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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열 신부 강론

비 올 줄 알았으면 우산 준비해야지, 이것들아!/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작성자하늘호수♡마리아|작성시간22.11.19|조회수128 목록 댓글 5

◼루카 18,1-8

 

+ 찬미 예수님,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오늘 복음이 루카 복음 18장 1절에서 8절입니다.

이 복음은 연중 제32주 토요일 복음과도 내용이 같습니다.

‘너무도 성가시게 구는구나! 그 소원대로 판결해 줘야지.’

아마 중요한 줄거리가 아니겠는가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첫째 줄에 얘기하신 핵심,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그때 법적인 상황을 들어서 설명을 하십니다.

일단 오늘 복음에 나오는 재판관 얘기와 억울한 과부의 이야기 이런 것들에 대해 그때 상황을 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이 비유는 예수님 당시 팔레스티나에서는 있을 수 있는 실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 비유 속에 두 사람이 등장하죠.

첫 번째 사람은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무서워하지 않는 재판관.

굉장히 대단한 사람, 서슬이 시퍼런 그런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이 재판관과는 전혀 반대의 아주 딱한 사정이 있는 과부가 나옵니다.

극과 극의 두 사람을 등장을 시킵니다.

 

오늘 복음에서 얘기하는 이 재판관은 당시 사정으로 보면 분명히 유대인인 재판관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자기들 사이에 어떤 쟁론이 생기면, 대개는 장로들에게 가지고 갔지, 공공 법정에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대법에 의하면 문제가 제기되면 재판관 한 사람으로 법정을 구성할 수가 없었습니다.

반드시 세 사람의 재판관이 있었죠.

한 사람은 원고 측, 또 한 사람은 피고 측에 의해서 선택됐고,

나머지 한 사람은 원고나 피고와는 상관이 없이 별도로 선임이 됐던 겁니다.

이 별도로 선임되는 재판관은 헤로데 왕이라든지 로마 정부로부터 돈을 받고 유급으로 임명된

소위 오늘날의 치안 판사 중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임명된 치안 판사들은 서슬이 퍼랬습니다.

오늘 복음에서처럼 그야말로 하느님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악명이 높은 재판관이었고, 억울한 사람들에 대한 것에 별로 신경 안 썼습니다.

대개 권력이라든지 돈으로 뇌물이 들어오는 부류의 사람에 관한 것만 치안 판사들은 관여했던 겁니다.

돈 안 들어오는 소송은 신경을 아예 쓰지 않았다는 얘기죠.

그래서 그들은 ‘고기 한 접시에 정의를 굽는 자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아주 악랄했죠.

 

그런데 하필이면 이렇게 못된 재판관에게 어떤 과부가 자기 억울한 사정을 해결해달라고 졸랐던 겁니다. 해결해 주겠습니까?

아마 여기서 말하는 ‘과부’는 뇌물을 쓸 돈이 없는 과부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상징으로 보이게 됩니다.

이 여인은 돈이나 권력이 없기에 재판관으로부터 공정한 판결을 얻어낼 가망이 전혀 없는 불쌍한 사람의 상징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이 여인에게는 하나의 무기가 있었습니다.

여러분들 뭔 줄 아십니까?

뇌물을 줄 돈도 없고 높은 사람 아는 연줄도 없는 이 여인이 가진 재판관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무기.

오늘 복음에 의하면 끈질긴 집념이었습니다.

나중에 이 재판관이 두 손을 다 듭니다.

재판관이 두려움을 느낍니다.

어떤 두려움이요?

‘이 여자 빨리 해결해 주지 않으면 성가시게 계속 찾아와서 졸라댈 것 아니냐!’ 하는 두려움.

이 두려움을 갖게 한 것이 바로 이 과부의 지치지 않는 집념이었습니다.

 

오늘 이 비유는 밤중에 찾아와 빵을 구워달라는 친구에 대한 비유와 비슷합니다.

자꾸 밤중에 찾아와서 빵을 달라고 하니 결국에는 빵을 내주고 맙니다.

물론 오늘 이 복음이 하느님을 불의한 재판관에 비유해서 말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그렇지만 ‘이 불의스럽고 탐욕적인 재판관도 이 과부의 끈질긴 집념에는 지쳐서 과부에게 공정한 판결을 내려주었다면,

하물며 사랑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는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을 더욱 많이 주시지 않겠느냐?’는 말씀이 오늘 핵심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무엇이나 기도한다고 다 들어주신다고 생각해도 좋다는 것은 아닐 겁니다.

한 가정에서도 아버지가 자녀들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그 요구가 정당하고 필요하다고 해도, 그것을 당장 들어주지 않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할 때는 들어주질 않습니다.

하느님도 그와 같으십니다.

사실 우리는 내일 일어날 일도 잘 모릅니다.

하느님만이 나의 앞길이라는 긴 안목 속에서 나에게 필요한 것을 다 알고 계시지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안 들어주시고 미루시고, 어떨 때는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청하는 기도가 허락을 받지 못했다고 믿음을 져버린 일이 아주 자주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환난에 처해서도 기도하는 믿음을 가질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냐 하고 한탄하시는 겁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간절한 집념을 가지고 기도를 드리면서 ‘당신 뜻대로 하소서’ 하는 자세를 가질 때

우리들의 기도가 언젠가는 분명히 유효한 기도가 될 것이오, 자신의 신앙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겁니다.

 

오늘 복음을 다시 정리하면 이겁니다.

오늘 복음의 중심은 ‘기도’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도 어떤 기도냐 오늘 예수님 얘기하셨죠.

첫 번째 끊임없이, 두 번째 항구하게, 세 번째 매달리는 기도다.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무엇이냐?

테살로니카에 나오죠?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였으니 감사하십시오.’

그런데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기도인데, 그 기도 앞에 ‘늘’이라고 하는 말이 붙기 때문에 우리들이 주눅이 듭니다.

가끔은 기도합니다. 급할 때는 하느님 찾습니다.

기분 좋고 기도하고 싶다 하는 충동이 생길 때, 피정 후 며칠 동안은 기도합니다.

여러분들 늘 기도하십니까?

못하고 살죠.

바쁘다고 못 하고, 아프다고 못 하고, 기분 안 좋다고 못 하고, 화난다고 못 하고,

기도해 봐야 아무런 응답이 없다고 또 안 하고, 아무튼 이런저런 핑곗거리가 많습니다.

또 기도한다고 해도, 기도 안 하면 손해 볼 것 같으니까 혹은 습관적인 기도할 때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기도에 관한 이야기는 제가 참 많이 드렸습니다.

저는 기도 얘기하면서 이렇게 많이 물어봅니다.

‘여러분들 사제들이 입고 있는 수단에 단추가 몇 개입니까?’

어떤 분들은 예수님 나이 서른세 개냐 하는데, 정답은 옷 만드는 사람 마음대로입니다.

저도 제 수단 단추가 몇 개인지 헷갈립니다만, 신학교 4학년 때 수단을 입으면서 배웠던 교훈이 그거였죠.

첫 번째 단추 잘못 채우면 아무리 잘 채워봐야 처음부터 다시 채워야지요.

그래서 ‘세상만사 첫 단추가 제일 중요하다.’

 

기도의 첫 단추는 크게 네 가지입니다.

첫 번째 ‘하느님과 흥정하는 기도하지 마라’

하느님은 내가 원하는 대로 달라는 대로 다 주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들의 자판기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하느님의 뜻대로가 아니라 내 뜻대로 해달라는 기도가 99%지요.

그렇지만 우리 기도의 스승이 하셨던 기도는 그게 아닙니다.

겟세마니에서 예수님의 인성으로는 이 잔을 거두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즉시 신성의 기도, 겸손의 기도를 바치죠.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당신 뜻대로 하소서.’

청혼의 기도 하지 말라는 것, 달라는 기도하지 말라는 것 아닙니다.

구하십시오. 두들기십시오.

하지만 모든 기도 끝에는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 당신 뜻대로 하소서.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모양으로 원하는 상태로 내 손에 쥐어지지 않아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아마 주님께서 원하시는 때가 있고, 원하시는 방법이 있고, 또 원하시는 색깔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인내하면서 더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하느님에게 맡겨놓은 거 달라는 기도 하지 말라는 거죠.

흥정하는 기도하지 말라는 겁니다.

‘요번만 들어주시면 제가 열심히 성당 나가겠어요.’

‘요번만 들어주시면 제 재산 봉헌하겠습니다.’

대개는 그 기도가 들어줘도 자기가 얘기해 놓은 거 항상 깎습니다.

봉헌한다고 하고 봉헌하는 척만 합니다.

봉사한다고 하고 봉사하는 척만 합니다.

저 죽음의 밑바닥까지 떨어졌다가 하느님이 살려줬는데도 불구하고, 화장실 들어갔다 나올 때 마음 다르듯이, ‘

때가 돼서 해결됐겠지, 내가 재수가 워낙 좋으니까 어려움에서 잘 헤어났겠지.’ 합니다.

첫 단추의 첫 번째는 하느님을 여러분의 자판기로 아시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두 번째는 성숙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성숙한 기도는 내 집 울타리를 벗어나는 이타적인 기도입니다.

여러분이 하시는 기도의 내용을 보면 대개 99%는 여러분과 관련된 겁니다.

여러분 자신, 가족에 관련된 것 등 대개 내 집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여러분들이 봉헌하시는 미사 예물 내용을 보면, 대개 자식이나, 여러분과 아주 가까운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아픈 사람, 하다못해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하여 미사 신청하신 분 있으신가요?

성숙한 신앙인의 기도는 내 집 울타리를 벗어나서 화살처럼 햇살처럼 퍼져나가야 합니다.

성무일도나, 일상적인 로사리오 기도는 당연히 하는 것이고,

그 외에도 신학생 때부터 제가 정말 즐겨 하던 기도는 화살기도입니다.

뉴스를 보다가 가슴 아픈 장면이 나오면 잠깐 뉴스를 끄고 ‘주님 가서 도와주십시오.’

차를 타고 가다 허리가 꼬부라진 할머니가 손수레에 상자를 산더미처럼 싣고 올라가는 것을 보면 ‘

당장 제가 내려서 도와드릴 재간은 없습니다. 주님, 착한 사마리아 사람 보내주십시오.’ 기도합니다.

진심으로 믿고 하는 화살기도는 하느님의 손바닥에 분명히 얹혀질 겁니다.

그리고 내가 도와주지 못하더라도, 분명히 내 화살기도는 다른 사람에 의해서 좋게 이루어질 겁니다.

성숙한 신앙인들은 다른 이를 위한 기도를 많이 합니다.

내 자식을 위한 기도를 하지 않고 소년원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내 몸 낫게 해달라는 기도보다는 중환자실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꽃동네에는 유명하신 분이 두 분이 있었지요?

최귀동 할아버지, 글쎄 그분이 남을 위해 기도하고 살았다는 얘기는 잘 모르겠고,

그분 말고 배 베드로 할아버지라고 한 분이 있었습니다.

뇌성마비 할아버지셨는데, 그전에는 명동성당 앞에서 동냥하면 사셨죠.

한 푼 두 푼 주면 전부 다 미사 예물로 봉헌하든지 어려운 데 씁니다.

김수환 추기경님도 그분에게 기도를 부탁했다고 그러죠?

나중에 꽃동네에서 그분을 모셔다가 마지막 여생을 보내셨습니다.

그분이 거기 계셨을 때 제가 꽃동네 원목 신부로 이렇게 살 때입니다.

배 베드로 할아버지는 감실 앞에서 늘 떠나질 않습니다.

온몸이 아주 심한 뇌성마비였기 때문에 성체를 입에 넣어주기도 아주 힘들 정도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분은 성인이 분명했습니다.

종일 기도하는데 너무 힘들지 않으시냐 물으면 안 힘들데요.

그리고 기도하는 분들이 자꾸 많아지니까, 잠자는 것 줄일 수밖에 없고 성체 앞에 머무는 시간이 더 길어질 수밖에 없다고 하셨죠.

그분은 돌아가시면서도 신체까지 다 기증했지요.

비록 몸뚱아리는 어릴 때부터 버림받고 업신 받고 거지처럼 살았지만, 베 베드로 할아버지는 참 대단하신 분입니다.

배 할아버지가 꽃동네에 살아계셨기 때문에 꽃동네는 빛이 났던 겁니다.

그래서 저는 당시에 배 베드로 할아버지를 통해서

남을 위한 기도가 얼마나 큰 울림이었던가 하는 것을 그분을 통해서 느꼈던 적이 있었습니다.

 

기도 첫 단추의 세 번째, 기도의 결과를 눈으로 보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제일 큰 유혹이 내가 한 기도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확인이 안 될 때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내가 가끔 이야기해 드렸을 겁니다.

몇 대째 순교자 집안인 어느 할아버지가 저를 찾아와서 안에 신부 수녀가 하나도 안 나와서 창피해 죽겠대요.

한평생 자식들, 손주 손녀들 성소를 위해 기도했는데, 신부 수녀 나올 싹이 안 보인대요.

그래서 성소를 위한 기도 중단하시겠다 했어요.

그래서 할아버지한테 그랬죠.

‘할아버지, 할아버지 기도는 분명히 하느님 책에 기록이 돼 있습니다.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백 년 후에 후손 가운데 추기경이 나올지, 수도원 원장이 나올지 어떻게 압니까?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살아있을 때 눈으로 보고 싶은 것 때문에 지금 마음이 상하신 것 같은데,

우리는 눈 한 번 껌뻑거리는데 1초도 안 걸리지만, 하느님은 눈 한 번 껌뻑거리는데 천 년이 걸린다고 그럽니다.

하느님의 영원 차원에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고 돌려보냈던 적이 있습니다.

 

기도의 첫 단추, 네 번째는 ‘기도는 인내와 믿음을 갖고 해야 한다’라는 겁니다.

유명한 우산 준비한 할머니 얘기 아시죠?

어느 동네에서 가뭄이 나서 개신교 천주교 연합으로 공설운동장을 빌려서 기도를 했대요.

첫날은 천주교에서, 둘째 날은 개신교회에서, 이렇게 기도해도 하늘은 계속해서 별이 보이고 총총하고 별 소식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쳐갈 무렵인데, 다 같이 힘을 합쳐 기도했죠.

그런데 정말로 맑던 하늘이 캄캄해지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겁니다.

사람들은 ‘알렐루야’ ‘성모님 감사합니다.’ 난리가 났어요.

처음에는 좋아서 그냥 비를 맞다가 비가 세차게 쏟아지니까는 이제 비를 피하게 되겠죠.

사람들은 비를 피해서 지붕 밑으로 다 들어갔는데, 운동장 한가운데 할머니 한 분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아주 여유롭게 우산을 펴는 거였죠.

그래서 목사랑 신부가 할머니에게 ‘어떻게 우산을 준비했습니까?’ 했더니,

‘아니, 비 오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당연히 비가 올 줄 안다면 우산까지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신부와 목사 얼굴이 빨개졌다고 그럽니다.

결국에 그날 비가 온 것은 그날 모인 2천몇백 명의 기도 때문이 아니라,

당연히 비가 올 줄 알고 우산까지 준비했던 그 할머니의 믿음 때문에 그날 비가 내린 겁니다

 

여러분들 아무튼 단추가 아무리 많아도 첫 단추 잘 채우십시오

기도의 단추가 수천 개가 된다고 하더라도,

지금 얘기한 네 가지의 구멍에다가 단추를 잘 채워 놓으신다면 그다음부터는 눈 감고 저절로 채워집니다.

하지만 이 네 가지에 기초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백날 기도해도 그냥 기복적인 기도만 하다 한 번도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만나는 체험을 못 하고 세상을 뜨게 될 겁니다.

 

기도하시는 분들, 성숙한 기도인 되시기를 축원하겠습니다.

여러분들, 영원에 영원을 더하여 사랑합니다.

 

♣2022년 연중 제29주일 (10/16)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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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아스피린 | 작성시간 22.11.19 "성숙한 기도인"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끼며~신부님말씀 과 함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신부님~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2.11.19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귀임 마리아 | 작성시간 22.11.19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바람의노래 | 작성시간 22.11.20 아멘~감사합니다.
  • 작성자창수선화 | 작성시간 22.11.20 아멘!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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