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0주간 월요일 강론
송영진 모세 신부 ・ 2026. 6. 7. 6:27
<연중 제10주간 월요일 강론>(2026. 6. 8. 월)(마태 5,1-1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예수님께서는 그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마태 5,1-12)>
1) 예수님의 ‘참 행복 선언’ 말씀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위로와 격려 말씀이 되고, 부유한 사람들에게는
회개를 촉구하는 경고 말씀이 됩니다.
그래서 “행복하여라.” 라는 말씀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행복하게 될 것이다.” 라는 약속이 되고, 부유한
사람들에게는 “행복하기를 바란다면”이라는 말씀이 됩니다.
여기서 ‘행복’이라는 말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 행복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에서
누리게 되는 기쁨, 평화, 안식 등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약속은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지 알 수 없는
막연한 약속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실현되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라는 말씀은, “나중에 하늘나라를 차지하고
행복하게 될 테니, 가난해도 참고 살아라.”가 아니라,
“지금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니 가난에 굴복하지도 말고,
가난을 부끄러워하지도 말고, 가난 극복을 위해서
노력하여라.”입니다.
가난에 굴복한다는 말은,
하느님을 등지고 돈을 따라간다는 뜻입니다.
가난을 부끄러워한다는 말은, 가난을 ‘하느님의 복을 받지
못한’ 상태로 오해한다는 뜻입니다.
가난은 우리가 힘을 합쳐서 극복해야 할 고통입니다.
누구에게나 가난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가난 때문에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하다가 결국 중단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상황에 공동체가 무관심하다면,
그 무관심은 큰 죄가 됩니다.
하느님께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계시는 일은,
대부분 공동체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초대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전하는 사도행전의 기록을 보면,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사도 4,34).
이 말은, ‘남들보다 더’ 궁핍한 사람도 없었고,
‘남들보다 더’ 부유한 사람도 없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도 없었다.’ 라는 말도 중요합니다.
먹을 때 함께 먹고 굶을 때 함께 굶는다면, 모두가 똑같이
그렇게 한다면, 가난함이 고통이 되지 않고, 그런 공동체를
통해서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금방 체험할 수 있습니다.
2) “행복하여라.”를 “행복하기를(구원받기를) 바란다면”으로
읽으면,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라는 말씀은, “구원받기를 바란다면,
재물에 대한 탐욕을 버리고 하늘나라만 추구하여라.”
라는 가르침이 됩니다.
이 가르침은 ‘낙타와 바늘구멍’에 관한 말씀에 연결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태 19,23-24).”
이 말씀에서 ‘부자’는, 하느님은 섬기지 않고 재물을 섬기는
사람을 가리킵니다(마태 6,24).
부자가 되기만을 바라는 사람도 포함됩니다(1티모 6,9).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만 섬기는 사람들이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재물을 섬기는 사람은 그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루카 12,15).” 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3) 그리스도교는 가난한 이들만을 위한 종교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종교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의 구원을 바라시는 분이고,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 나라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합당한 자격을 갖춘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데,
‘참 행복 선언’ 말씀은 그 자격을 얻는 방법에 관한
가르침이 됩니다.
지금 현세에서 누리고 있는 것들이 너무 좋고,
너무 행복해서, 하느님 나라, 구원, 영원한 생명 등은
생각하지도 않고, 하느님을 잊은 채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 자격을 얻을 수 없고,
그냥 그렇게 살다가 허무하게 끝날 것입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마태 16,26)”
이 가르침은, 지금 부유하든지 가난하든지 간에
‘모든 사람’을 향한 가르침입니다.
누구든지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구원받을 수 있도록 살아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