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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열 신부 강론

종이 아닌 자유인 /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작성자하늘호수♡마리아|작성시간22.01.20|조회수383 목록 댓글 4

+ 찬미 예수님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고, 하시는 모든 일 늘 주님이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들려드릴 덕담이면서 하느님의 말씀은 제2독서에서 들으신 사도 바오로의 말씀입니다.

‘그대는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2020년부터 지금 3년째 우리는 코로나의 종, 마스크의 종으로 산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자유를 못 느끼고 살았습니다.

이제는 사람들 얼굴을 떠올리면 전체적인 이미지보다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과 눈썹, 머리만 기억납니다.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갖고 새해 첫날 은혜를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올 한 해 동안 야훼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간절히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 것 같습니까?

아프지 않은 것, 걱정 없는 것?

이런 것들을 함께 모으면 행복한 삶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분명 주어진 처지가 다르기에,

하느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행복한 삶이란 각자 주어진 처지에서 기쁘게 사는 것일 것입니다.

배를 불리더라도 빵을 먹을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스테이크를 먹을 수도 있죠.

상황은 모두 다릅니다.

‘나도 저런 상황이면 행복할 텐데.’라는 막연한 개념이 아니라, 각자 처한 위치에서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저도 은퇴 사제로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들도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을 보면서 저 정도 위치면 분명 행복할 거라는 착각은 하지 말기 바랍니다.

많이 갖고 많이 소유하는 것이 행복의 조건은 아닐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어떤 처지에서도, 어떤 조건에서도 행복하게 살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코로나의 종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코로나를 지배하기를 원하십니다.

물론 한국도 코로나로 인해 돌아가신 분이 오천 명이 넘어선 지 오래지만,

우리가 코로나의 종이 되는 것과 코로나에 불편함을 느끼고 사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또 행복한 마음으로 살려고 하는데 너무 불공평해 보이는 것 때문에 행복할 수 없다는 상황에 있을 수도 있을 겁니다.

누구는 부자로 태어나고 누구는 가난하게 태어나고, 누구는 건강하게 태어나고 누구는 죽을 때까지 병치레해야 하고,

누구는 정말 좋은 머리로 태어나 출세를 잘하고 누구는 돌머리로 태어나

맨날 머리 나쁘다는 말만 듣고 후회하며 살기도 합니다.

이렇게 불공평하게 보이는 것들은 지금 이것뿐만 아니라 참 많습니다.

그래서 아까 말씀드렸지요?

행복한 삶은 주어진 처지에서, 주어진 조건 아래서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은행 강도질로 돈 보따리를 안고 산다고 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올 한 해 동안 원하시는 행복입니다.

 

제가 예전에 있던 본당에 고등학생 하나가 있었습니다.

이 학생은 교통사고로 다리가 절단된 학생이었습니다.

공부도 정말 잘했고, 휠체어 혹은 의족을 끼고도 학생회장까지 하고 철봉도 하면서 아주 인기가 짱이었습니다.

성격도 아주 해맑고 명랑했습니다.

하루는 제가 넌지시 물었습니다. ‘너 다리 때문에 불편한 적 없니?’

그 학생이 방긋 웃으며 정말 가식 없이 한마디를 던졌는데, 제게 그 어느 복음보다도 강하게 와 닿았습니다.

‘신부님, 저는 없어진 다리보며 슬퍼할 시간이 없어요, 세상에는 봐야 할 좋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없어진 다리 밑을 볼 시간이 없습니다,’

잘못하면 비관하고 세상을 원망할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17살뿐이 안 된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정말 보석 같은 말이었습니다.

맞습니다.

못난 사람은 평생 못난 것만 붙들고 징징거리면서 고달프게 인생을 걸어갑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해가 바뀌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고달픈 것을 보고 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생 자체가 다릅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는 종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종은 다른 말로 노예라고 합니다.

종은 주인이 노예 문서를 소각하기 전까지는 미래도 없고 자유도 없습니다.

그저 끌려다니고 이용당합니다.

그렇다면 노예의 반대는 무엇일까요?

오늘 복음적인 표현으로 말한다면 자유인입니다.

 

우리는 위대하신 하느님의 아들딸이고 하늘나라를 상속받은 상속인으로 분명히 종이 아닙니다.

자유인입니다.

그래서 2022년 올 한 해 동안 우리는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우리 아버지라는 것을 알고 긍지를 갖고 힘차게 살아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살기를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원하십니다.

 

종의 생활은 참 비참합니다.

긴 사제생활을 돌아보면 제게 상처를 주었던 참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상처를 기워 갚을 노력조차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저는 한동안 그 사람들을 미워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게 준 상처를 준 사람이니 미워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합리화하고 산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럴수록 나 자신은 더 비참하고 처량한 죄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었던 겁니다.

오히려 나 자신이 그 미움의 노예, 합리화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던 겁니다.

미움이 깊어갈수록 속이 시원해지거나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상처는 깊어만 갔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끌려다니는 종의 처지가 되고 말았던 겁니다.

첫 번째 그 사람에게 받은 상처와

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해 내가 나에게 준 두 번째 상처에 종이 돼서 살아가고 있었던 겁니다.

기도해도 미운 생각에 덮여있었습니다.

잠을 잘 때도 복수를 궁리하며 잠을 잤습니다.

기도도 별 기도 다 해봤습니다.

그놈이 잘못되길 간절히 기도해 본 적도 있었답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 사람에게 끌려다니는 쓰레기 같은 삶을 살게 되더라 이겁니다.

 

사실 상처 준 사람은 상처 준 것조차 기억도 못 하고 있는데, 상처받은 사람만 상처, 미움 분노,

우울증 등에 끌려다니는 노예처럼 살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어느 한순간 저는 제가 살기 위해서 용서했습니다.

그 사람이 예뻐서 용서한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남기 위해 용서했습니다.

종이 되지 않기 위해 용서했습니다.

그렇게 마음먹고 기도하니, 그때 비로소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원수는 내가 갚는 것이 아니라, 공의로우시고 정의로우신 주님이 알아서 심판하실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또 겸손하게 뒤를 돌아보면 하느님이 알아서 그 사람에게 벌을 준다는 말조차 웃기는 이야기였습니다.

우리에게는 원수를 갚을 자격도 권한도, 미워할 자격도 없습니다.

왜?

우리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수없이 상처를 주고 용서를 청한 적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그 사람 벌주십시오.’ 이렇게 부탁할 자격도 없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살면서 지난해 상처 준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본인은 없다고 생각할지라도, 지금도 나로 인해 피 흘리는 사람이 있을 텐데요,

용서 청한 적 없이 한 해를 넘기고 있는데요.

그런데 내게 가끔 상처 준 사람과 사기 친 사람을 저주할 자격이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우리들이 살면서 경험상 알 수 있듯이, 우리를 노예로 만드는 1순위가 무엇일 것 같습니까?

죄의식.

그 죄의식을 조금 더 해부해보면 그 안에 미움, 교만, 음욕, 악습, 분노, 저주, 나태 등이 있죠.

죄의식에 사로잡혀 살 때 우리는 분명히 행복하게 살아갈 재간이 없습니다.

 

오늘 제1독서 맨 마지막에 하느님의 이름으로 복을 빌어주라고 나옵니다.

이 말은 내가 복을 받으려면 먼저 남의 복을 빌어주라는 말입니다.

 

누구에게 복을 빌어줄까요?

첫 번째. 조상들을 편하게 해드려야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자손들의 복을 빌어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실 먼저 자손들의 복을 빌어주어야 하지만, 이것이 만만치 않습니다.

집안에 어둠이 있으면 복이 자식들에게 내려가지 않습니다.

집안의 내력, 영성에서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상처라 표현합니다.

여러분들은 조상들의 삶을 어느 정도 알고 계십니까?

우리는 조상들의 삶을 다 모릅니다.

그리고 나쁜 이야기는 가능한 숨겨 내려오기 때문에 어떤 어둠이 조상에게 있었는지 더욱 모릅니다.

그래서 내 삶이 힘들고 내 자손에게 복을 빌어주고 싶어도 자손을 보니 시쳇말로 싹수가 노랗고 인성도 이상하다면,

그리고 내 조상들로부터 뭔가 단절된 어두운 느낌이 든다면,

그 어둠을 내 세대에 끝나고 자손에게는 내려가지 않도록 죽을힘을 다해 매달려야 됩니다.

물론 그리스도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보편적인 구원의 역사 안에서 그전에 착하게 산 분들도 모두 천국에 계실 것이라 믿고 있죠.

하지만, 어둠이 느껴진다면 내 세대에 끝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성체 모실 때, 묵주 기도드릴 때 가계에 대한 축복을 위해 여러분들이 기도하는 한 해가 되시길 부탁드립니다.

‘위로부터 내려오는 어둠이 있다면, 제가 살아서 보속을 다 할 테니, 내 자손들에게는 정말 좋은 축복,

자유인이 될 수 있는 축복만 내려가게 해 주십시오.’

 

두 번째, 하느님 이름으로 복을 빌어주어야 할 대상은 이웃입니다.

올 한 해 동안 시기, 질투가 나더라도 축복해주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내 이웃이 뭔가 마음에 맞지 않고 꼴사납게 보이더라도, 복을 빌어주면 그 복이 바로 자기에게 돌아온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2022년 새해 맞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합시다.

저도 몇 달 월세방에 살다 보면 제 이름으로 된 집은 아니나 조금은 자유로운 집으로 가게 됩니다.

2021년은 제가 본당신부로의 수임이 끝났던 해였고,

2022년은 제 버킷리스트에 있는 일들 하나씩 해나가면서 행복하게 살려고 애쓸 것입니다.

 

아까 말했듯이 코로나는 불편한 것이지, 코로나의 종이 돼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야 하고 자유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힘들 때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성모님이 계시고,

찾아갈 수 있는 치유의 성지가 많이 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올 한해 가족 단위로 혹은 주변 분들과 성지순례를 많이 하시기를 권합니다.

 

마지막으로 덕담 하나 드리겠습니다.

작년에 있었던 작은 서운함 때문에, 올 한해 찾아올 감사의 은혜를 잊지 말도록 합시다.

 

여러분들 올 한해도 영원에 영원을 더해 사랑할 겁니다.

여러분들도 기도 중에 은퇴 사제를 위해, 비단 저만 아니라 모든 은퇴신부님이

주눅 들지 말고 의기소침하지 말고, 또 지나온 삶 후회하지 말고 기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드려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아멘

 

 

♣2022년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1/1)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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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요셉-막내165 | 작성시간 22.01.21 아멘. 감사합니다.

    김웅열 신부님,
    언제나 건강하시고 기쁘게 사시는 삶 속에서
    저희에게 끊임없이 좋은 말씀으로 인도하여
    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신부님, 사랑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2.01.21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아름다운 | 작성시간 22.01.22 모든 은퇴사제들이 기쁘게 살아가기를 기도하며
    영원한도움 페루와 3회로~
  • 작성자지나서영 | 작성시간 22.01.23 코로나가 주님과 가까워지는 축복이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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