미암아 가정이 엮어지고 꾸며졌기 때문입니다.

곧 공동체를 이루시며 오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땅에 오시어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시고, 관계를 맺으시는 첫 장소는 '가정'이었습니다.

당신의 오심으로 모든 것을 축복하고 새롭게 하시는 당신께서는 맨 먼저 '가정'을 축복하셨습니다. 

오늘 제1독서의 집회서(3,2-6,12-14)의 말씀과 화답송의 시편(128,1-5)의 말씀은 하느님에 대한 올바른 경외는 온전한 부모 공경으로 이어지고, 화목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을 밝혀줍니다. 

제2독서의 바오로 사도의 말씀(콜로 3,12-21)은 세속적 질서를 뛰어넘는 새로운 가정, 새로운 공동체의 모습을을 보여줍니다.

곧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서로 사랑하고 감사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공동체와 가정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복음은 아들 예수님의 봉헌을 통한 율법에 충실한 마리아와 요셉 가정의 축복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 가정을 '성가정'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이 '가정'은 아주 특별한 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혈연이나 혈육으로 맺어진 가정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곧 ‘영’으로 맺어진 가족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육신의 남편과 아내 되기를 스스로를 포기함으로 맺어진 부부인 마리아와 요셉이 있고, 아들과 아버지와 어머니로 혈육으로 묶여있지 않는 아들이 있습니다. 

그는 잃은 아들을 찾아 성전에 온 부모에게도, 소문을 듣고 말씀의 선포 현장으로 찾아온 어머니와 친척들에게도, 가나안의 혼인잔치에서도, 십자가 아래서도 어머니의 아들이 아님을 선언합니다. 

오히려 혈육을 떠나 ‘영적인 성가정’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니 단지 세례를 받은 ‘신앙인의 가정’이라고 해서 모든 가정이 ‘성가정’인 것이 아닌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영적인 가족’을 이룰 때 모름지기 '성가정'이라 할 수 있게 됩니다.

 

사실 혈육으로 맺어진 가족에 대한 애착은 때로는 오히려 ‘영적인 가족’을 이루는 데에 장애가 되기도 합니다.

가정들이 구원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가정의 이익을 도모하고 스스로를 보호하기에 몰두하기 때문입니다.

‘자애심’과 ‘이기주의’의 또 다른 형태인 배타적인 ‘가족 이기주의’를 불러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가족’은 동시에 벗어나야 할 대상이기도 합니다.

특히 수도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가 축일로 지내는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연상시킵니다. 

친교와 사랑과 통교를 이루는 일치의 공동체를 연상시켜줍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성가정’은 모든 가정뿐만 아니라 모든 수도공동체의 모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가정’이라고 해서 고통이나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시메온은 성모님께 말합니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을 표징으로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루카 2,34-35)

이 말씀과 같이 성모님은 ‘성가정’을 꾸려 나가면서 칼에 찔리는 고통을 당하셨을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와 예수님의 가정은 경제적으로 부유했거나, 혹은 근심 걱정이나 고통이 없는 가정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오히려 더 문제가정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기를 낳자마자 쫓겨 다녀야 했으며, 자신의 아기 때문에 많은 무죄한 아기들이 죽어야 했고, 혼인 전에 아기를 낳은 까닭에 이웃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살았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으며, 마리아는 이해할 수 없는 아들과 함께 살아야 했고, 아들마저 세상을 먼저 떠나버린 가정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행복한 가정이 아니었을까요?
예수, 마리아, 요셉 사이에 그 어떤 다툼도 불평도 어려움도 없어서 성가정이었을까요? 

성가정을 단순히 고통이나 어려움이 없는 가정이 아니라, 혹은 말썽 부리는 사람이 없는 가정이 아니라, 얼마나 ‘하느님의 뜻’을 따르며 사는지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시련을 통해서도 우리가 복 받을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아니, 오히려 시련을 통해서 복을 내려주시기도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혹 지금 우리의 가정이나 공동체가 비록 어려움과 아픔, 그 어떤 고통이나 시련 중에 있다고 해서 성가정이나 성수도가정이 될 수없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그 속에서 그분의 뜻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분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기 때문입니다.

 

시련이나 고통이 없는 것이 성가정인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서도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께 나아가는 가정이 '성가정'이기 때문입니다.

곧 '성가정'이란 그것은 결코 어려움이나 고통이 없거나 가난하지 않는 가정이 아니라, 그 속에서도 예수님과 함께 있는 가정을 말합니다.

곧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기에 성가정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구원에 동참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주님의 구원에 동참하는 성가정의 모습을 오늘 복음에서는 이렇게 드러내줍니다.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릴 것입니다.”(루카 2,35)

이는 어머니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속죄의 고통에 참여함을 암시해줍니다. 

곧 부모가 아들 예수님의 운명에 동참하신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곧 구원의 길에 함께 동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가정'은 예수님과 함께 구원의 길에 동참하는 가정인 것입니다.

곧 예수님과 함께 구원의 길을 가는 동반자요, 협조자요, 반려자로 살아가는 가정입니다.

곧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사는 영적인 가정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가정 축일을 맞아 우리의 가정과 공동체를 구원의 길로 동행하시 위해 오신 아기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루카 2,30)

 

주님!

구원을 보는 눈을 열어 주소서.

포대기에 싸인 아기에게서, 알몸으로 매달린 십자가에서, 구원을 보게 하소서.

양팔로 제 삶의 무력함을 쳐들고, 구원과 자비의 찬미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무력함에서 흘러내리는 당신의 구원을 따라 관상의 삶을 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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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앞동산 | 작성시간 23.12.31 아 멘 !
    감사합니다 ^^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3.12.31 아멘 신부님 푸른잎새 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atti | 작성시간 23.12.31 아멘.
  • 작성자가을비 | 작성시간 23.12.31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3.12.31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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