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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열 신부 강론

높은 산에 펜션 분양합니다/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작성자하늘호수♡마리아|작성시간22.04.15|조회수262 목록 댓글 6


  

+찬미 예수님!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오늘도 몇 분이 미사에 참석하고 계십니다.
오늘 오신 여러분들, 새벽에 일찍 떠나서 아파트에 왜 왔습니까?
그렇죠, 미사 드리러 왔죠?
또 지금 실시간 방송으로 미사를 보고 있는 여러분들, 왜 이미 미사 보고 계십니까?
또, 저 김웅열 신부는 은퇴한 신부라,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살 수 있는데,
일주일에 4번 강론 안 올린다고 무어라 하는 사람도 없는데,
기를 쓰고 꼬박꼬박 강론을 올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런데 미사는 왜 드립니까?
미사는 변화되기 위해서 드립니다. 맞습니까?
이 변화도 육신의 변화가 아니라 영의 변화를 위해 드립니다.
영적 변화! 이게 바로 오늘 복음의 핵심이고 오늘 강론의 핵심이에요
여러분들 가운데는 김웅열 신부를 안 지 오래된 사람 많을 겁니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20년, 30년 전부터 아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리고 내 피정도 수도 없이 쫓아다니고, 내 강론을 수도 없이 들은 사람도 많을 거예요.
그렇다면 저를 만나신 후 변화되셨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산에 올라가셔서 변화하십니다.
옷도 하얗게 변했고 뒤에 후광도 어마어마했을 겁니다.
구약의 위대한 큰 예언자들도 만나십니다.
오늘 복음은 초막 셋의 의미 등 여러 가지 포인트로 강론할 수 있고,
예전에 떠오르지 않았던 새로운 것이 자꾸 펼쳐져요.
복음은 역시 밭에 끝없이 파내도 나오는 보물입니다.
 
오늘 주제는 ‘영적 변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장황하게 이야기한 거예요.
왜 미사에 오고, 나는 왜 의무도 아닌데 은퇴 후에도 이렇게 기를 쓰고 유튜브에 올리는가?
제 이름 날리기 위해서 아니잖아요?
그리고 38년 동안 정말 피정 지도 많이 했으니 조용히 쉬겠다고 은퇴 전에 마음도 먹었어요.
‘이젠 지쳤다. 나도 이제 내 행복을 좀 찾자. 한평생 신자들의 행복으로 위해.
신자들 변화시켜 주려고 애쓰고 살았으니, 이제 내가 내 행복을 찾자.
그리고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살았으니 침묵하면서 살자.’ 생각했었지요.
그러나 사제에게 말씀의 중단이란 있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설령 내가 중환자로 병원에 입원했어도 아마 몇 마디라도 녹음해서 내보낼 것에요.
죽음이 가까이 오더라도 아마 할 것이에요, 어떤 상황이 돼도.
그 이유는 뭐냐?
강론을 준비하면서 나도 역시 변화가 되고, 사제의 강론을 듣는 사람들도 변화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사제의 의무다. 은퇴한다고 사제가 아닌 게 아니잖아요.
그 때문에 사제의 복음 말씀 전파는 숨이 끊어질 때까지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신자들도 말씀 전파하는데 게을리하면 안 된다는 표양을 보이는 겁니다.
 
자, 오늘 영적 변화라고 하는 주제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봅시다.
분명히 영적 변화가 되려면 단계가 필요합니다.
누가 내 테이프를 줬는데 처음에는 들어도 하나도 와 닿지 않다가 와 닿을 때가 있죠.
그 변화의 단계에 뭔가 힘을 주는 것은 대부분 고통이었을 것에요.
사람은 절대로 꽃밭 속에서는 하느님을 못 만나요.
모세가 하느님 만난 곳도 가시덤불이었고, 2000년 동안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체험한 장소는 십자가였지,
푹신푹신한 침대 위가 아니었다는 얘기죠.
분명히 단계가 있었어요.
세월이 흐른다고 하여 저절로 영적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얘깁니다.
첫 번째는 노력해야 해요, 두 번째는 찾아야 해요.
 
그럼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도대체 영적 변화가 되려면 우리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오늘 복음에 답이 나와요. 복음에 예수님이 변하신 장소는 어디였습니까?
강가였습니까, 아니면 길바닥이었습니까, 아니면 누구네 집이었습니까?
영적 변화가 되는 장소는 분명 높은 산으로 나와요. 장소는 찾아냈어.
그러고 보니 모세도 하느님을 체험한 곳이 광야가 아니라, 시나이산 꼭대기에서 30일 만에 십계명을 받았죠.
상징적인 의미로 우리가 영적 변화가 되려면 높은 산으로 기어 올라가야 한다고 장소는 분명히 나왔어요.
높은 산에서 찾아야 해요. 그래서 높은 산으로 올라가야 해요.
 
그 높은 산이 도대체 어디냐?
여러분들 배티 성지가 해발 고도 얼만 줄 압니까? 312m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얘기하는 높은 산이라고 하는 것은 해발 고도가 얼마인가 하는 개념이 아니죠.
여기서 얘기하는 높은 산은 말씀의 산이에요.
우리는 말씀의 산에 올라가야 해요.
말씀의 산에 따라 올라가면 뭐가 보일까요?
여기저기 봉우리들과 그 봉우리마다 꽉 차 있는 나무들이 보일 것에요.
말씀의 산에 올라가면 4개의 영적 봉우리가 보입니다
 
첫 번째는 기도의 봉우리가 보일 겁니다.
두 번째는 봉헌의 봉우리가 보일 겁니다.
세 번째는 순명의 봉우리가 보일 거예요.
네 번째는 희생의 봉우리가 보입니다.
그리고 희생의 봉우리에는 많은 경우에 나무들이 있는데, 용서라는 나무도 있고,
회개라는 나무도 있고, 그런 나무들이 꽉 차 있어요,
 
그러면서 높은 산으로 올라가면서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해요.
여러분들 정기적으로 산에 올라가세요?
저는 군종 신부 때 지겹게 일주일에 한 번씩 대청봉을 훈련받으러 올라다녀서 안 가요.
그런데 그때도 보면 늘 투덜대며 올라가도, 일단 정상에 올라가면 속은 시원해요.
왜? 모든 게 다 보이잖아.
나 자신과 싸우면서 투덜대며 올라가면 분명 보이는 것이 있어요.
첫 번째 상처가 보여요. 자기 상처.
‘내가 왜 이것 때문에 이렇게 분노할까? 이 거친 마음에 뭐가 있길래?’
가만히 올라가며 뒤돌아보면 보여요.
‘아, 내가 어릴 때 이런 상처가 있구나. 부모한테 받은 상처, 신자한테 받은 상처가 있구나.’
두 번째로 악습이 보여요.
가만히 보니까 내가 높은 산에만 투덜거린 게 아니야 평지에서 늘 투덜댔어. 악습이 보여요
세 번째로 교만이 보여요.
네 번째로 영적인 나태함이 보여요.
오늘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서 변모되실 때 제자들은 잠에 떨어져 있었어요.
깨어나고 나서 봉창 뜯는 소리를 하잖아요?
콘도 세 개 짓고 여기서 살자고, 두 분, 모세와 엘리아께 가시지 말라고 하죠.
다섯 번째 탤런트가 보여요.
하느님께 받은 은혜가 보이기 시작해요.
‘세상에 내가 이렇게 많은 은혜를 바로 살았구나!’
여섯 번째 향주삼덕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돼요.
특별히 망덕. 더 기쁘게 살아야 하겠다고 하는 것이 보이기 시작해요.
그리고 회개가 따라오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영적 변화가 시작돼요.
 
‘그래 올라오면서 힘은 들었지만 내 상처의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냈어.
내가 악습에 빠져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는데 무슨 악습에 빠졌는지 찾아냈어.
또, 내가 얼마나 교만한지 찾아냈어. 내가 얼마나 영적으로 게을러터졌는지 찾아냈어.
그리고 얼마나 내가 하느님께 감사할 것이 많은 존재인지 이 산길을 올라오면서 온 내가 찾아냈어.
그리고 향주삼덕 가운데서 특히 망덕, 기쁨의 삶을 살아야겠다.’
라고 결심하는 것이 영적 변화의 시작입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 따라서 산에는 올라갔지만, 회개할 시간에 잠을 잤어요.
그래서 예수님의 영적 변화 의미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본인 자신도 못 깨닫고 내려왔죠.
‘제가 아는 목수도 많고, 근처에 있는 나무 잘라서 멋있게 별장 세 개 지어드릴게요.’
봉창 뜯는 소리만 하고 왔거든요.
 
이렇게 영적 변화가 시작되면 저절로 4가지의 변화가 와요.
첫 번째 구원에 대한 변화, 두 번째 능력의 변화, 세 번째 용서의 변화가 오고, 네 번째 기쁨의 변화가 와요.
 
첫 번째 구원에 대한 변화가 옵니다.
전에는 내가 구원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도 몰라요.
세례받고 3, 40년을 살아도 개신교 신자들과 대화할 때 ‘너 성당에서 활동 많이 한다면서 구원받았다는 것 믿냐?’
그러면 ‘받았지’ 하면서 속으로는 자신이 없는 거예요.
하지만 이런 영적인 변화가 일어나면 자신있게 말합니다.
‘당연하지. 나 세례 때 물과 성령으로 구원받았어.’
작은 집인 개신교 신자들은 부흥회에 이틀, 삼 일만 쫓아다니면 ‘나 구원받았어.’ 하며 사람들 끌고 나가려 해요.
시어머니, 남편. 직장동료들한테 ‘예수님 믿으세요. 구원받으세요.’
천주교는 본당 총회장한테도 구원받았느냐고 물으면, ‘아유, 아무나 받는 것 아니에요.’
그것은 겸손이 아니에요, 무지예요.
구원을 다 시켜 놓았는데도, 저 인간은 구원받았는지도 몰라!
구원해준 예수님이 얼마나 서운하겠어요?
그런데 영적 변화가 시작되면 구원에 대한 확신이 돌덩이처럼 들어요.
구원에 대한 확신이 생기니까 매사에 적극적으로 되죠.
전례에 임하는 자세도 적극적으로 되고, 헌금할 때도 적극적으로 되고, 순명할 때도 적극적으로 되고,
봉사할 때도 끌려다니는 봉사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되는 것이죠.
 
여러분, 구원받으셨습니까? (네)
그러면 영적 변화가 여러분에게 시작된 지 오래된 것입니다.
 
두 번째, 능력의 변화가 옵니다.
우리 믿는 자들이 세상 사람들한테 보일 수 있는 능력이 뭡니까?
IQ 얼마나 높은가? 내 통장에 돈이 얼마나 있느냐? 얼마나 세상적인 능력이 있느냐?
그것에 하느님은 관심 없으시죠.
우리 믿는 이들이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은 십자가의 능력이에요.
십자가의 능력!
십자가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능력이 나에게서 나오는가를 보여주어야 해요.
 
내가 피정 때 이야기해드렸었죠.
어떤 분이 30년 냉담을 풀려고 한밤중에 저를 찾아왔죠.
사제관 문을 두드리면서, ‘신부님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만 저 오늘 꼭 성사 봐야겠습니다.’
응접실로 들어와서 눈물 콧물 흘리면서 무릎을 꿇고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성사를 봐요.
진정한 다음 차 한 잔을 마시며 그 양반이 오늘 성사 보게 된 이유를 이야기했어요.
점심에 어느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는데 앞 테이블에 한 사람이 들어왔데요.
근데 그 사람이 음식이 나오자마자 정말 다른 사람이 다 들릴 정도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주님, 은혜로이 내려주신 이 음식과 죄인 베드로에게 강복하소서.’
다들 밥 먹다가 다 쳐다봤는데, 그 사람 뒤에서 밥을 먹던 자기는 그야말로 핵폭탄을 맞은 것처럼 충격이 왔데요.
‘맞아. 나도 옛날엔 밥 먹을 때 성호를 긋고 밥 먹었지. 꼬마 때는 복사까지 섰었어.
신부님까지 된다고 했던 사람인데. 결혼 후 먹고 사는 것 바쁘다는 핑계로 안 나갔지.’
냉담 햇수를 헤아려보니 30년이 됐더래요.
‘아, 주님은 저분의 십자성호 하나로 나를 회개 시키는구나!’
 
우리가 세상에 보여 줄 수 있는 능력은 십자가의 능력밖에 없어요.
여러분이 무심히 그은 성호를 옆에 있는 냉담자가 보고 10년 냉담을 풀 수도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담대하게 전할 수 있는 능력의 변화가 생겨요.
우리들이 세상에 뭐 자랑하겠어요? 천하장사처럼 힘을 자랑하겠어요, 돈 자랑 하겠어요.
아니죠. 십자가만 갖고 있으면 어마어마한 능력이 나온다는 능력의 변화를 보여줘야 하죠.
 
세 번째로는 용서의 변화가 옵니다.
이것은 너무 이야기가 길어서 건드리지 않을 것에요.
하지만 영적 변화의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저 인간 탓이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에 용서를 못 했었는데
내 탓이라 하는 것으로 바뀌어요.
그러면서 사랑까지는 못 가더라도 용서까진 하게 돼요.
내가 늘 그랬죠?
‘그 인간이 예뻐서 용서하는 게 아니라, 내가 살기 위해서 용서해 주라.’
그 인간 예뻐질 때까지 기다린다고요? 절대로 죽을 때까지 안 예뻐져요.
이 세상 짧은 인생이에요. 행복하게 살기도 너무 빨리 지나가는 인생인데.
미움 덩어리를 내 가슴에 품고 살 필요가 없죠.
그 인간이 먼저 어떤 용서를 청하러 오지 않아도 용서하세요.
 
마지막, 네 번째로는 기쁨의 변화가 옵니다.
용서하면 기쁨의 변화가 오겠죠?
기쁨의 변화에 관한 이야기도 끝이 없죠.
 
영적 변화에 대한 것을 좀 쉽게 설명해드리고 싶었습니다.
다 이해되겠지만, 혹시 안되신다면 수첩이나 노트에 정리하면서 다시 들으면 분명 이해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죠.
마태오복음 16장 24절, ‘내 뒤를 따르려면 첫 번째 자기 자신을 버리고, 두 번째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라고 하셨어요.
두 가지만 요구하셨어요. 자기 자신을 버려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라.
 
벌써 사순 제2주가 시작이 됩니다.
어 하다 보면 금세 성삼일 돌아와요.
오늘 내가 짧은 피정처럼 얘기한 것들은 여러분들을 정말 부활시키기 위한 하나의 준비입니다.
사제들의 강론은 그때마다 분명히 어떤 영적인 목적이 있어야 하고,
그 목적에 맞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해 주어 그 시기를 잘 살게끔 도와주어야 합니다.
저도 준비하면서 김웅렬 신부인 나도 변화가 되어야 하고, 내가 얘기한 것만큼 나도 따라가면서 살아가야 하고,
신자들도 변화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여기는 높은 산에 오신 거예요.
여기가 89m나 돼요. 18층이니 89m로 나와요. 높은 산에 오셨잖아요?
또 높은 산에 오니까 다 보이죠? 봉우리들이 보여요.
또 올라오면서 안 보이던 상처, 이런 것들이 보이고, 감사할 것도 자꾸 보여요.
이렇게 높은 산에서 영적 변화가 됐으면 밑에 내려가서 그 변화에 따른 열매를 세상에 보여 드리세요.
내가 구원받았다고 하는 그 열매를 보여 드리고, 십자가의 능력을 담대하게 전하셔야 하고,
그리고 누가 내 속을 뒤집어 놓아도 용서할 수 있는 그런 마음으로 변화돼야 해요.
 
‘좋은 일 있니? 볼 때마다 기쁘네. 너 정말 많이 바뀌었어. 비결이 뭐야? 난 좀 가르쳐줄 수 없어?’
그런 사람으로 바뀌어야죠. 그렇게 되도록 우리 노력합시다.
아멘.
 
여러분들 영원에 영원을 더해서 사랑합니다.
 
♣2022년 사순 제2주일 (3/13)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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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창수선화 | 작성시간 22.04.15 아멘! 고맙습니다 ~❤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2.04.15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아름다운 | 작성시간 22.04.16 감사하며 퍼갑니다.
  • 작성자kksu | 작성시간 22.04.16 감사합니다.
  • 작성자love!!!천사 | 작성시간 22.04.19 아멘!!!
    신부님!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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