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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 강론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예수님과 율법>

작성자숲꽃향기|작성시간26.06.10|조회수136 목록 댓글 3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강론

 송영진 모세 신부 ・ 2026. 6. 9. 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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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0주간 수요일 강론>(2026. 6. 10. 수)(마태 5,17-19)

 

<예수님과 율법>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마태 5,17-19).”

 

1) 여기서 “완성하러 왔다.” 라는 말씀은,

계명들과 율법들에 들어 있는 ‘하느님의 뜻’을

완성하려고(또는 이루려고) 오셨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인간 구원이고, 하느님께서 사람들의

구원을 바라시는 것은 곧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사랑이

사람들에게서 완성되게 하려고 오신 분입니다.

<유대인들은, 특히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서 유대교를 망치고 있다고 오해했고,

유대교 중심의 사회 질서를 무너뜨린다고 오해했습니다.>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라는

말씀에는, “유대교를 망치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너희다.” 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바리사이들이 철저하고 엄격하게 율법을 지킨 것은,

겉으로만 철저한 것, 즉 ‘위선’이었을 뿐입니다.

바로 그 위선이 유대교를 망친 주원인이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는 일에

철저하셨던 분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일이 ‘성전 정화’입니다.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그리고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또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다. 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는,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자

제자들은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

라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생각났다(요한 2,13-17).”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리고 그들 뒤에 있는

사제들에게는, ‘파스카 축제’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대목’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파스카 축제를 잘 지내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서, 또 하느님을 잘 섬기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서

제사용품들을 판매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사실은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일이었을 뿐입니다.

그런 위선이 파스카 축제를 망치고 있었습니다.

만일에 예수님에게 ‘하느님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면,

현실과 적당히 타협했거나 그저 몇 마디 말로 비판하는

것으로 그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대충 적당히 넘어가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 정화에서 보여주신 그 열정과 철저함과

단호함은 파스카 축제 실행과 하느님의 뜻 실천을

완성시키신 일입니다.

 

2)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이렇게 꾸짖으셨습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행해야만 했다(마태 23,23).”

위선자들은 눈에 보이는 십일조는 잘 냈습니다.

그러나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은 무시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기준으로 하면, 하느님의 계명들과

율법들은 전부 다 똑같이 중요합니다.

그런데도 위선자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큰 것과 작은 것을

나누고, 작은 것은 무시하면서 안 지킵니다.

19절의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는

“하늘나라에 못 들어간다.”이고, “하늘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는 “하늘나라에 들어간다.”입니다.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계명들과 율법들 가운데 하나라도

자기 마음대로 작은 것이라고 분류해서 무시한다면,

그것은 하느님을 무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을 무시하는 사람이 하느님의 나라에

못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3) 바오로 사도는 율법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로마 3,21ㄱ.22).”

“그러니 자랑할 것이 어디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무슨 법으로 그리되었습니까? 행위의 법입니까?

아닙니다. 믿음의 법입니다. 사실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로마 3,27-28).”

율법주의자들은(위선자들은) 외적인 율법 준수만 강조하다가

하느님을 잊어버리는 자들이고, 하느님 없이 율법만

지키다가 하느님에게서 점점 더 멀어지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려고 오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 믿음을 통해서 율법 실천의 완성에,

즉 구원의 완성에 도달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들은 구원의 완성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는

‘생명의 빛’입니다(요한 12,46).

 

송영진 모세 신부

[출처]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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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하람이 | 작성시간 26.06.10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6.06.10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별초롱 | 작성시간 26.06.10 아멘!
    신부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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