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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 강론

[스크랩] 2026년 6월 6일 (녹) 연중 제9주간 토요일 『가난한 과부의 헌금』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6.06.06|조회수91 목록 댓글 3

<연중 제9주간 토요일 강론>(2026. 6. 6. 토)(마르 12,38-44)

 

복음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38-44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38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이르셨다.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39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40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
41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었다.
42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43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4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의 복음강론

『가난한 과부의 헌금』

1) 여기서 ‘율법학자들에 관한 말씀’은 위선자들을 꾸짖으시는 말씀이고,

‘가난한 과부의 헌금에 관한 말씀’은 참된 신앙인들을 칭찬하시는 말씀입니다. 위선자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의 위선자들이 자기들은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고, 자기가 위선자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위선의 큰 문제점입니다.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는, “너희는 율법학자들 같은 위선자가 되지 마라.”입니다.

 

율법학자들 중에는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나타나엘’처럼 ‘진실한 사람’도 있었습니다(요한 1,47).

그러나 그 당시 대부분의 율법학자들은 위선자들이었습니다.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는, 거룩한 사람인 척 하는 것을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위선자들이 인사받기를 즐기고, 높은 자리와 윗자리를 즐긴다는 말씀은, 자기를 존경하라고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것을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율법학자들과 마주치면 존경한다는 뜻으로 공손하게 인사했고, 회당 예배 때나 잔치 때에는 그들을 위해서 윗자리를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그 존경은, 진심으로 하는 존경이 아니라,

마음속으로는 비웃으면서 겉으로만 하는 존경이었습니다. 그러니 존경받는 것을 즐기는 쪽만 위선자였던 것이 아니라, 존경하는 척 하는 쪽도 위선자였습니다.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는, 위선자들이 자신들의 신심을 과시하는 것을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그런 기도는 기도가 아니라 기도를 흉내 낸 것, 또는 기도하는 척 하는 연기일 뿐입니다.

2)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먹으면서” 라는 말씀은,

율법학자들이 힘없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을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탈출기에, “너희는 어떤 과부나 고아도 억눌러서는 안 된다.” 라는 율법이 있습니다(탈출 22,21).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 라는 말씀은,

마태오복음에 있는 다음 말씀에 연결됩니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 18,10).”

3) ‘가난한 과부’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마르 12,30)

하느님을 사랑한 신앙인으로서 모든 신앙인의 모범이 되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마음으로는 그 과부처럼 그렇게 하고 싶은데도 형편이 안 되어서 못하는 사람들은 ‘가난한 과부의 헌금’ 이야기를 대할 때마다 괜히 주눅 들기도 하고, 자기가 뭔가 많이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 과부를 칭찬하신 말씀이,

그 과부를 본받으라는 뜻이긴 하지만, 누구다 다 전 재산을 바치라는 뜻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헌금(성금)에 관해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열의만 있으면 형편에 맞게 바치는 것은 모두 기꺼이 받아들여지고, 형편에 맞지 않는 것은 요구되지 않습니다(2코린 8,12).” 형편이 안 되어서 그 과부처럼 가진 것을 다 봉헌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닙니다.

저마다 마음에 작정한 대로 해야지,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2코린 9,7).” 가진 것을 다 봉헌한다고 해도, 칭찬받고 싶은 명예욕으로, 억지로 한다면, 그것은 ‘위선’입니다.

4) ‘가난한 과부의 헌금’ 이야기에 나오는 부자들 중에는,

예수님께서 꾸짖으신 율법학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에는 힘없는 과부들에게서 빼앗은 돈 가운데 일부를 봉헌한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강도짓 같은 일로 빼앗은 돈을 봉헌한다면,

아무리 큰돈을 봉헌한다고 해도, 그것을 봉헌이라고 말할 수는 없고, 감히 하느님을 자기들 범죄의 공범으로 만드는 ‘큰 죄’를 짓는 일입니다.

 

하느님께 바치는 것은 무엇이든지, 돈이든지 무슨 제물이든지 간에, 흠도 없고 티도 없는, 정말로 순수하고 깨끗한 것이어야 합니다(레위 22,17-25). 그 전에 먼저, 가장 중요한 것은 봉헌하는 사람 자신의 깨끗한 마음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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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6.06.06 아멘 신부님 stellakang 님 고맙습니다 🙏
  • 작성자하람이 | 작성시간 26.06.06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6.06.06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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