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2024년 6월 24일 월요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예언자로서의 삶, 어쩔 수 없이 고독합니다!>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4.06.25조회수163 목록 댓글 42024년 6월 24일 월요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제1독서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49,1-6
1 섬들아, 내 말을 들어라.
먼 곳에 사는 민족들아, 귀를 기울여라.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
2 그분께서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시고
당신의 손 그늘에 나를 숨겨 주셨다.
나를 날카로운 화살처럼 만드시어
당신의 화살 통 속에 감추셨다.
3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4 그러나 나는 말하였다.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 버렸다.
그러나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
5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야곱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고
이스라엘이 당신께 모여들게 하시려고
나를 모태에서부터 당신 종으로 빚어 만드셨다.
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
6 그분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미리 선포하였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3,22-26
그 무렵 바오로가 말하였다.
“하느님께서는 조상들에게 22 다윗을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내가 이사이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나의 뜻을 모두 실천할 것이다.’ 하고
증언해 주셨습니다.
23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24 이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미리 선포하였습니다.
25 요한은 사명을 다 마칠 무렵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6 형제 여러분, 아브라함의 후손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이 구원의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파견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의 이름은 요한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57-66.80
57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58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59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60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61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62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63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64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65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66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80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언자로서의 삶, 어쩔 수 없이 고독합니다!
통상 가톨릭교회 안에서 성인(聖人)들의 축일은 하나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분들께서 돌아가신 날, 다시 말해서 천상 탄일을 축일로 정해 기억하고 기념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세례자 요한의 천상 탄일이 아니라, 지상에서의 탄생 축일을 경축합니다. 그에게는 축일이 두 개입니다. 탄생 대축일과 수난 기념일. 그만큼 세례자 요한은 등급이 높은 성인인 것입니다. 그를 성인 중에서 대 성인으로 인정하며 각별한 공경과 예우를 갖추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30년 세월을 나자렛에서 조용히 지내셨듯이, 세례자 요한 역시 오랜 세월 광야에 머물면서 침묵과 기도 속에 내공을 닦았습니다.
마침내 그가 세상 밖으로 나와서 외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환호했고, 그는 일약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요르단 강으로 그를 찾아와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자 헤로데 조차 두려워할 정도였습니다.
그로 인해 세상 사람들이 ‘혹시 이분이 왕이 아닐까?’ 기대했지만, 그럴 때 마다 세례자 요한은 정확하고 단호하게 선을 긋습니다.
“나는 왕이 아니오.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오. 나는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 같은 존재, 한 줄기 연기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 교회가 세례자 요한을 성인 중의 성인으로 추앙하는 이유는 그가 지녔던 탁월한 겸손의 덕 때문입니다. 이토록 겸손한 세례자 요한의 신원의식은 뒤에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무런 무리 없이 연착륙하실 수 있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사제 수도자들, 그리스도인들 역시 때로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너희는 누구냐?”라고 질문을 던질 때, 솔직하게 소개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 티끌 같은 존재입니다. 주님 자비를 힘입지 않으면 단 한 순간도 홀로 설 수 없는 나약한 존재입니다. 주님 크신 사랑으로 인해 오늘 제가 여기 서 있습니다. 저는 제 삶을 통해 주님을 증거합니다. 저는 이 세상 안에 주님께서 현존하심을 외치는 광야의 소리일 뿐입니다.”
예언자로서의 삶, 어쩔 수 없이 고독합니다. 원치도 않았는데, 하느님께서는 자신을 예언자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사명을 주시는데, 때로 죽기보다 힘든 숙제입니다.
완전히 귀먹은 백성들을 향해, 이미 물 건너간 사람들을 향해, 다시 돌아오라는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해야만 합니다. 거듭되는 외침에도 사람들의 몰이해, 그로 인한 박해는 계속됩니다. 결국 외로운 투쟁을 거듭하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나 예언자들의 죽음은 절대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헌신과 희생의 결과 하느님의 구원 사업이 이 땅 위에 성취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한 인류 구원과 영원한 생명이란 아름다운 결실을 맺는데, 예언자들이 흘린 피는 소중한 밑거름이 된 것입니다.
한 존재가 죽어도 죽지 않는다는 것, 소멸되어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그런데 그 일이 이제 우리에게도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을 세례자 요한의 삶과 죽음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처럼 자신 안에 생명의 불꽃을 간직한 사람들은 죽어도 죽지 않습니다. 비록 육체는 이 세상에서 자취가 사라지지만 영혼은 더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