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이영근 신부 강론

2024년 1월 5일 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4.01.04|조회수514 목록 댓글 10

제1독서
▥ 요한 1서의 말씀 3,11-21


사랑하는 여러분, 

11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말씀은 이것입니다.
곧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2 악마에게 속한 사람으로서 자기 동생을 죽인 카인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가 무슨 까닭으로 동생을 죽였습니까?
자기가 한 일은 악하고 동생이 한 일은 의로웠기 때문입니다.
13 그리고 형제 여러분, 

세상이 여러분을 미워하여도 놀라지 마십시오.
14 우리는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는 것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죽음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15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모두 살인자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알다시피, 살인자는 아무도 자기 안에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16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놓으신 그 사실로 우리는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17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 그에게 마음을 닫아 버리면,
하느님 사랑이 어떻게 그 사람 안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18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음을 알게 되고, 또 그분 앞에서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20 마음이 우리를 단죄하더라도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고 또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21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이 우리를 단죄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 1,43-51

 

그 무렵 

43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기로 작정하셨다.
그때에 필립보를 만나시자 그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44 필립보는 안드레아와 베드로의 고향인 벳사이다 출신이었다.
45 이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만나 말하였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46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였다.
그러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7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48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49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50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51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어제는 세례자 요한의 증언과 안드레아의 증언을 들었는데, 오늘은 필립보의 증언과 나타나엘의 증언을 듣습니다. 

오늘 복음은 그들이 증언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한 그 ‘만남의 신비’ 안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나타나엘은 필립보로부터 예수님에 대한 증언을 들었을 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요한 1,46)하며 핀잔을 주며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와서 보시오”(요한 1,46)라는 필립보의 확신에 찬 초대에 따라 따라나섭니다.

그리고 나타나엘과 예수님의 두렵고 떨리는 ‘만남의 순간’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요한 1,47)

예수님의 신적인 전지함, 곧 ‘거짓이 없음을 보는 거짓이 없는 눈’, ‘진실을 보는 눈’에 압도당한 나타나엘은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요한 1,48)하고 당혹할 뿐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요한 1,48)

이는 예수님께서 그를 '보았다. 알았다'는 예지적인 면만이 아니라, ‘내가 주목하고 있었다.’는 사랑의 측면을 말해줍니다.

‘바라보고 계셨다’는 것, ‘진실을 바라보고 계셨다’는 것, 그것은 사랑의 다른 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는 순간, 나타나엘은 예수님께 대한 모든 의혹과 편견이 말끔히 사라지고, 마침내 믿음과 감격이 샘솟았습니다. 

사실, 바로 이 순간, 나타나엘은 비로소 메시아 예수님을 보았던 것입니다. 

자신을 바라보고 계신 그분의 눈동자 안에서 바로 자기 자신을 보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 그분을 뵙는다면, 그분의 눈동자 안에서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의 참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나타나엘은 바로 이 분이 나를 온전히 아시는 나의 구원자요, 주님임을 보았습니다. 

이를 오늘 독서에서 요한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음을 알게 되고, 또 그분 앞에서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고 또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1요한 3,19-20)

비로소 나타나엘은 눈이 맑아지고 환해져 깨달아 알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입술을 타고 신앙고백으로 흘러나옵니다.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요한1,49) 

이렇게 해서 대전환이 발생한 것입니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라고 빈정거리던 그에게 대역전이 생긴 것입니다.

‘진리’가 그를 전복시켰던 것입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그가 주님을 만난 까닭입니다.

동시에 주님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심연으로부터 만난 까닭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만남의 신비’가 믿음을 불러오게 되었고 그를 전환시켰습니다.

그리고 증언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고, 고백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 사이의 만남 안에서도 ‘진실을 보는 눈’을 지니고, 예수님과의 거룩한 ‘만남의 신비’를 담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요한 1,51)

 

주님,

땅에서 열리는 하늘을 보게 하소서.

우리의 마음이 하늘이 열리는 자리가 되고, 우리 일상의 삶이 하늘이 열리는 장소가 되게 하소서.

주님, 우리 안에 계신 당신을 보게 하소서.

오늘도 우리가 만나는 이들과 하는 일 안에서 하늘을 열고 주님의 사랑을 만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atti | 작성시간 24.01.05 Amen.
  • 작성자아낄래요 | 작성시간 24.01.05 오늘도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4.01.05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가을비 | 작성시간 24.01.05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4.01.05 아멘. 감사합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