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12월 27일 금요일 (백)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4.12.27조회수48 목록 댓글 112월 27일 금요일 (백)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제1독서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 요한 1서의 시작입니다. 1,1-4
사랑하는 여러분, 1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2 그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그 생명을 보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그 영원한 생명을 선포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3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여러분도 우리와 친교를 나누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친교는 아버지와 또 그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나누는 것입니다.
4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지도록 이 글을 씁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2-8
주간 첫날, 마리아 막달레나는 2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3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4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5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
사람이 사랑을 하게 되면 시인도 되고 위대한 사람도 된다고 합니다.
사랑에 눈이 멀면 세상은 아름답다고 하지요?
이제까지 불던 바람도 평범하게 바라보던 벌판도
그리고 길섶에 널려 있는 클로버도 다 예술로 시로 변한다고 합니다.
이런 사랑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누구를 존경하거나 내 영혼 안에 들어와 버리면
그 사람은 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 그 사람에 대해서
어느 하나 주제가 되지 않는 것이 없게 됩니다.
사랑은 나의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키고 모두 새롭게 해줍니다.
사랑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사도 요한은 사랑의 스승이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또 십자가 아래에서 그분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모두가 증언이 되고 글이 되며 편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은 가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지만
요한 사도만큼은 젊은 시절부터 스승에게 매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스승이신 주님을 생각하면 그 옆에서 따르던 자신을
‘그분께서 사랑하시는’이라는 말을 붙이면서까지 주님 사랑에 남달랐습니다.
그는 복음에서도 ‘주님께서 사랑하는’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그가 보낸 편지에서도
주님 사랑을 사람들에게 증언하며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1요한 1,1)
주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는 갈릴리 호숫가에서 스승으로부터 불림을 받을 때부터
주님과의 사랑이 표현되지만 더 나아가 주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핵심부분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마지막 만찬을 할 때에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 품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그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였다.”(요한 13,23)
십자가에서 스승의 죽음의 순간에도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복음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는 제자들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요한 19,26)
주님 부활의 아침에 막달레나가 무덤에서 주님의 시신이 없어진 소식을 전하는 장면을
요한복음은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주간 첫날, 마리아 막달레나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요한 20,1-2)
더 나아가 주님께서 부활 후에 갈릴리 호수가에 서 계시던 장면에서도 복음은 요한 사도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살아하신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하고 말하였다.”(요한 21,7)
요한복음은 자신의 복음을 마감하면서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돌아서 보니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따라 오고 있었다. 그 제자는 만찬 때에
예수님 가슴에 기대어 앉아 있다가, ‘주님, 주님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입니까?’하고 물었던
사람이다.”(요한 21,20)
요한복음은 다른 공관복음 마태오, 마르코, 루카 보다 후대에 쓰여 졌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의 정립된 신학, 특히 삼위일체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저자인 사도 요한이 신앙의 공동체가 이단으로 흔들리고 유대인이나 로마제국으로부터
박해를 받던 역사적 상황을 다 겪고 난 연후에 복음을 집필했으리라는 추측을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이 전해 주지 못하는 초대교회에서부터 성모님 사랑과 교회성사,
특히 성체성사에 대한 신심을 아울러 자연스럽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인간적인 사랑은 대단하지만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은 위대한 것입니다.
요한 복음사가를 통해서 그 사실을 더욱 깨닫게 해줍니다.
그는 스승님을 존경했을 뿐 아니라 그분의 삶을 자신이 직접 체험하면서
주님에 대한 증언과 함께 복음을 교회 공동체에 남겨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 사도는 베드로 사도와 함께 주님 부활 후에 빈 무덤에서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었지만
일편단심 주님에 대한 사랑을 보여준 사도 요한의 한 삶을 묵상하며
우리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가르침을 이웃에게 전합시다.
출처: 구름 흘러가는 원문보기 글쓴이: 말씀사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