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2026년 4월 9일 가해 부활 8일 축제 내 목요일 (루카 24,35-48) <성경을 읽어야 진리에 도달한다고 착각하는 이들에게>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6.04.09조회수130 목록 댓글 62026년 4월 9일 가해 부활 8일 축제 내 목요일 (루카 24,35-48)
복음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4,35-48
그 무렵 예수님의 제자들은 35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36 그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37 그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다.
3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39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4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 주셨다.
41 그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42 그들이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리자,
43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셨다.
44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45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46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47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48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https://youtu.be/djgfAzSIk0A?si=IaAfARxJPxvD7B0C
성경을 읽어야 진리에 도달한다고 착각하는 이들에게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루카 24,45) 부활하신 주님을 찬미합니다! 오늘 우리는 부활 팔일 축제의 목요일을 지내며,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주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시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신앙의 원리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고 연구해서 예수님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먼저 만났기 때문에 성경이 이해된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성경 강의를 하다 보면 많이 항의를 받는 것이 이 부분입니다. 여전히 가톨릭 안에서도 성경을 공부해야 예수님을 만나고 진리를 깨닫게 된다고 여깁니다. 저는 성경 연구는 개신교나 사이비처럼 잘못된 해석으로 교회가 갈라지는 원인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성체와 같습니다. 우리가 현미경으로 성체를 분석한다고 해서 그 안에서 예수님의 신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성체는 주님을 만난 사람에게만 그리스도의 몸으로 보입니다. 오늘은 이 '인식의 순서'에 대해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을 먼저 만나고 그분이 마음을 열어주어 성경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성경이 재밌어집니다.
우리는 기록이나 글을 연구하는 자아가 어떻게 실제 인격을 밀어내는지, 그 비극적인 지적 자폐의 사례를 보아야 합니다. 프랑스의 작가 기 드 모파상의 일화에는 이와 유사한 인간의 어리석음이 묘사됩니다.
어떤 아들이 아버지가 남긴 수만 장의 편지와 일기를 연구하며 평생을 보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필체, 문체, 자주 쓰는 단어의 빈도수까지 분석하여 『내 아버지의 모든 것』이라는 완벽한 평전을 썼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버지를 우주에서 가장 잘 이해하는 전문가라고 자부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가 살아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아들을 안으려 했습니다. "아들아, 보고 싶었다! 한 번만 안아보자!"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품을 거칠게 밀쳐냈습니다. "당신은 내 연구 결과와 다릅니다. 내 책에 따르면 아버지는 이런 투박한 말투를 쓰지 않고, 이런 낡은 옷을 입지도 않으십니다. 당신은 내 아버지일 수 없습니다. 가짜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바리사이들이 바로 이랬습니다. 그들은 성경이라는 기록은 달달 외웠지만, 정작 그 성경을 뚫고 살아나신 당사자가 나타나 안아주려 하자 "당신은 우리 율법 해석과 다르다"라며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실체를 만나는 것보다 자기가 분석한 지식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이젠 더 심각하게 성경을 연구할수록 왜 더 우상숭배자가 되기 쉬운지 하나의 예도 들어드리겠습니다. 20세기 초, 신학자들은 예수님의 실체를 찾겠다며 이른바 '역사적 예수 탐구'에 열을 올렸습니다. 그들은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배제하고 오직 과학적 연구로만 성경을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위대한 사상가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그의 저서 『역사적 예수 탐구』 (1906)에서 이 연구자들을 향해 통렬한 일침을 가했습니다. "수많은 학자가 성경이라는 깊은 우물 속에서 예수의 진짜 얼굴을 찾으려 들여다보았지만, 결국 그들이 본 것은 우물 바닥에 비친 '자기 자신의 얼굴'뿐이었다."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 없는 연구는 결국 '내가 믿고 싶은 예수', '내 입맛에 맞는 하느님'이라는 우상을 만들어냅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성경을 제멋대로 해석하여 자기를 신격화하는 사이비 교주가 되거나, 자기 정치적 성향에 맞게 성경을 가위질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과의 인격적 만남이 거세된 연구는 결국 '자기 숭배'로 귀결될 뿐입니다. 자기 숭배가 우상숭배의 원형입니다.
이제 올바른 성경 읽기의 사례를 보겠습니다. 당사자를 인격적으로 조우했을 때 죽은 문자가 어떻게 생명으로 부활하는지에 대한 실화입니다.
우리는 헬렌 켈러가 펌프가에서 'WATER'라는 단어를 깨달은 순간을 잘 압니다. 하지만 헬렌은 이후 '사랑(LOVE)'이라는 추상적인 단어 때문에 더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앤 설리번 선생님은 헬렌의 손바닥에 끊임없이 'L-O-V-E'라고 써주었지만, 헬렌에게 그것은 아무런 의미 없는 진동이었습니다. 헬렌은 "꽃의 향기가 사랑인가요? 태양의 온기가 사랑인가요?"라고 물으며 답답해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설리번 선생님은 헬렌을 자기 품으로 부드럽게 끌어당겨 꼭 안아주었습니다. 그리고 헬렌의 손에 "I love Helen(나는 헬렌을 사랑한단다)"이라고 썼습니다. 헬렌은 훗날 자서전 『내가 살아온 이야기』 (1903)에서 이 순간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선생님이 나를 가까이 끌어당겨 주셨을 때, 저는 비로소 그동안 읽었던 '사랑'에 관한 모든 단어와 시적 표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순간에 깨달았습니다. 그날의 포옹은 제가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이해하게 만든 결정적인 열쇠였습니다."
헬렌은 '사랑'에 관한 책을 백 권 읽어서가 아니라, 자기를 안아준 선생님의 인격(만남)을 체험했기에 비로소 종이 위의 글자들을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성경도 이와 같습니다. 주님의 살아있는 현존이라는 품에 안겨보지 못한 이에게 성경은 따분한 언어 유희일 뿐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포옹을 느끼는 순간, 성경의 모든 구절은 나를 향한 피 섞인 연서로 부활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경을 완전하게 해석해 줄 수 있는 성령을 주시는 분께 가야 합니다. 성령은 교회에 내렸습니다. 교회에 진리가 있습니다. 그 진리가 쓰인 책이 교리서입니다. 교리서는 이미 성경 해설서입니다.
성경 사도행전 8장에 나오는 에티오피아 내시의 이야기는 성경 읽기의 정석을 보여줍니다. 그는 높은 권세를 가진 사람이었지만, 이사야서를 읽으며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때 필립보가 다가가 묻습니다. "지금 읽으시는 것을 알아듣습니까?" 보통 사람 같으면 "내가 나랏일 하는 사람인데 당신이 뭘 안다고 그러냐"며 무시했겠지만, 그는 겸손하게 답합니다. "누가 나를 이끌어 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사도 8,31)
그는 필립보에게 주님의 마음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 글자가 가리키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설명을 듣는 순간, 그의 눈이 열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지식을 고집하지 않고 교회의 가르침(해석자)에 자신을 맡겼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삶을 바꾸어 세례를 받고 기쁘게 길을 떠났습니다.
성경은 '내가' 깨닫는 책이 아니라, '예수님이 보내신 이들'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책입니다. 내 식대로의 오독을 막으려면 교회의 권위 앞에 무릎 꿇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오늘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 공부를 많이 해서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사랑에 빠지면 성경은 절로 읽힙니다. 성체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믿어지는 것은 신학적 논리 때문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인 것과 같습니다.
성경을 깨달으려면 먼저 예수님을 더 사랑하도록 그분 품으로 달려드십시오. 교회 품에 달려드십시오. 교리 안에 안기십시오. 성체 품에 머무십시오. 그러면 깨닫게 되고 성경으로 증언할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