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2026년 6월 3일 수요일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6.06.03조회수98 목록 댓글 4<연중 제9주간 수요일 강론>(2026. 6. 3. 수)(마르 12,18-27)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복음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18-27
그때에 18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다.
19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만 두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20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21 그래서 둘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지만
후사를 두지 못한 채 죽었고, 셋째도 그러하였습니다.
22 이렇게 일곱이 모두 후사를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23 그러면 그들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2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25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26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모세의 책에 있는 떨기나무 대목에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읽어 보지 않았느냐?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너희는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1)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라는 말씀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이 하느님 앞에서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해석입니다.> 이 말씀은, 죽은 이들의 이름을 하느님께서 품고 계신다는 뜻도 아니고, 기억하신다는 뜻도 아니고, 그들이 ‘실제로’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은 죽음이라는 것에게 당신의 자녀를 빼앗기시는 분이 아니라, 당신의 자녀를 부활시켜서 영원히 살게 하시는 분이다.” 라는 뜻입니다.
만일에 부활이 없고,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면, 즉 하느님께서 당신의 자녀를 살리지 못하신다면, 그러면 전지전능하신 분이 아닌 것이고, 전지전능하지 않다면 하느님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느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안 믿는 것이고, 그것은 하느님을 안 믿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면 당연히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만일에 부활과 영원한 생명이 없다면? 희망 없이 사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닙니다. 또 만일에 내세는 없고 현세만 있다면 피조물 전체가 불쌍한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천지창조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 되어버린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2) 부활을 믿는다고 해도 누구든지 사두가이들이 했던 것과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복잡한 문제가 아니라도, 지금의 인간관계들이 부활 후에는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할 수도 있습니다.
만일에 지금의 모습 그대로, 또 지금의 인생 그대로, 부활 후에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면, 부활하지 않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할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반대로 지금의 자기 모습과 지금의 자기 인생에 만족하는 사람은 부활 후에도 변함없이 그렇게 살기를 바랄 텐데, 만일에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불공평한 일이 될 것입니다. ‘부활 후의 삶’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완전히 새롭게 변화된 삶이다.”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라는 말씀은,
모든 욕심과 욕망에서 해방되어서 완전히 새롭게 변화된 인생을 살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곳에는 어떤 갈등도 다툼도 원한도 없고,
지금의 인생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인생을 살게 됩니다. ‘부활 후의 삶’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의 ‘희망’이기도 합니다.
부활 후의 인생은 지금의 인생이 연장되는 것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그리고 정말로 좋은 인생이기를 바라는 희망.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희망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 희망이 옳다는 것을 확인해 주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3) 그런데 우리는 ‘기억’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면 ‘기억’은 어떻게 될까?
이쪽 세상에서 있었던 일들과 함께 지냈던 사람들을 모두 기억하게 될까?
아니면 모두 잊어버릴까?
기억한다면 아픔도 상처도 원한도 기억할까? 그런 나쁜 것들은 잊어버리고 좋은 것들만 기억할까?
만일에 이쪽 세상에서의 불행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하늘나라의 행복이 행복인 줄 모를 것입니다. 지금의 시점에서 진짜로 중요한 문제는 ‘성인의 통공’입니다.
이쪽 세상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을 기억하지 못하면,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해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지금’ 하늘나라에 있는 분들은 모든 사람들과 모든 일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고, 그래서 아직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면 종말의 부활 후에는?
기억은 남아 있어도, 사랑과 기쁨만 가득할 것입니다. 미움과 원한은 잊어버리고, 사랑은 영원히 기억하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