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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열 신부 강론

[2024년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얼마나 아십니까?/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신부

작성자하늘호수♡마리아|작성시간24.05.30|조회수137 목록 댓글 4

+찬미 예수님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오시냐고 많이 애쓰셨습니다.
오늘 메인은 서울방이고, 대구경북방과 강원방에서도 오셨어요.
나는 앉아서 여러분들 기다리지만 여러분들은 여기 오시려면 새벽부터 일어나서 또 얼굴도 꽃단장하고 오셨죠.
이 세상 사람들이 전부 그 질문과 그 답을 아는 질문을 하겠습니다.
 
‘여러분들, 오늘 어떻게 오셨습니까?’
‘주님께서 불러주셔서 왔습니다.’
 
일제히 나올 줄 알았더니 그렇지를 않네요?
겉으로 보면 여러분들이 신청하고 여러분들이 차 타고 온 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거룩한 땅은 절대 내가 오고 싶다고 오는 곳은 아니지요.
서울방장이 이야기했듯이 원래 신청한 사람들 가운데 못 온 사람도 있고, 또 억지로 기사 노릇을 하느냐 끌려온 사람도 있어요.
억지로 끌려왔든 정말 학수고대하며 왔든, 중요한 것은 뭐냐?
하느님이 불러내셔야 이 자리 땅을 밟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멘
아멘 하시는 분께는 축복이 갈 것이고 날로 먹으려는 분께는 가다 돌아올 겁니다.
 
예전에는 현직에서 물러나면 은퇴 사제라고 불렀지요.
그런데 지금은 원로 사목자, 혹은 고해성사 전담 신부라고 이름을 바꾸었어요.
원로 사목자에 ‘사목’이라는 말은 ‘은퇴만 해봐라. 내가 신나게 놀아줄게’ 생각했던 내 기를 꺾어버렸어요.
본당 신부 아니어도 죽을 때까지 사목하라는 말인데, 어떻게 사목해야 하나?
 
첫 번째는 한평생 신자들을 가르쳤으니, 계속해서 피정 요청하면 나가야 할 것이고요.
또 코로나 때부터 시작했던 유튜브 강론, 많은 교우분이 그래요.
‘코로나 때 신부님 유튜브 강론으로 간신히 살아남았어요. 감사합니다.’
이런 얘기들을 들으면 너무 감사하죠.
주교님이 제게 유튜브 강론 꼭 하라 했을까요? 아니죠
내가 안 해도 되는 거였죠.
그런데 왜 했죠? 나도 몰라요.
성령의 역사죠.
성당도 못 나가는 암울한 시간, 유튜브 강론을 시작하자.
물론 그전 감곡이나 배티에 있을 때 강론과 피정 강론도 유튜브에 많이 올려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코로나 터지고는 좀 더 체계적으로 주일 강론, 그다음에 평일 강론을 올렸죠.
요즘은 구약 성서 강의하고 있어요.
지금 35회 정도까지 했는데, 50회 정도에서 끝이 날 것 같아요.
끝나고 나면 교우들이 어렵게만 여겼던 구약에 좀 쉽게 다가설 수가 있을 겁니다
그것이 끝나면 ‘서간’을 좀 둘러보고 싶어요.
그러면 신구약 전반에 관한 것은 긴 시간 동안 강의가 끝납니다.
그것 끝나고 나면은 뭐 할까?
신자들은 인문학 강의해달라고도 하는데, 그것도 성령께서 시키시는 대로 따라가겠죠.
그래서 아무튼 유튜브 강론은 내가 죽을 때까지 해야 할 원로 사목자의 첫 번째 일입니다.
그리고 고맙게도 강론은 입만 살아있으면 끝까지 할 수 있어요, 정신만 나가 있지 않으면.
 
그다음에 두 번째로 생각했던 원로 사목자가 할 일, 물론 제 입장에서 입니다.
다른 은퇴신부님들은 다르실 것입니다.
지금은 환난의 시대요, 또 너무 많은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갑니다.
아이는 아이들대로, 부모는 부모들대로, 수녀들은 수녀들대로, 또 사제는 사제들대로.
하지만 어디를 가도 치유 받을 장소가 만만하지 않죠.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가장 많이 치유가 일어나는 곳은 성지입니다.
홀리 랜드라는 말이 왜 붙었겠습니까?
이곳은 성지는 아닙니다. 하지만 경당에 수많은 성인 유해가 모셔져 있죠,
여기 도착하시면 예수님께 인사하고, 몸을 돌려 2층에 모셔져 있는 성인분께 인사 하세요.
지금 경당에는 70분의 유해가 모셔져 있고, 내 방에는 27분의 유해가 있지요.
또 십자가 보목 3점 있습니다.
원래 경당에서 미사 드리면 교우들은 올라가서 큰절을 드립니다.
아마도 여러분들 세례명 가운데 30퍼센트의 성인 성녀 유해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보조 의자에 앉아 계시지만 사실 성수로 축성 받은 의자는 나무 의자입니다.
열두 개의 나무 의자는 12사도를 나타내요.
그리고 나무 의자 한쪽은 돌이 바치고 있고, 다른 쪽은 나무가 바치고 있죠.
돌은 사도들의 굳은 믿음을 나타내고, 나무는 유연성을 나타냅니다.
상징성이 있는 거룩한 축성 받은 나무입니다.
그리고 제 집 앞에 땅이 또 하나 보일 것입니다.
이렇게 둥그렇게 쳐놓은 바닥은 저 앞산을 땅에 뉘어놓은 형상입니다.
지금은 꽃이 안 보이지만, 가을이 되면 오만 꽃들이 다 올라오게 씨를 뿌려놓았습니다.
저기는 신자들이 쉴 수 있는 꽃밭입니다.
물론 전체에는 100종류의 야생화가 심겨있습니다.
담 뒤에도 매괴 장미가 보이죠?
매괴 장미는 덩굴장미라 송이송이 올라가고, 겹 장미로 향기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저는 떨어지려는 장미를 손으로 흩어 꽃잎을 받아 말렸어요.
향기가 매일매일 더 진해져요. 이따 조금씩 가져가세요.
저는 꽃이 지려고 하면 꽃망울을 따줘요. 그러면 거기서 꽃이 계속 나와 10월까지 펴요.
지금 1차 화려했던 것은 시드는 과정이고, 이제 꽃을 따준 곳에서 다시 꽃이 올라오겠죠.
그러면 매괴 장미들이 돌담 밑으로 내려와 축 늘어지게 될 겁니다. 상상이 가시죠?
그리고 지금이 그늘을 만드는 대왕 참나무는 내년이나 1년 지나면 거의 닿을 겁니다.
그러면 그늘이 더 꽉 차겠죠,
여기에 차광막을 칠 수는 없잖아요.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정말 자기도 모르게 많이 쓰는 말이 있어요.
뭐냐? ‘나 잘 알아.’
‘나 그 사람 잘 알아.’, ‘나 그것 잘 알아, 내가 전문가인데.’
 
‘나는 잘 알아’라는 말은 세 분야에서 많이 씁니다.
첫 번째 사람에 대해서 나는 잘 안다고 합니다.
두 번째 세상 이치에 대해서 난 잘 안다고 합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 하느님에 대해서 자기는 잘 아는 척해요.
자기 혼자만 계시받았다, 예언 받았다고 해요. 영적 교만에 차 있는 거죠.
사람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신에 대해서 잘 안다는 말을 부담감 없이 하는 사람이 많아요.
 
첫 번째 사람에 대해서.
‘저 사람, 틀려먹었어, ‘저 사람 나쁜 사람이야, 내 저 사람 집안도 잘 알아.’
마치 뱃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누구는 어찌어찌하더라.
남에게 들은 이야기로 단죄합니다.
참 위험한 말이 ‘나는 잘 알아’라는 말이에요.
굳이 다른 사람 얘기할 필요도 없죠.
여러분들 본인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아세요? 모르죠?
아이고, 급 겸손으로 바뀌네.
본인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이것이 저도 저 자신에 대해 놀랄 때가 많아요.
양파 껍질 벗겨지듯이 뭔가 계속 나와요.
그런데 문제는 깨끗한 껍질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떤 때는 더러운 껍질도 나와 놀라요.
아, 내 안에 이런 어둠이 있었구나, 내 안에 이런 못된 것이 있었구나.
나 자신도 잘 모르면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잘 안다고 판단해요, 단정해요.
저 인간 다른 사람 잘 속이는 인간이야, 아니면 반대로 저 사람은 잘 속아.
쉽게 툭툭 던지죠.
누구를 잘 믿는 사람은 잘 속을 수밖에 없겠죠. 그렇죠?
대표적인 사람이 나예요.
그런데 여러분, 사제는 사람을 일단 믿고 봐야 하는 위치예요, 의심부터 해야 하는 위치예요?
믿어야 하잖아요.
사제 존재의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사람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 대할 때 ‘저놈 나한테 뭐 사기 치러 왔지?’ 한다면, 이것은 신부가 아니죠.
본당 신부 시절에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돈 얻으러 오는 사람들이 꽤 많았어요.
멀쑥하게 생긴 사람이 와서 객지에 와서 지갑을 잃어버렸대요.
집에 갈 차비 5만 원만 꿔주시면 바로 보내드리겠대요.
돈 줬죠. 돈이 왔을까요? 안 왔죠.
몇 년이 지나서 내가 다른 본당 부임했는데 그 사람이 다시 나타났어요.
그리고 같은 레퍼토리로 돈을 꾸어 달라고 해요.
그 사람은 몇 년 전 봤던 그 신부인 것을 모르는 거죠.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해요?
소리 꽥 지르고 ‘이 인간이 어디서 사기를 쳐, 경찰 불러?’ 해야 할까요?
여러분 같으면 어떡할 거예요?
저는 그렇게 못 해요. 다시 돈을 줍니다.
알고도 주는 겁니다. 이유는 뭐냐?
그 사람 입에서 ‘요즘 신부도 안 속아. 세상에, 신부도 약아 빠졌어.’
이런 세상이면 얼마나 살기가 빡빡하겠어요.
그래도 알면서도 속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세상이 조금 살맛 나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알면서 속을 때가 많아요.
우리가 ‘안다’라고 하는 이 단어는 굉장히 부정확합니다.
나 자신을 모를 때도 많고, 또 부부지간은 다 알아요?
5, 60년을 같이 살아도 서로 몰라요. 완전 남처럼 느껴질 때가 있죠.
옛말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왜 있겠어요?
‘저 사람 잘 알아’라는 말이 굉장히 조심스러운 이유는, ‘판단’이 반드시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저 사람 잘 알기 때문에 흑백으로 나뉘어요.
나쁜 사람, 좋은 사람, 가까이해도 될 사람, 멀리해야 할 사람.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난 다음에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내가 얼마나 저 사람을 단죄했는가 하며 가슴을 치죠.
‘입조심해야지’
그런데 그리고 또 조심하지 않아요.
 
 
두 번째로 우리 세상에 대해 아는 척을 합니다.
물론 안다고 할 때는 근거가 있으니까 안다고 하겠지만, 파고 들어가면 모르는 게 훨씬 많죠.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이 ‘수박 겉핥기식이었구나!’ 합니다.
노벨 물리학상, 노벨 화학상, 노벨 생물학상을 받은 사람들은 천재예요. 맞죠?
그런데 그 천재들의 90%가 하느님을 믿어요.
연구하고 파고 파고 들어가면 결국 과학자들은 무엇을 발견하는가?
특별한 존재가 만들어 놓은 질서를 발견할 뿐입니다.
과학자들이 창조하는 것은 아니죠.
연구하다, 어느 큰 존재가 이런 질서를 만들어 놓았을까 하면서 무릎 꿇는 거예요.
IQ가 떨어져서 하느님을 믿을까요?
인간이 얼마나 작고 하찮은 것인지를 그들은 연구할수록 깨닫는다는 말입니다.
 
서울 방장님, 본인이 알고 있는 태양에 대해 말해보세요.
여러분들도 태양에 대한 상식이 뭐가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우리들이 알고 있는 태양은, ‘태양 없으면 못산다’라는 정도죠.
그런데 그것보다 태양에 대한 설명은 더 많겠죠?
지구가 커요, 태양이 커요? 태양이 크죠.
그러면 지구 몇 개가 모여야 태양 크기가 되는 줄 아세요? 백 개.
지구가 100개 모여야 태양 하나가 만들어져요.
그런데 그 태양이 5억 개 들어가는 별이 셀 수 없이 많대요.
이것으로 끝나는 것인가? 아니죠,
그 별이 들어가는 별이 또 있어.
그러니 거기서 우리 지구를 내려다보면 사막의 모래알, 머리카락 같은 거죠.
그리고 거기서도 대한민국 월정리?
그런데 하느님은 보신단 말입니다.
지금 미사 드리고 있는 우리도 보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이 전지전능하신 거죠.
 
카페 해외방에 평생 직업이 비행기 기장인 형제가 ‘할머니의 급소’라고 재미난 글을 올렸죠.
과학자, 의학자가 하느님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세미나를 했대요.
처음에는 천체 물리학자가 어마어마하게 큰 망원경으로 아무리 봐도 하느님은 없더라.
그러니 거기 있던 무신론자가 박수치며 맞는다고 했죠.
그다음에 수술을 수천 번 했던 의사가 올라와서, 내가 수천 번 배를 갈라봐도 영혼은 없더라.
또 무신론자들이 박수를 마구 쳤죠.
그런데 앞줄에 있던 할머니가 ‘잠깐만요, 나도 할 말이 있어요.’하며 마이크 잡더니 그러더래.
‘망원경을 보셨던 선생님, 그 망원경으로 바람이 보입니까?’, ‘아뇨.’
‘어떻게 바람도 못 보는 망원경으로 하느님을 본다고 그랬수?’
과학자가 고개를 푹 숙였죠.
그다음에 ‘배를 수천 번 갈라봐도 영혼이 없다 했던 의사분, 자식 있어요? 사랑합니까?’
‘너무 사랑하죠.’
‘그러면 배를 가르면 사랑이라는 것이 있습니까?’ ‘아뇨.’
‘사랑도 발견 못 하면서 무슨 영혼을 못 보았다고 그러시오.’
그래서 그날 세미나는 어떻게 바뀌었냐?
하느님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세미나가 순식간에 하느님은 계신다는 세미나도 바뀌었대요.
무신론자들이 할머니의 강한 펀치에 맞아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는 확인되지 않은 전설이 있습니다.
그 할머니 똑똑하죠?
제 경험으로 볼 때도 무신론자들과 싸운 것은 쉬워요.
그분들은 그냥 대들죠. 나는 피하면서 발만 탁 걸면 넘어지세요.
그런데 힘든 사람은 누구냐?
‘하느님 있어도 되고 없어도 돼요.’ 하는 사람은 해결이 안 돼요.
 
여러분들, 요즘 은하수 보세요? 도시에서 안 보이죠.
은하라 부르는 것을 성운이라 해요, 별의 구름이라는 말이죠.
성운은 몇 개가 있냐? 천억 개가 있대요.
그리고 그런 성운의 무리가 100억 개가 우주에 존재한대요.
태양이 왜 중요하다 그랬죠?
빛을 내기 때문이죠.
그런데 우리는 햇빛이 나면 햇빛이 난다고 투덜거리고, 햇빛이 없으면 안 난다고 투덜거리죠.
태양은 수소가 타고 있는 거예요.
수소가 1초에 6억 톤, 시간에 2조 톤이 타요.
그렇게 45억 년 동안 탔어요. 그런데 아직 30퍼센트밖에 못 태웠대요.
오죽하면 옛날에 로마 시대에는 태양을 신으로 모셔요.
또 태양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을까요?
태양은 지금도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모르는데, 분명한 것은 1초에 17km 움직여요.
자동차보다 훨씬 빠르죠.
그리고 이 태양은 혼자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태양계를 거느리며 가죠.
또 지구는 몇도 기울어져 있죠? 23.5도.
그런데 만일 기울어지지 않았다면 사계절이 안 나와요.
그리고 인간이 살 수 없을 정도로 뜨겁거나 춥거나 둘 중 하나죠.
참 오묘하지 않습니까? 하느님이 살짝 지구를 기울여 놓으신 것.
그러니까 우주 과학자들이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대체 이걸 누가 만들었을까 하죠.
세상에는 ‘저절로’라는 말은 없어요.
우리는 뭐 하다가 할 말 없으면 저절로 된 거라 합니다.
만유인력을 뉴턴이 발견하기 전에는 사과가 위로 아닌 밑으로 떨어지는 것은 저절로 일어난 일이었죠.
하지만 원리를 연구하며 ‘끌어당기는 중력이 있구나’ 하나하나 질서를 밝혀내는 거죠.
 
오늘 과학 공부 많이 하십니다.
그러니 세상 이치에 대해 안다고 까불지 말라 이겁니다.
또 바다 면적이 지구 전체에 몇 프로일까요? 정확기 70.9 프로.
그런데 마음 같으면 인구가 늘어나니 개간 사업을 해서 땅을 넓히고 싶죠.
그러나 이 비율이 깨져 80 : 20이 되면 지구는 순환이 되지 않아 생물이 존재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땅이 바다보다 넓으면 죽음의 땅이 돼 버려요.
바다는 냉장고 역할을 해요. 지구가 더우면 식혀주는 거예요.
북극의 차가운 물이 밑으로 내려오면서 태평양을 식혀주는 겁니다.
 
이렇게 세상 이치를 보면 아는 것이 별로 없어요.
또 밥 먹으면은 밥이 들어가서 영양분을 다 빼고 불필요한 것은 뒤로 보내죠.
신기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뼈를 먹은 것도 아니고 살을 먹은 것도 아니고, 밥과 반찬을 먹었는데 그것이 살이 되고 뼈가 되어 아이들이 자랍니다.
사람의 뇌는 컴퓨터보다 수만 배 정밀하고 치밀하다고 합니다.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도 약 3%도 못 쓰고 죽었대요.
대부분 사람은 1%도 못 쓰고 죽는대요.
 
이제 세 번째로 넘어갑시다.
첫 번째는 사람에 대해서, 두 번째는 세상 이치에 대해서 안다.
세 번째는 하느님에 대해서 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을 얼마나 아십니까?
어떤 사람은 하느님과 통교한다 해요. 통교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죠.
 
가톨릭교회는 계시 종교입니까, 자연 종교입니까? 계시 종교죠.
계시 종교와 자연 종교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계시 종교는 인간이 만든 종교가 아니라 절대자의 말로 만들어진 종교입니다.
세계에 3대 계시 종교가 있죠?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유대교입니다.
불교는 어느 쪽에 속하나요? 자연 종교.
왜? 절대자가 만든 종교가 아닌 사람이 만든 종교죠.
절에서 이야기하는 석가모니는 첫 번째 깨달은 1번 타자예요.
불교는 모두가 각자가 부처가 되는 것이 목표예요.
그래서 불교에서 성인 되기가 어려워요.
우리 가톨릭은 구원받으려면 어떻게 도식이 돼요?
하느님의 은총 더하기 인간의 공로입니다.
그런데 불교, 특히 한국은 대승불교다 보니 기독교처럼 자꾸 바뀌어 가요.
부처님 자비의 힘으로 구원받는다.
그런데 소승불교는 죽으나 사나 본인이 해야 해요. 얼마나 힘들어요?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것이 있죠, 전구라는 것이 있죠. 하지만 저기는 없어요.
죽을힘을 다해 혼자 깨달아야 해요.
 
계시 종교는 하느님이 알려 주신 믿는 종교죠.
그래서 우리는 ‘믿을 교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삼위일체’, 하느님은 한 분이시나 위격이 셋이다.
왜 셋이야고 우리가 따지고 들 상황이 아니죠.
그것은 인간이 만든 교리가 아니고 하느님이 직접 알려 주시는 거죠,
그래서 그냥 믿을 뿐입니다.
하느님이 당신 입으로 우리 위격이 다섯이라 하면 믿어야 합니다.
 
하느님이 성부 성자 성령이라 말씀하셨기에 하느님이 한 분이면 삼위임을 믿는 겁니다.
다만 우리가 이 삼위일체 대축일에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분이 왜 3위냐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의 관계성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어떤 관계로 되어 있는가?
요한복음 5장 19절에 ‘아들은 아무것도 자진해서 할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0장 30절에 ‘아버지와 나는 하나입니다.’
요한복음 17장 11절에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이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자 이제, 첫 번째 세 분의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 나왔죠?
둘이라는 거예요, 하나라는 거예요? 하나예요.
하나라고 하는 것이 삼위일체 관계성의 첫 번째 특징입니다.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들도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
‘하나’라고 하는 얘기를 굉장히 강조하셨죠.
 
여러분 세상에는 하나인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가 아닌 관계가 많죠
돈으로 뭉쳐진 관계를 계원이라 그럽니다.
정치적 견해로 뭉쳐진 관계를 당원이라 합니다.
피로 뭉쳐진 관계인 혈연, 같은 동네 출신인 지연, 같은 학교 출신인 학연.
세상은 뭔가 이렇게 뭉치게 하는 구심점이 있어요.
어디 출신이냐? 어느 대학 출신이냐? 군인도 무슨 출신이냐?
그런데 이렇게 하나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실제는 하나가 됨이 아니라는 거죠.
이런 관계는 특징이 있어요.
첫째 그 모임은 절대로 평화롭지 않아요.
영적인 평화를 계 모임에 가서 느낀다? 이상한 사람이죠.
둘째 그 모임은 언제라도 깨질 소지가 있어요.
계주가 돈 떼먹고 튀면 깨지잖아요.
또 감투싸움을 하고 누구 파 누구 파로 갈라져요. 언제든 깨질 염려가 있죠.
그리고 셋째 그 모임에는 상처와 미움이 늘 존재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라 할 때의 ‘하나’는 우리가 생각하는 계원 당원 학연, 지연 등으로 뭉쳐진 하나가
아니라는 것은 짐작되시죠?
그러면 삼위일체는 무엇으로 하나가 되었을까?
어떤 접착제로 하나가 될 수 있었을까?
‘사랑과 평화’라고 하는 접착제로 삼위일체 하느님 하나가 돼 있었던 거죠.
우리는 삼위일체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하느님의 자식들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해타산으로 모인 세속 공동체와 다르다는 겁니다.
돈, 정치적인 견해, 지방색, 학력이 달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로 뭉칠 수 있었던 거예요.
사실은 12사도들은 예수님이 안 계셨다면 하나가 될 수가 없었어요.
세리도 있었고, 그 세리 같은 사람 잡아 죽이는 열혈당원 유다스도 있었죠.
그렇지만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셨기 때문에 하나가 된 거예요.
그래서 삼위일체적인 성당이 돼야 합니다.
 
우리 공동체는 하느님 보시기 아름다운 공동체로 변해야 합니다.
김웅열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주님의 느티나무’라고 하는 이 카페도 삼위일체적인 모습을 갖고 있어야 해요.
‘성당에 오면 편하다, 행복하다, 치유된다.’
이것은 분명 삼위일체의 신비를 증거하는 성당입니다.
사제와 교우들과 아름다운 성당이 하나가 되는 것은 삼위일체적인 성당입니다.
-삼위일체적인 성지가 있겠죠?
볼거리, 먹을거리가 있고 들을 거리, 즉 영성이 있다는 말이죠.
또 삼위일체적인 가정이 있죠.
아버지는 사랑과 지혜가 가득 찬 권위를 갖고 있고, 어머니는 편향하고 이기적이지 않은 모성애를 갖고 있고,
아이들은 부모의 권위에 순종하면서 건전한 인생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가정이 바로 삼위일체적인 가정이죠.
바로 이것을 이어주는 것이 무엇이죠? 사랑과 평화.
또 삼위일체적인 미사성제가 있습니다.
엄숙하면서도 기쁨과 평화가 가득한 미사가 그거죠.
그래서 그 미사가 끝나고 돌아나갈 때는 들어올 때 얼굴과는 달라야 해요.
치유되고 내 안에 어둠이 물러나는 구마의 은혜를 받고, 나갈 때는 담대한 믿음으로
‘그래, 나 이제 세상에 지지 않아. 내가 지금 벼랑 끝에 있다고 해도 주님이 받쳐 주실 거야.
또 내 자식 하느님이 지켜주고 계시는 것 믿어.’ 하며 새롭게 부활해서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대 뒤에 십자가를 그냥 고통에 허덕이는 십자가를 안 한 이유가 그거예요.
세상에서는 고통 속에 있어도 여기 와서는 부활한 예수님을 보세요.
 
‘얘들아 나도 부활했다. 너희들도 부활해서 가야 한단다.
나를 위해 살다 죽은 수많은 내 귀한 성인 성녀들이 이곳에 있단다. 그들에게 전구를 청해라.’
 
사제는 정성을 다하여 설교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설교대에서 증거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제의 그 말씀을 통해서 은총이 내려와야 합니다.
그리고 사제가 드리는 미사는 이 생애의 마지막 고별 미사를 드리듯이 경문 하나하나에, 또 사제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온 정성을 쏟는 그 미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감격과 기쁨으로 성체를 영하게 만들어 주는 그런 미사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 신비를 드러내는 거룩한 미사가 되겠죠.
 
하느님은 인간 머리로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를 우리의 삶을 통해 가끔 맛보기로 보여 주시죠.
우리 중 천당, 지옥, 연옥 갔다 온 사람 있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이 세 가지를 다 느끼고 살아요.
부부 싸움 신나게 하고 죽일 놈 살릴 놈 하며 상대가 죽도록 미워, 그러면 그곳은 지옥이죠.
그리고 자존심 때문에 몇 달 동안 말 안 하고 밥상만 딱 차려줘, 밥도 따로 먹고 방도 각자 쓰고, 이러면 거기는 연옥이죠.
그러다가 성령 세미나에 가서 신부님이 ‘먼저 손 내밀어라, 내 탓이라 해라.’
눈물 흘리면서 고백성사 보고 집에 와서 용기 내서 ‘여보, 잘못했어.’
신랑도 ‘내가 더 큰 잘 못했지.’ 하며 서로 끌어안을 때, 그때가 천국이죠.
우린 살아가면서도 천국과 지옥과 연옥을 다 겪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김웅열 신부님 유튜브 강론을 들을 때는 천국이었는데,
회사 가서 상사에게 꾸지람 들을 때는 마음에 뭔가 턱 시커먼 것이 들어와 있죠. 그때는 연옥이죠.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의 세상을 이 작은 머리로 다 알 수 없어도, 하느님은 가끔 그 맛을 보여 주신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들이 ‘하느님에 대해서 나는 확실히 알아.’ 이 말은 참 위험한 말입니다.
우리는 계시 종교이기에 하느님이 알려 준 것만을 교리로 갖고 있고,
또 피정 지도 신부인 나는 그것을 이유식으로 만들어 쉽게 설명해 주는 것일 뿐,
내 입에서 없었던 교리가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교주죠.
그래서 말씀을 선포하고 말씀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잘못하면 자기도 모르게 교주가 돼요.
사제에게 어떤 카리스마가 있어서 신자들이 몰려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겁니다.
그렇지만 일단 모여들면 사제는 자리를 비켜주어야 해요.
누굴 만나게 해야 해요? 예수님! 당연하죠.
그런데 교주는 예수님을 못 만나게 해요.
자기가 바로 하느님이라 해요. 재림예수라 해요.
그리고 모든 걸 다 뺏어요.
 
세례자 요한이 위대하고 모세가 위대한 것은 왜라고 그랬죠?
첫째 자리에서 둘째 자리로 내려오기는 어렵죠.
모세도 40년 동안 광야에서 고생하다 이제 가나안 땅 앞에 도착했는데, 모든 권한을 누구한테 맡깁니까?
여호수아에게 맡기고 성서에서는 사라져 버려요.
그래서 모세가 위대한 것입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자 요한을 사람들은 메시아로 알고 요르단강으로 몰려들었죠.
예수님이 나타났어.
예수님을 깡그리 무시할 수도 있었어, 개무시할 수도 있었어.
하지만 세례자 요한은 ‘나는 이분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다.’
그리고 자기 제자들에게 가라고 합니다.
‘저기 하느님의 어린양이 가신다.’
자기를 위대한 스승으로 알고 있는 제자를 다른 사람에 보내는 것 쉽지 않죠.
세례자 요한은 자기 위치를 정확히 아는 상남자였죠.
 
삼위일체 대축일, 여러분 가정이 삼위일체적인 가정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여러분의 본당도 삼위일체적인 본당이 되길 축원합니다. 아멘
또 우리 느티나무 식구들, 느티나무 안에서 그늘에서 하느님을 알고, 늘 사랑과 평화로 하나가 되기를 또한 축원합니다. 아멘
 
2024년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5/26)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출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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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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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바람의노래 | 작성시간 24.05.30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4.05.30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1만두 | 작성시간 24.05.30 신부님, 감사드립니다. 아멘.
  • 작성자kksu | 작성시간 24.05.31 신부님,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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