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 3,18-23
형제 여러분,
18 아무도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가운데 자기가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지혜롭게 되기 위해서는 어리석은 이가 되어야 합니다.
19 이 세상의 지혜가 하느님께는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을 그들의 꾀로 붙잡으신다.”
20 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생각을 아신다.
그것이 허황됨을 아신다.”
21 그러므로 아무도 인간을 두고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22 바오로도 아폴로도 케파도, 세상도 생명도 죽음도, 현재도 미래도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23 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5,1-11
1 예수님께서 겐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시고, 군중은 그분께 몰려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였다.
2 그분께서는 호숫가에 대어 놓은 배 두 척을 보셨다.
어부들은 거기에서 내려 그물을 씻고 있었다.
3 예수님께서는 그 두 배 가운데 시몬의 배에 오르시어 그에게 뭍에서 조금 저어 나가 달라고 부탁하신 다음, 그 배에 앉으시어 군중을 가르치셨다.
4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5 시몬이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6 그렇게 하자 그들은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다.
7 그래서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고 하였다.
동료들이 와서 고기를 두 배에 가득 채우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
8 시몬 베드로가 그것을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9 사실 베드로도, 그와 함께 있던 이들도 모두 자기들이 잡은 그 많은 고기를 보고 몹시 놀랐던 것이다.
10 시몬의 동업자인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그러하였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11 그들은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우리가 진정 변화를 원한다면>
예수님께서는 겐네사렛 호숫가에서 시몬의 배에 타시어 군중을 가르치시고 난 다음, 시몬에게 이르셨습니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루카 5,4)
그러자 시몬이 말하였습니다.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루카 5,5)
일이 다 끝났는데도 굳이 다시 그물을 치는 일은 귀찮기도 한 일이었지만, 더 깊은 의미로, 그물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어부로서의 자신의 앎을 내려놓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고기가 없다는 것을 이미 밤새도록 확인한 그곳에 다시 그물을 친다는 것은 이미 경험을 통하여 확인한 앎을 내려놓는 일이었습니다.
고기 잡는 일에 있어서 프로였던 베드로는 그렇게 자신의 ‘앎’을 내려놓고 ‘말씀대로’을 따랐습니다.
이를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혜롭게 되기 위해서는 어리석은 이가 되어야 합니다.”
(1코린 3,18)
그렇습니다.
자신이 아는 것,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맞지 않다고 여기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에서 주님을 만나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끌어올린 그물에서 많은 고기와 함께 자신의 앎에 대한 한계도 깨달았고, 무엇보다도 많은 죄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백합니다.
“주님, ~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루카 5,8)
참으로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주님 앞에서 자신이 죄 많은 사람임을 고백합니다.
그는 그물을 치기 전에는 예수님을 어떤 한 분 ‘스승’(5,5)을 만났을 뿐이었지만, 그물을 치고 난 다음에는 오직 한 분 ‘주님’(5,8)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는 그에게 진정한 인격적인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베드로의 ‘변화’는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앎’을 버릴 때 찾아들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변화는 자신이 변화의 주체가 아니라 변화되는 객체가 될 때에 오게 됩니다.
곧 변화하는 존재가 아니라 변화되는 존재가 될 때 찾아들게 됩니다.
‘변화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를 변화시키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응답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러기에 변화는 ‘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이요, 회개 역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사랑에 대한 수락에 의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앎’을 버리고 말씀을 수용할 때 생겨나는 은총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정 변화를 원한다면, 우리의 ‘앎’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말씀을 수락해야 할 일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더 이상 ‘나의 배’가 필요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이미 ‘주님의 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뜻에 따라 항해하는 주님의 배’일 뿐인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루카 5,5)
주님!
제가 민낯으로 당신을 뵙고, 진정 죄인임을 깨닫게 하소서!
제 생각을 내려놓고 제 경험을 내려놓고, 당신의 말씀을 따르게 하소서.
제 앎을 내려놓고 제 옳음을 내려놓고, 당신 말씀을 따라 그물을 내리게 하소서!
제가 변화의 주체가 아니라 변화의 대상임을 알게 하시고,
스스로 변화하는 존재가 아니라 당신으로 하여 변화되는 존재가 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