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2026년 6월 9일 (녹)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6.06.09조회수67 목록 댓글 4<연중 제10주간 화요일 강론>(2026. 6. 9. 화)(마태 5,13-16)
복음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13-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15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16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의 복음강론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1) 이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1) 신앙인이라면 신앙인답게 살아야 한다.
(2) 혼자서만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으로 그치면 안 된다.
세상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따로 떼어서 구분할 수 없는 ‘하나’입니다. 신앙인이 신앙인답게 살면, 그 삶이 곧 신앙의 증언이 되고 복음 선포가 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다른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려면 신앙인 자신이 먼저 신앙인답게 살아야 합니다. 복음 선포와 신앙의 증언은 ‘말’로 하기 전에 먼저 ‘삶’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구원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없이, 나 혼자 착하게 살고 신앙생활 잘해서 구원받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면서 실제로 자기 혼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사정에 관심이 없는 것은, 사랑이 없는 것이고, 사랑이 없는 생활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2)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무슨 일이든 투덜거리거나 따지지 말고 하십시오. 그리하여 비뚤어지고 뒤틀린 이 세대에서 허물없는 사람, 순결한 사람, 하느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수 있도록 하십시오(필리 2,14-15).”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수 있도록 하라는 말은, 등불로 모든 사람을 비추라는 예수님 말씀을 설명한 것과 같은 말입니다.
신앙인은 동방박사들을 아기 예수님께로 인도했던 별처럼(마태 2,9)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사람들을 인도하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방인과 나그네로 사는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영혼을 거슬러 싸움을 벌이는 육적인 욕망들을 멀리하십시오. 이교인들 가운데에 살면서 바르게 처신하십시오. 그래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이라고 여러분을 중상하는 그들도 여러분의 착한 행실을 지켜보고, 하느님께서 찾아오시는 날에 그분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1베드 2,11-12).”
이 말은,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라는 말씀을 설명한 것과 같은 말입니다. 여기서 ‘착한 행실’이라는 말은 ‘신앙인다운 삶’을 뜻합니다. ‘하느님을 찬양하다.’는 신앙인이 된다는 뜻입니다.
3) 13절의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는
‘탈렌트의 비유’에 연결됩니다.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그 돈을 숨겼다(마태 25,18).”
“저자에게서 그 한 탈렌트를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그리고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마태 25,28-30).”
여기서 ‘쓸모없다.’ 라는 말은,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도, 다른 사람들의 구원에도, 자기 자신의 구원에도 아무 쓸모가 없다는 뜻입니다. ‘밖에 버려진다.’ 라는 말은, ‘구원받지 못한다. 멸망한다.’ 라는 뜻입니다.
<실제 상황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는 사람들은 그냥 쓸모없는 것으로 그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일과 사람들이 구원받는 일을 방해하기만 하는 ‘걸림돌’이 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태도가 다른 사람들을 물들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라는 말씀은, 표현만 보면,
“다시 짜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인데,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루카 1,37). 그래서 이 말씀은, “계속 그렇게 살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어쩔 수가 없다.” 라는 말씀일 뿐이고, 구원의 가능성이 모두 차단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누구든지 진심으로 회개하면 ‘제 맛을 잃은 소금’에서 ‘본래의 맛을 찾은 소금’으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4) ‘쓸모없다.’ 라는 말을 루카복음에 있는 다음 말씀에 연결해서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루카 17,10).”
신앙인이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 신앙인답게 살면서
‘삶’으로 신앙을 증언하고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
즉 신앙인의 본분이고 사명입니다. 생색낼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쓸모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귀한’ 존재로 높여 주실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