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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열 신부 강론

[구약 묵상 시리즈 제36강] 잠언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신부

작성자하늘호수♡마리아|작성시간24.06.01|조회수150 목록 댓글 3

+찬미 예수님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오늘 우리들이 묵상해야 할 구약 성서가 잠언입니다.

이 구약 강의도 이제 몇 번 안 남았습니다.

잠언하고 그다음에 예언서하고, 그리고 난 다음에는 이제껏 해 온 것 중에 조금 미비했던 부분을 짧게 묵상하는 것으로

끝맺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잠언은 오늘 한 번에 끝내고, 예언서도 두 번, 혹은 상황을 봐서 한 번에 끝내겠습니다.

 

잠언은 시편 다음으로 읽는 성서입니다.

그리고 잠언 첫 번째 제목이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금언집’이라 적혀있죠.

잠언은 보석이 가득 담긴 상자, 금싸라기로 가득 채워져 있는 상자입니다.

그리고 번쩍번쩍 빛나는 수많은 종류의 보석이 담겨 있는 보석함 같은 책이 바로 잠언입니다.

잠언집에 나오는 모든 말씀은 살아있고 또 생명이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죽은 문자가 아니죠.

그래서 시대를 초월해서 지금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눈을 뜨게도 하고, 격려하기도 하고, 때로는 위로해 주기도 하고,

때로는 아주 썩은 부분을 도려내 주기까지 하는 것이 바로 잠언입니다.

‘잠언’이라는 글자의 뜻은 ‘경계하는 말’ 또는 ‘교훈의 뜻을 포함한 짧은 글’로 해석됩니다.

달리 얘기하면 명언, 금언, 격언, 또 속담의 한 종류로도 얘기할 수 있습니다.

잠언은 31장으로 되어 있죠.

그중 24장까지는 솔로몬이 한 얘기고, 25장에서 30장까지는 유다 왕이었던 히즈키야의 신하가 편집한 솔로몬의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솔로몬의 말이죠.

그리고 마지막 31장만이 르무엘 왕의 말로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잠언 대부분은 솔로몬의 말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겁니다.

 

여러분들, 솔로몬은 어떻게 해서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었습니까?

다윗 왕과 밧세바 사이에서 태어난 넷째 아들입니다.

그는 아들로서 다윗 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습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 못지않게 하느님을 경외하였죠.

하느님이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나에게 원하는 것을 구하라’ 하십니다.

솔로몬은 뭐라고 그럽니까?

‘종은 작은 아이입니다.’ 종이라고 하는 것은 솔로몬을 나타내겠죠.

‘작은 아이다 보니까는 야훼 백성을 셀 수도 없고 또 재판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마음을 이 종에게 주시어 주님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사실 솔로몬처럼 이렇게 말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죠.

 

만일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똑같은 질문을 한다고 합시다.

‘너에게 무엇을 주랴? 말해보아라.’ 하시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구하게 될 것인가?

글쎄요, 사람마다 다르겠죠.

어떤 사람은 평생 고생하지 않고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을 원합니다.

어떤 이들은 권력을 원합니다. 한번 출세하고 싶습니다. 대통령이 돼보고 싶습니다.

어떤 이들은 나는 늘 골골하니 건강을 주십시오.

어떤 이들은 명예를 원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더 굳은 믿음을 주십시오. 굳은 신앙을 주십시오.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구해야 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현실의 생활에서는 구할 것을 모르는 사람들과 똑같은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에 솔로몬 같은 왕의 지위에 있던 사람들은 과연 하느님에게서 무엇을 구했을까?

또 오늘날에도 그런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무엇을 구하고 있을까?

솔로몬은 뭐라고 대답했다고 좀 전에 얘기해 드렸죠.

‘지혜를 주셔서 야훼 백성을 재판에서 선과 악을 분별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시오.’

 

그러면 이런 솔로몬의 소원에 하느님은 어떠한 대답을 하셨을까요?

하느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자기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면서, 또 나아가서는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는 것조차도 구하지 아니하면서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기에, 내가 네 말대로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겠다.

이런 마음을 가진 자는 전에도 없었고, 또 너의 후세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너는 부를 청하지 않았지만 나는 너에게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내게 주겠다.

그리고 너는 네 평생에 모든 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다.’

이것이 솔로몬이 꿈에서 들은 하느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이런 축복을 받은 왕이 있었을까요?

‘이제껏 유대 땅에 어떤 왕도 너 같은 왕이 없을 것이다.’

겸손을 청해서, 또 지혜를 청해서 ‘양들을 올바로 다스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선과 악을 확실히 분별하고 싶습니다.’

이 말씀에 야훼께서는 깊은 감동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깐 이렇게 극찬하죠.

‘너 같은 왕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너 같은 사람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너 솔로몬과 같은 사람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이보다 큰 칭찬은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아름다운 예언은 어디 있겠습니까?

실제로 이 꿈속의 말씀과 같이 솔로몬은 유례없는 지혜와 함께 그가 원하지 않았던 부귀와 영화를 받게 됩니다.

 

저는 여기서 마태오 복음 6장 31절 이하의 예수님 말씀을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얘기가 나오죠? 걱정하지 말라는 얘기가 나오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이방인들이 찾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잘 알고 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솔로몬은 먼저 참된 지혜를 구하였기 때문에, 구하지 않았던 부와 명예와 지위까지 얻게 된 겁니다.

얼마 전 의정부 황사영 알렉시오 기념관에서 피정시키고, 파견 미사로 성령 강림 대축일 미사를 그곳 신부님과 함께 드렸어요.

그리고 영성체할 때 성령의 열매를 하나씩 받았는데, 나도 펴보니 ‘지혜’라고 나왔습니다.

지혜, 바로 솔로몬이 원했던 것이죠.

여러분들도 본당에서 아마 열매 하나씩 뽑으셨을 겁니다.

뭐 뽑으셨습니까?

 

그러면 간단하게 잠언에는 어떠한 말씀이 기록되었는지 한번 살펴보기로 할까요?

잠언 제1장 1절에서 6절까지는 잠언에 대한 서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7절이 최초의 잠언이 됩니다.

솔로몬은 그 최초의 말씀을 무엇이라고 하였는지 먼저 7절을 읽어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야훼를 두려워하여 섬기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

어리석은 자는 교육을 받아 지혜로워지는 것을 멸시한다.’

 

여러분들 솔로몬에게 따라붙는 말이 있죠? 뭔지 아시죠?

‘솔로몬의 지혜’라는 말을 세상에 남긴 사람입니다.

그만큼 지혜에 있어서는 솔로몬을 따를 사람이 없는 영광을 하느님에게 받은 사람이었지.

이 솔로몬이 잠언 첫 문장을 ‘야훼를 두려워하여 섬기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 얘기합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 이렇게 얘기했다는 거죠.

 

현대에 하느님을 믿는 일이 비과학적이고 무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렇지만 솔로몬은 잠언 9장 10절에 ‘야훼를 두려워하여 섬기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또 15장 33절에 보면 이렇게 나오죠.

‘교육을 받아 지혜를 얻으면 야훼를 경외하게 된다.’

이렇게 잠언의 중요한 테마는 ‘하느님을 믿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입니다.

신약성서 코린토 전서 8장 2절

‘자기가 무엇을 좀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아직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나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죠.

이 말은 참 정신이 번쩍 나게 하는 아주 강한 말입니다.

아무리 일류대학을 나오고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또 무엇이든지 전문적으로 배웠다고 하더라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고 있으면, 그런 사람이 하는 정치도 다 그르치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교육도, 재판도 그르치게 되는 함정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반대로 하느님을 알고 있으면 그 사람의 판단은 하느님의 뜻을 따라 행하게 되기에 분명히 과오는 줄어들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만 집착하고 또 자기애가 너무 강하면 자연스럽게 마음의 눈은 어두워지는 법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물론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범죄는 전쟁이나 정치, 또 교육, 재판에서 뿐만은 아닐 겁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을 반성해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자의 가정의 주인은 하느님이신 거죠.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뜻대로 산다면 가정의 모습이 무척 변할 것은 분명합니다.

하찮은 일 때문에 말다툼도 하지 않을 것이고요.

또 돈 문제, 금전 출납에서도 내야 할 것에는 아낌없이 내놓을 수 있는 마음이 생기게 될 겁니다.

유감스럽게도 하느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진정으로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우리.

그냥 다만 가끔 하느님을 생각해 낼 뿐 거의 잊어버리고 어리석은 짓을 반복해서 삽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참 강조를 많이 하죠.

저녁에 잠들기 전에 저녁 기도의 그 핵심은 뭐냐?

가톨릭 기도서에 나와 있는 것을 그냥 줄줄 읽으면 몇 분 안 걸립니다.

몇 분은커녕 1분 안에 끝낼 수도 있죠.

그렇지만 마지막 잠들기 전에 해야 할 저녁 기도의 핵심은

‘과연 내가 하느님을 오늘 첫째 자리에 모시고 살았던가, 아니면은 새카맣게 잊고 살았던가?’입니다

제가 그런 얘기하지요.

하느님보다 윗자리에 있는 건 전부 다 뭐라고 그랬습니까? 우상이죠.

우상의 정의는 하느님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버티고 있는 것은 전부 다 우상입니다.

그것은 돈만이 아니라, 생각, 관념, 그리고 지나친 자기의 상처로부터 못 벗어나는 것, 또 욕심, 교만 등등.

그래서 현대판 우상은 금송아지가 아니라고 그랬습니다.

 

여하간에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말한 솔로몬의 지혜는 이 한 줄만으로도

대단한 그 우수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잠언에 나오는 몇 가지를 이렇게 추려보겠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그대로 읽지 않고 조금 풀어서 얘기하면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의 뒷걸음 치는 것은 자기를 죽이는 것이고, 미련한 자의 안일함은 자기를 멸망시킨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야훼를 신뢰하고 너 자신의 똑똑함에 의지하지 말아라.’

‘야훼를 경외하고 악에서 떠나야 한다.

이것이 네 몸에 좋은 약이 되고 너를 윤택하게 할 것이다.’.

또 이런 말도 눈에 들어옵니다.

‘네 손에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푸는 것을 아까워해서는 안 된다.’

잠언에 나오는 솔로몬이 했던 말 가운데 정말 어느 몇 개라도 우리 삶에서 열매가 맺어진다면, 그 인생은 정말 훌륭한 인생이고,

또 솔로몬의 이 말을 통해서 우리의 정신적이고 영적인 삶은 분명히 윤택해질 거라고 저는 생각됩니다.

 

사실 우리들이 갖고 있는 이 손은 나 자신을 위해서는 하루에 부지런히 무언가 합니다.

그죠?

손을 가지고 얼굴도 닦고, 발톱도 깎고, 하다못해 코도 후비고 가려운데도 긁습니다.

우리들의 손을 보면 거의 하루 종일 나만을 위해서 쓸 때가 대부분이지,

남을 위해서는 하등의 선한 일을 내 손이 하려고 하질 않습니다.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서 내 손을 쓰고 삽니다.

그리고 남을 위해서 손을 쓸 때는 대개가 못된 짓을 할 때죠.

손가락질하든지, 삿대질하든지, 사람을 죽이든지, 그 손으로 하느님을 가리려고 한다든지.

자신을 위해서는 자기 손으로 오만 것을 다 하면서 그 손으로 남에게 쓸 때는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에 쓸 때가 많지 않겠는가.

이 ‘손’을 ‘입’으로 바꾸어 본다면, 자신의 마음 자세를 스스로 들여다볼 수 있을 겁니다.

 

이런 말이 있죠. ‘악인의 집에는 야훼의 저주가 있지만,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을 것이다.’

또 비슷한 말에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신다.’

참 중요한 얘기입니다.

성 어거스틴이 임종하는 자리에서 제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제자들이 묻습니다. ‘스승님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뭡니까?’

‘겸손이다.’ 그랬습니다.

다시 또 물었죠. ‘그럼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이 뭡니까?’

그러니깐 어거스틴은 그것도 겸손이다.

또 세 번째 중요한 것이 뭐냐고 물으니, 세 번째도 겸손이라 대답하고 죽었다고 합니다.

어거스틴은 대단한 성인이시죠?

이렇게 큰 성인으로 숭배받았던 그도 항상 ‘겸손의 어려움’을 통감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겸손 없이 하느님에게 큰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 기억하십니까? 제가 강론이나 피정 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교만한 사람들 앞에서는 절대로 굽히지 않는다.

상대가 어떤 위치에 있든지 간에 교만을 떠는 인간 앞에서는 난 절대 주눅 들지 않는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 앞에서는 내가 꼬리를 내린다.

왜냐? 내가 겸손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 참 겸손해지기 힘든 것 같다.’

하여튼 나 자신을 되돌아볼 때 어떤 때는 정말 겸손과 아주 먼 거리에 있음을 부끄럽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겸손’이라는 것은 ‘있는 그대로 자기 모습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 눈에 들어오는 것 몇 가지를 읽어드리면 ‘야훼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다.’

죄를 두려워하지 않고 악과 사귀는 인간의 모습은 슬픈 모습이죠.

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지혜 있는 자를 따라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또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렵지만,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을 것이다.‘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는다.‘

’마음의 평화는 육신의 생명 생명이지만, 시기는 뼈가 썩는 것과 같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맹한 자보다 낫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

’술을 즐겨하는 자와 고기를 탐내는 자와 사귀지 말라.‘

이건 조금 이상합니다. 아마 여기서 얘기하는 고기는 아마 돼지고기일 겁니다.

유대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질 않죠.

또 이 술을 즐겨하는 자라는 것은 술 먹으면 주사가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일 것입니다.

’너를 낳은 아비에게 존경을 표하고, 네 늙은 어미를 가벼이 여기지 말아라.‘

또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주어라.’ 등등.

 

31장에 나오는 잠언의 말은 서두에 얘기한 것처럼 전부 다 금싸라기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하나가 다 빛나는 다이아몬드 같은 그런 가르침입니다.

이 책 곳곳에 가슴을 파고드는 생명 있는 말씀이 넘쳐흐르고 있죠.

다시 말하자면 잠언은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하느님을 신뢰한다는 마음에서 출발하고 있는 책입니다.

이해되시죠?

솔로몬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이 잠언을 쓴 겁니다.

 

물론 이제 솔로몬과 시바 이야기도 나오지만 제가 그것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시바 여왕이 솔로몬이 얼마나 지혜로운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찾아가죠.

하여튼 시바의 여왕이 가면서 몸만 간 것이 아니라 우상숭배 덩어리들을 가지고 갑니다.

그래서 솔로몬 왕궁은 우상숭배의 방으로 바뀌는 얘기가 나옵니다.

아무튼 한번 쭉 읽어보시면 이렇게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쉽게 다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솔로몬 어머니 밧세바와 솔로몬의 인생은 참 쉽지 않은 인생인 것은 분명합니다.

 

이렇게 잠언은 이것으로 간략하게 설명해 드리고요.

내일 예언서를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 영원에 영원을 더해 사랑합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이들에게 축복을 내려주소서. 아멘

 

 

청주교구 원로 사목자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출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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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바람의노래 | 작성시간 24.06.01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4.06.01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1만두 | 작성시간 24.06.02 신부님, 감사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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