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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열 신부 강론

[서품 41주년 소회]/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신부

작성자하늘호수♡마리아|작성시간24.05.17|조회수119 목록 댓글 2

횡설수설할 것 같아서 어제 좀 읽으려고 적었어요.
41년의 사제 생활.
아마 이러다 보면 50년이 후딱 다가올 것 같습니다.
 
뒤돌아보면 은퇴 전에도 한국에서 바쁜 신부 중 하나였고, 은퇴 후에도 나만큼 바쁜 은퇴 사제는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 바쁨은 나에게는 행복이었지만 동시에 적이기도 했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무엇이든지 합리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죠.
바쁘다는 이유로 직업인처럼 사는 많은 사제들을 보아왔습니다.
사제는 없어져 버리고 전문가만 남아버리는 모습입니다.
영성도 없어지고 건강도 잃어버리고 업적만 남습니다.
오늘 미사 가운데 얘기한 사제 꼴값을 못하는 거죠.
41년간 초심을 잃지 않고 이 시간까지 살게 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느님을 중심으로 양들을 이끌고 한눈팔지 않는 목자로 살게 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언젠가 제가 얘기 드렸지요.
사제는 개인 수도가 아니라 공동 우물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개인 수도처럼 여기려 할 때 저는 늘 뒤로 물러서 평행선을 유지하려 애썼습니다.
아마 그런 분들한테는 제가 무척 차갑게 보였을 겁니다.
별의별 유혹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마는 아무튼 그래도 흔들거리지 않고 잘 살아왔습니다.
 
이렇게 긴 세월을 사제로 살아왔어도 여전히 저는 저 자신에 대해 미덥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왜냐?
관 속에 사제복을 입고 들어가 관뚜껑이 닫혀야 내가 사제로 살았나보다 하는 걸 느끼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은퇴했다는 사실이 나를 느슨하게 만들까 봐 저는 은퇴한 그날부터 은퇴하기 전보다 훨씬 더 긴장하고 삽니다.
은퇴했다는 사실이 나로 하여금 기도를 멀어지게 할까 봐, 또 따뜻한 배려심을 잃어버릴까 봐,
때로는 날카로운 차가운 이성을 잃어버릴까 봐, 때로는 배움에 대한 열정이 식을까 봐 늘 긴장하고 삽니다.
사제관을 소개하면서 제가 사는 모습을 교우들한테 보여주면 교우들은 제가 정리 정돈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저는 그 깜짝 놀라는 걸 보고 내가 또 깜짝 놀라요.
내가 일부러 무슨 옷을 갤 때 각을 맞추는 것도 아니고 똑같은 방법으로 옷을 개서 그냥 올려놓으니
저절로 이렇게 정리가 되는데, 도대체 놀라는 이 인간들은 어떻게 사는 거야? 하고 내가 놀랄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서 교우들에게, ‘이렇게 보여주는 것은 자랑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원래 이렇게 살았다.’
그러면서 제가 고사성어에 나오는 두 글자를 설명합니다.
공자가 말씀하신 ‘신독’이라는 말을 제가 인용합니다.
‘신독(愼獨)’ 뜻을 풀이하면 ‘홀로 있을 때 경계해야 한다.’
사람은 홀로 있을 때 무너집니다.
맞죠? 막 살게 되고 막 생각하게 되고 질서가 다 깨집니다.
왜? 아무도 안 본다는 생각 때문에.
‘혼자 있을 때 경계하라.’
고등학교 2학년 때 한문, 그 지겨운 한문 선생님이 한 얘기는 다 까먹었어도 이 말은 제 귀에 쏙 들어왔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그 어린 나이, 중학교 고등학교 때도 동생들을 돌봐야 하다 보니까, 내가 흔들리면 안 된다고 하는 책임감,
내가 좋게 본을 보여야만 내 동생들도 형을 따라 그리 살 것이라는 마음이 있었죠.
그때 한문 선생이 신독이라는 말을 하면서 공자님께서는 잠잘 때도 누가 자기를 볼까 잠자는 모습조차도
늘 단정하게 자려고 애를 썼다고 했죠.
저는 밥을 해 먹을 때도 그런 마음으로 해 먹습니다.
설거지할 때도 그런 마음으로 하고요.
청소할 때도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합니다.
 
나중에 언젠가는 온전한 정신을 잃어버리고, 모르는 거죠.
그래서 저만이 아니라 모든 분의 소망이겠죠.
그냥 살 만큼 살고 밤에 잠자듯이 저녁 기도 바치고 주님께 감사 기도드리고 잠을 들었는데,
아침에 깨보니 세상에, 예수님이 계시고 성모님이 계시면, 우와 대박!
그저 남한테 피해 안 끼치고, 가는 모습 안 보이고, 그렇게 기도하는데 아마 이루어지겠죠.
그래서 지금 미리 얘기 드리는데, 나 갑자기 세상 떠났다는 얘기 나와도 놀라지 마세요.
언젠가는, 다 마찬가지예요. 그렇죠? 우리 시한부 인생들이잖아요.
그래서 늘 나 자신을 경계하면서 살아 그날 그 시간이 언제 오더라도 별로 두려움이 없어야 할 것 같습니다.
 
혼자서 41주년을 맞이할까 봐 전국에서 오신 여러분들, 또 유튜브를 통해서 기도해 주시는 교우들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이 없으면 저도 없습니다.
저는 이날 다시 한번 내 사제의 신원을 확인하고 마음을 다잡아보는 날로 생각하고 지내겠습니다.
매일매일 매주 매주 매달 매달 매년 매년 초심을 잃지 않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천막 안에 뷔페가 준비되어 있고 식탁과 의자가 있는데 자리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노약자분들께 저 자리는 양보하시고, 그늘에서 편안하게 드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기 군데군데 그늘이 많잖아요?
저 뷔페는 내가 감곡과 배티에 있을 때 무려 12년 동안 거래하던 곳이죠.
서운동에 있을 때만 서운동 신자들이 은총의 밤 때 식사를 직접 제공했었죠.
그래서 믿고서 내가 불렀어요.
아마 정성을 다해서 준비를 잘 해오셨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그리고 사제관에 들어가 성인 유해 앞에서 경배할 수는 없어도, 저 안에서 내다보고 계시니
여러분들 필요한 것, 원하는 것, 치유받을 것 전구 청하세요.
아마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오늘이 좋은 날 다 치유받고, 또 어둠이 있는 분들은 깨끗이 구마해서,
돌아갈 때는 영과 육이 완전히 부활해서 하늘에 떠다니는 예수님처럼 승천하는 마음으로
여러분의 꼴을 찾아 아름다운 예수님의 모습대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 또 유튜브 방송을 듣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강복하소서.
아멘
 
 
♣ 2024년 주님 승천 대축일 (5/12)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사제서품 41주년 소회

출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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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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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4.05.17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바람의노래 | 작성시간 24.05.18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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