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6일 대림 제1주간 금요일
제1독서
<그날, 눈먼 이들의 눈도 보게 되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29,17-24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7 “정녕 이제 조금만 있으면 레바논은 과수원으로 변하고, 과수원은 숲으로 여겨지리라. 18 그날에는 귀먹은 이들도 책에 적힌 말을 듣고, 눈먼 이들의 눈도 어둠과 암흑을 벗어나 보게 되리라.
19 겸손한 이들은 주님 안에서 기쁨에 기쁨을 더하고, 사람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이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20 포악한 자가 없어지고 빈정대는 자가 사라지며, 죄지을 기회를 엿보는 자들이 모두 잘려 나가겠기 때문이다. 21 이들은 소송 때 남을 지게 만들고, 성문에서 재판하는 사람에게 올가미를 씌우며, 무죄한 이의 권리를 까닭 없이 왜곡하는 자들이다.
22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구원하신 야곱 집안의 하느님이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야곱은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고, 더 이상 얼굴이 창백해지는 일이 없으리라. 23 그들은 자기들 가운데에서 내 손의 작품인 자녀들을 보게 될 때, 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리라.’ 그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거룩하게 하며,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두려워하게 되리라. 24 그리고 정신이 혼미한 자들은 슬기를 얻고, 불평하는 자들은 교훈을 배우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을 믿는 눈먼 두 사람의 눈이 열렸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27-31
그때에 27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는데 눈먼 사람 둘이 따라오면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28 예수님께서 집 안으로 들어가시자 그 눈먼 이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너희는 믿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예, 주님!” 하고 대답하였다.
29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에 손을 대시며 이르셨다.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30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렸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이 일을 알지 못하게 조심하여라.” 하고 단단히 이르셨다. 31 그러나 그들은 나가서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그 지방에 두루 퍼뜨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그들의 눈이 열렸다 ”
눈먼 사람과 연관되어 하나의 교훈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앞을 못보는 사람이 밤에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등불을 들고 걸었습니다.
그와 마주친 사람이 그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해 의아해서 물었습니다.
‘아니 앞 보는 사람이 왜 등불을 들고 걸으십니까?’ 그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남들이 저와 부딪칠까봐 그러는 것이지요.’
‘이 등불은 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지요.’
복음에 나오는 앞을 못 보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보면 함축된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일차적으로 눈이 잘못되어 제대로 볼 수 없는 사람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태어 날 때부터 소경인 사람이 있을 수 있고
태어나서 사고나 휴유증으로 눈을 볼 수 없는 경우를 말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보통 ‘물리적인 소경’이라고 표현 할 수 있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의미하는 또 다른 의미는 ‘영성적인 소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정녕 이제 조금만 있으면 레바논은 과수원으로 변하고, 과수원은 숲으로 여겨지리라.
그날에는 귀먹은 이들도 책에 적힌 말을 듣고,
눈먼 이들의 눈도 어둠과 암흑을 벗어나 보게 되리라.”(이사 29,17-18)
여기서 눈먼 이들은 귀먹은 사람들과 같은 경우와 함께 종말론적인 의미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소외된 사람의 대표적인 병자를 말할 수 있지만 메시아 시대가 오면
불행한 사람들이 제대로 보고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물론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을 치유해서 온전한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마태오는 이 사실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에 손을 대시며 이르셨다.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렸다.”(마태 9,29-30)
마태오는 소경과 같은 불가능한 병자도 주님을 믿음으로서 치유가 된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 전반에 걸쳐 전해주는 이 소경은 물리적인 의미와 다르게
제대로 보고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 경우를 우리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물리적으로 눈이 먼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눈 뜻 소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리적으로는 내 이웃을 볼 수 있지만 사실 내 이웃을 제대로 못 본다면,
선글라스를 끼고 내 이웃을 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내가 부정적으로, 또 의심을 갖고 내 이웃을 보면
그대로의 모습을 못 보고 선입감을 갖고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한 교우 형제의 고백이 있었습니다.
‘신부님, 저는 제 집 사람을 재대로 알지 못하고 몇 십년을 살았습니다.
제가 마음을 비우니까 제 집사람의 마음을, 말을, 모습을 재대로 이해하고 다시 보게 됩니다.
참으로 소중한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실 늦었지만 남은 생에서나마 집 사람을 제대로 보며 살려구요.’
눈 병 중에 제대로 못보는 장애가 있는데 그것을 ‘백내장’이라고 하지요.
눈 조리개가 투명하지를 않고 이물질로 하얗게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제거하고 인공적 조리개를 갈아 끼우는 수술을 합니다.
우리가 내 이웃을 재대로 보려면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욕심,
나쁜 심보를 빼내야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겸손해야 하는지를 이 소경의 모습을 보며 배워야 하겠습니다.
내 이웃을 잘못 알고 함부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내 이웃의 아픔이나 고통, 그리고 불행을 모르고
지나칠 때가 있고 그에게 손가락질 할 때가 있습니다.
고통을 덜어주기는커녕 더 아픔을 얹어 주는 것이지요.
주님 만이 교만으로 차 있는 나를 치유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만이 내 비뚤어진 이 심보를 고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의 겸손과 온유만이 이 병에서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병자가 보기를 주님께 청하듯이
먼저 우리가 겸손하게 우리의 잘못을 회개해야 합니다.
이제는 내 기분 내키는 대로 내 이웃을 판단하고 말 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으로 내 이웃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어둠의 갇힌 내가 아니라
제대로 볼 수 있는 빛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제는 내 이웃의 아픔을 듣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의 위로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도 밝은 햇볕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며
내 이웃의 아픔을 헤아리는 우리가 됩시다.
출처: 구름 흘러가는 원문보기 글쓴이: 말씀사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