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성심 대축일 강론
송영진 모세 신부 ・ 23시간 전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 강론>
(2026. 6. 12. 금)(마태 11,25-30)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25-30)>
1)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서 당신의 목숨을 속죄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그 일을, “우리를 대신해서 멍에를 짊어지심으로써
우리의 멍에를 없애 주셨다.” 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 말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 라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십자가는 멍에가 아닌가?” 라고 반박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멍에를 없애기 위해서 당신이
스스로 짊어지신 멍에이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는,
또는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지고 가는
‘나의 십자가’는, 멍에가 아니라
멍에를 벗기 위한 열쇠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받아들여서 지고
가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동참하기 위한 일이다.”
라고 표현하는데, 정확하게 표현하면,
예수님의 ‘부활’에 동참하기 위한 일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라는 말씀은, “내가 너희의
멍에를 완전히 없애 주겠다.” 라는 약속입니다.
무거운 멍에를 벗기고 덜 무거운 멍에를 주겠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29절과 30절의 ‘내 멍에’ 라는 말과 ‘내 짐’이라는 말은
반어법적 표현일 뿐이고, 이 말의 진짜 뜻은 ‘우리의 멍에를
없애 주는 예수님의 계명들과 가르침들’입니다.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는, “멍에에서
완전히 해방되고 싶으면 내 계명들과 가르침들을
실천하면서 살아라.”입니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는, “내 계명들과
가르침들은 멍에도 아니고 짐도 아니다. 너희에게 참된
해방과 안식을 주는 열쇠다.”입니다.
<지금 ‘열쇠’ 라고 표현한 것은,
우리 쪽의 능동적인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해방과 안식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니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열쇠를 받아서 자물쇠를
열고, 스스로 멍에를 벗는 능동적인 응답을 해야 합니다.>
2)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구원받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그 사랑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를 향해 가실 때, 예수님이
가엾다고 울었던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 때문에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 때문에 울어라. 푸른 나무가 이러한 일을 당하거든
마른나무야 어떻게 되겠느냐?(루카 23,28.31)”
이 말씀은, “나를 가엾게 여기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의
구원을 위해서 노력하여라. 구원받지 못하는 자들은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비참한 처지가 될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 성심 대축일’을 지내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묵상하고 공경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더욱더 노력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3) 25절의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라는 말씀은, “가난하고 힘없고 무식하고
못난 사람들도 빠짐없이 구원하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라는 뜻이고,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음을 감사드린다는 뜻입니다.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라는 말씀은, 지혜롭고 슬기롭다고
자처하는 자들이 ‘하느님의 뜻’을 외면하는 것을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감추시고’ 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감추셨다는
뜻이 아니라, 그자들이 외면했다는 뜻입니다.
아무도 구원에서 배제되지 않습니다.
지혜롭고 슬기롭다고 자처하는 자들도 교만을 버리고
겸손해지면, 또 진심으로 회개하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감사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런 자들도 모두 구원하려고 애쓰시는 분이고,
그런 자들이 구원에서 멀어져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시는 분입니다.>
4) 신앙인은 예수님 덕분에 온갖 멍에와 짐에서 해방된
사람이고, 영원하고 참된 안식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세속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거나 한눈을 팔다가
구원의 길에서 멀어지고, 이미 벗어버린 짐과
멍에를 다시 짊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2베드 2,20-21).
예수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함없다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에 대한 우리 사랑도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끝까지 충실하게 노력해서 구원에 도달하는 것이
예수님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출처] 예수 성심 대축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