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1주일 강론
송영진 모세 신부 ・ 2026. 6. 13. 6:25
<연중 제11주일 강론>(2026. 6. 14.)(마태 9,36-10,8)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토마스와
세리 마태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 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9,36-10,8)>
1) 루카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많은 제자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습니다(루카 6,13).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따로 특별히 뽑으시고
그들을 사도로 삼으신 것은, 당신의 교회를 세우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조직과 제도를 만드신 것은,
당신이 승천하신 뒤에도 당신의 일을 신앙인들이 이어받아서
계속하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 제도는 사실상 당신을 위해서 만드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구원 사업은 우리를 위한 일이고, 우리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을 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시고,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도와드리는 협력자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것은,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또 스스로 구원을 위해서 일하기를 바라셨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일에 구원 사업이 예수님 승천으로 마무리되는 일이었다면
교회라는 제도가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복음 선포가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만이 중요합니다.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나 같은 일을 하여,
저마다 수고한 만큼 자기 삯을 받을 뿐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협력자고, 여러분은 하느님의 밭이며
하느님의 건물입니다(1코린 3,7-9).”
2) 열두 사도는 ‘하느님의 건물’의 열두 주춧돌입니다.
신앙인들은 각자 맡은 직분이 무엇이든지 간에
하느님의 자녀로서, 또 하느님의 일꾼으로서
사도 직무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자녀들은 상속자들이기 때문에(로마 8,17)
아버지의 일은 곧 자녀들 자신들의 일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은 아버지의 일꾼들이기도 합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때가 다가오는데
아직도 믿고 회개하는 사람이 적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라는 말씀은, 더 많은 사람들이 믿고 회개해서
구원받을 수 있도록 사람들을 인도해 주십사고
하느님께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선교활동은 잃은 자녀를 찾는 일이면서,
동시에 일꾼들을 모으는 일이기도 합니다.
<일꾼인 신앙인과 일꾼이 아닌 신앙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신앙인은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에페 2,20-22).”
3)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라는 말씀은,
‘지금은’ 이방인들에게 가지 말고 ‘나중에’ 가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라는 뜻이기도 하고,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먼저, 또 가까운 곳에서부터 먼저
복음을 전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전에 먼저
자기 식구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옳습니다.
식구들을 방치한 채로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고 어리석은 일입니다.
“자기 집안을 이끌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하느님의 교회를 돌볼 수 있겠습니까?(1티모 3,5)”
예수님께서는 승천 전에는 제자들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만 가라고 말씀하셨지만, 승천하실 때에는
‘모든 민족들’에게 가라고 지시하셨습니다(마태 28,19).
그렇게 복음 선포 대상이 확대된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복음 선포가 완료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복음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마태 21,43).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라는 말씀은,
복음 선포는 하느님의 은총을 무상으로 나누어 주는 일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이기도 하고, 교회는 ‘돈벌이’를 하는
장사꾼으로 전락하면 안 된다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출처] 연중 제11주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