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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준 신부 강론

[스크랩] 12월 13일 금요일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4.12.13|조회수115 목록 댓글 3

12월 13일 금요일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제1독서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8,17-19
17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너의 구원자이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 너에게 유익하도록 너를 가르치고, 네가 가야 할 길로 너를 인도하는 이다. 18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것을. 19 네 후손들이 모래처럼, 네 몸의 소생들이 모래알처럼 많았을 것을. 그들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도 없어지지도 않았을 것을.”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들은 요한의 말도 사람의 아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6-19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16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17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18 사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말한다. 19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옛날 어른들은 ‘밥장사 밑지지는 않은데 사람들 비위 맞추기가 힘들다.’라는 말씀을 하곤 했습니다.

교구청에서 직영하는 식당이 있었습니다.

제일 까다롭게 하는 것은 외부인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 교우들이었습니다.

‘쓰네 맵네, 맛이 없네.’ 불평도 다양합니다.

 

때로는 그 말이 힘들어서 새벽시장에 나가 신선한 식자재에서부터

많은 것을 신경을 쓰며 최선을 다하려던 주방장은
의기가 소침할 때가 있었습니다.

방부제나 조미료를 안 쓰려 안간힘을 쓰다가도

그런 불평들을 들으면 남들이 하는 대로 조미료도 듬뿍 넣으며

대충하고 싶다는 푸념도 널어 놓으며 속상해 했습니다.

주방일을 하며 예비자 교리를 하여서 세례를 받은 주방장은

다른 사람도 아닌 교우들이 ‘콩 놔라 밭 놔라.’하는

참견과 불평이 서운했던 모양입니다.

 

자기가 기대를 걸었던 천주교 교우는

식당에 일하는 사람들을 집안 식구로 감싸 줄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오히려 교우들이 더 심한 말을 해서

상처를 주거나 실망을 줄 때가 많았습니다.

물론 끝까지 주방장은 좋은 식당으로 꾸려 나갔습니다.

예수님의 오늘 말씀을 들으면 세상 일이 내 마음 같지 않음을 배웁니다.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마태 11,16)

장터의 아이들은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았고

곡을 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았다’는 내용을 부릅니다.

이 노래에 비유해서 주님께서는

세례자 요한과 당신 자신에 대해서 ‘자기 멋대로 해석해서 말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지 않는 세례자 요한을 마귀에 걸려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고
주님께서 죄인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니까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19절)라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씩 게임 중에 한 줄을 세워놓고 한쪽 끝에서 말을 해서

그것을 옆 사람에게 또 그 옆 사람은 그 다음 옆 사람에게 이어가게 합니다.

그리고 맨 나중에 어떤 내용을 전해주는가를 알아봅니다.

바로 옆에서 하는 말인데도 한 사람씩 옮길 때마다

그 내용이 다르게 변해서 나중에는 완전히 변하는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보는 데도 그 내용이 변하는데 하물며 시간적으로나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데 그 내용이 얼마나 바뀌겠어요?

우리는 살면서 내 이웃이 나에 대해서 전혀 엉뚱한 소리를 하면

슬퍼하거나 분하게 여길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라는 마음의 소리를 하며 속상해 합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말은 변하게 된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되는데,

실망 속에서 다시 이해하는 데에로 너머가게 됩니다.

 

그리고 언제 부터인가 ‘사람은 그럴 수도 있어.’라는 자문을 하며

너그러워지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다 나 자신도 변하는 사실을 알게 되면 더욱 겸손해 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나에게 상처나 실망을 주는 사람이 바로 내 이웃이라는 것입니다.
하기야 나와 먼 사람은 나를 알 턱이 없으니 이렇다 저렇다 할 수도 없고 또 있다 해도
거리가 있어서 내가 알 턱이 없는 것입니다.

교구 식당을 운영 하면서 배운 교훈은 사람마다 제 각기 입맛이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비위를 맞춘다는 것은 손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옳다는 길을 흔들림 없이 가는 것이고 그 길을 인도하는 것은 주님이실 때
나는 안전하게 가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내가 고집을 부려서 내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면

나는 올바른 길을 기도하며 또 묵상하며
나의 길을 가는 것이 바로 참다운 신앙의 삶이라 하겠습니다.

때로 이웃이 이해하지 못해도 때로

나를 힘들게 해도 주님과 함께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사람의 평판보다는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요!

주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야말로 시편의 저자의 표현대로

‘물가에 심어진 나무’는 늘 생명과 푸름을 간직하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늘 주님을 바라보며 세상의 번거로움에서 초연합시다. 

 

 

출처: 구름 흘러가는 원문보기 글쓴이: 말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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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따로또 | 작성시간 24.12.13 아멘!!!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4.12.13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4.12.13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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