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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4년 1월 2일 화요일 ·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4.01.01|조회수511 목록 댓글 15

제1독서
▥ 요한 1서의 말씀 2,22-28

 

사랑하는 여러분,
22 누가 거짓말쟁이입니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아버지와 아드님을 부인하는 자가 곧 ‘그리스도의 적’입니다.
23 아드님을 부인하는 자는 아무도 아버지를 모시고 있지 않습니다.
아드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이라야 아버지도 모십니다.
24 여러분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면, 여러분도 아드님과 아버지 안에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25 이것이 그분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 곧 영원한 생명입니다.
26 나는 여러분을 속이는 자들과 관련하여 이 글을 씁니다.
27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고 지금도 그 상태를 보존하고 있으므로, 누가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기름부으심으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기름부음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가르침대로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28 그러니 이제 자녀 여러분,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그래야 그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가 확신을 가질 수 있고, 그분의 재림 때에 그분 앞에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 1,19-28

 

19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다.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 

20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
21 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묻자, 요한은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그 예언자요?” 하고 물어도 다시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2 그래서 그들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오?”
23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24 그들은 바리사이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25 이들이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26 그러자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27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8 이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당신은 누구요?”>


요한은 자신이 외치는 이가 아니고, 외치는 이의 ‘소리’라고 말합니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요한 1,23)

그런데 나는 어떠한가? 

나 자신을 외치는 이인가? 

아니면 내 안에서 외치는 이를 드러내는 소리인가? 

사실 소리를 내는 것은 피리가 아니라, 피리를 부는 이입니다.

피리가 결코 스스로 소리를 낼 수는 없는 까닭입니다.

마치 붓이 스스로 글씨를 쓰는 것이 아니라, 붓을 쥔 이가 글씨를 쓰는 것이듯이 말입니다.

 

곧 요한은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향하여 있는 화살표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한은 자신이 피리를 부는 이가 아니라, 피리를 부는 이를 담아내는 소리라고 말합니다.

 

사실 이는 진정 비워진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요한은 참으로 비워진 사람이었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채우는 데서 오는 기쁨이 아니라, 비워진 데서 오는 기쁨을 찾아야 할 일입니다. 

자신을 드러내는 데서 오는 기쁨이 아니라, 자신을 비우고 타인을 드러내는 데서 오는 기쁨 말입니다. 

 

그러기에 비워내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큰 적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그렇습니다.

자기 자신에 집착하는 사람처럼 추하게 보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 자신에 집착한 나머지 다른 이들을 자기 발밑에 두려는 것처럼 추한 모습은 없습니다. 

그런데 요한을 보십시오! 

요한은 자신의 발밑에 다른 이를 두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다른 이의 발밑으로 내려가려고 하나, 그 발밑에 내려갈 자격마저 없는 몸이라 고백합니다. 
“나는 그 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요한 1,27)

본래 주인이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종이 그 신발 끈을 풀어주는 법인데, 요한은 그런 종의 일마저도 할 만한 조격조차 없는 부당한 몸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자기 자신을 온전히 비운 까닭입니다. 

오늘 우리도 요한이 받은 질문을 세 번이나 반복해서 받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요한 1,19.21.22)
이 질문에 여러분은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나는 어떤 이인가요?’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닌 존재로 살고 있는 이인가요?’

‘예수님과는 어떤 결속을 맺고 살아가고 있는 이인가요?’ 

저는 이렇게 대답해 봅니다. 

‘나는 하느님의 사랑받는 새끼,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의 벗이요.’ 라고 말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당신은 누구요?”

(요한 1,19)

 

주님!

화살표 같은 존재가 되게 하소서.

제 자신이 아니라 당신을 향하여 있게 하소서.

붓이 되어 당신의 말씀을 삶으로 쓰게 하소서.

피리가 되어 당신의 노래를 온몸으로 드러내게 하소서.

당신의 사랑만을 드러내게 하소서.

저 자신이 아니라 주인이신 당신을 섬기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 생명의 춤이 되고, 당신 축복의 강복이 되게 하소서.

저는 당신의 사랑받는 새끼, 당신의 귀염둥이 아들, 당신의 사랑이니, 당신께만 속해 있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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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가을비 | 작성시간 24.01.02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앞동산 | 작성시간 24.01.02 아 멘 !
    감사합니다 ^^
  • 작성자감사하는 사람 | 작성시간 24.01.02 아멘
  • 작성자아낄래요 | 작성시간 24.01.02 오늘도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 작성자에메랄드3 | 작성시간 24.01.0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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