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10월 3일 연중 제26주간 금요일 “너 코라진, 너 벳사이다, 너 카파르나움!”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5.10.03조회수128 목록 댓글 4연중 제26주간 금요일
제1독서
<우리는 주님 앞에서 죄를 짓고, 거역하였습니다.>
▥ 바룩서의 말씀입니다. 1,15ㄴ-22
15 주 우리 하느님께는 의로움이 있지만, 우리 얼굴에는 오늘 이처럼 부끄러움이 있을 뿐입니다.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주민들, 16 우리 임금들과 우리 고관들과 우리 사제들, 우리 예언자들과 우리 조상들에게도 부끄러움이 있을 뿐입니다.
17 우리는 주님 앞에서 죄를 짓고, 18 그분을 거역하였으며, 우리에게 내리신 주님의 명령에 따라 걸으라는 주 우리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19 주님께서 우리 조상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날부터 이날까지 우리는 주 우리 하느님을 거역하고, 그분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을 예사로 여겼습니다. 20 주님께서 우리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시려고 우리 조상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시던 날, 당신 종 모세를 통하여 경고하신 재앙과 저주가 오늘 이처럼 우리에게 내렸습니다.
21 사실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보내 주신 예언자들의 온갖 말씀을 거슬러, 주 우리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22 우리는 다른 신들을 섬기고 주 우리 하느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르며, 저마다 제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대로 살아왔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3-16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3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회개하였을 것이다. 14 그러니 심판 때에 티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15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16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며,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의 강론말씀
“너 코라진, 너 벳사이다, 너 카파르나움!”
바룩서는 희랍어 칠십인 역인 셉뚜아진따(LXX) 역에서 “바루크 (Βαρουχ)”라는 이름으로
되어 있는데, 본분에서 바룩이라는 저자는 예레미야 예언자의 제자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모두 6장으로 되어 있는 본문은 다양한 내용과 시대적 배경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저자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전승에는 바룩이라는 저자이거나 아니면 바룩의 사상에 따라 수집하고 정리, 편집한
무명의 저자로 보고 있습니다.
본서의 저자는 네리야의 아들로 바빌론 치세의 어려운 역사적 상황에서 유일신 사상을 가진
익명의 유대인이라고 보는 것이지요.
서문에 이어 본문은 참회기도로 “주 우리 하느님께는 의로움이 있지만, 우리 얼굴에는 오늘
이처럼 부끄러움이 있을 뿐입니다.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주민들, 우리 임금들과 우리 고관들과
우리 사제들, 우리 예언자들과 우리 조상들에게도 부끄러움이 있을 뿐입니다.”(바룩 1,15-16)라는
내용으로 시작됩니다.
이 본문과 5장으로 구분되어있는 예레미야의 ‘애가’의 내용들 중에서 예루살렘의 멸망은
죄의 댓가라고 하는 ‘죄스러운 고백’과 비슷한 면이 스며있습니다.
“저희의 머리에서는 면류관이 떨어졌습니다. 오, 애통합니다, 저희가 죄를 지었으니!
이 때문에 저희의 마음은 괴롭고 이런 것들 때문에 저희의 눈은 어두워졌습니다.”
(애가 5,16-17)
모세는 호렙산에서 하느님께서 당신 손가락으로 쓰신 두 증언판(탈출 31,18)을 받아들고
내려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가 없는 동안에 수송아지를 만들어 축제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화가 난 모세는 돌 판들을 산 밑으로 내 던져 깨 버립니다. 그리고 모세는 다시 산으로
올라 사십 일을 주님과 지내며 하느님의 계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판에 기록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다른 신에게 경배해서는 안 된다. 주님의 이름은 ‘질투하는 이’ 그는 질투하는
하느님이다.”(탈출 34,14) 신명기 저자는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을 잊지 않도록 조심하고,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금하신 그 어떤 형상으로도 우상을 만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주 너희 하느님은 태워 버리는 불이시며 질투하시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신명 4,23-24)
사랑의 하느님께서 계약을 맺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른 신들을 섬기며 당신과
불성실한 관계를 갖는 것을 못 보시는 것입니다.
바빌론 유배의 참혹함은 이스라엘의 죄의 댓가라고 믿는 바룩서의 저자는 또한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는 다른 신들을 섬기고 주 우리 하느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르며,
저마다 제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대로 살아왔습니다.”(바룩 1,22)
하느님과 예수님의 특징은 무한히 죄인들에게 사랑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그런 순정을 변덕스럽고 차가운 사람들은 그 사랑을 다 헤아릴 줄 모르고
하느님께 등을 돌리기도 합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하느님께 충실하지 못하고 변덕스러운 그들의 모습을 계속해서 탓합니다.
하느님께서 배신한 인간에게 섭섭한 마음, 분노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전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고향과 가까운 카파르나움, 코라진, 벳사이다의 마을을 사랑하며 아끼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냉담한 태도입니다. 주님께서 코라진과 벳사이다 마을 사람들에 대한 섭
섭한 심정을 드러내십니다.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회개하였을 것이다.
그러니 심판 때에 티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루카 10,13-14)
또한 주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15절)
축복을 빌어주셔도 모자라실 주님께서 세 도시 코라진, 벳사이다, 그리고 카파르나움에게
악담을 퍼붓습니다.
주님께서 가셨던 이방인의 도시 티로와 시돈 (마태 15,21; 마르 7,24.31; 루카 6,17)도시를
추겨 세우며 말씀하신 것입니다.
특히 시돈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아합 왕의 부인 이제벨의
고향입니다.(1열왕 16,31)
시돈 사람들은 이방인의 여신 ‘아스타롯’과 깊게 연결되었습니다.(1열왕 11.5; 11,33)
예수님께서는 사랑하고 아끼는 도시를 탓하시며
이방인 도시까지 들먹이면서까지 당신의 섭섭함을 강하게 표현하십니다.
문학적인 표현에 ‘반어법(反語法)’이라고 있습니다. 속 뜻과는 반대의 표현을 하는 문학적
기교입니다.
하느님의 특성을 가지고 계신 예수님께서 사랑을 무한히 베푸시지만 등을 돌리는 그들에게
깊은 푸념을 내뿜으시지요. 이것은 내심 사랑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우리말에 사랑하는 부모가 자식에게 섭섭해서 ‘이 웬수’라는 표현과 ‘니가 그따위로 해서
잘 되나봐라.’라는 독설을 내뿜는데 그 안에는 속상함도 담겨 있고 푸념도 담겨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모의 독설의 표현과는 달리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늘 잘 되기를 바라는
깊은 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파견한 제자들에게 다시 시선을 돌려서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제
자들에게 전권을 주시고 그들을 두둔하시는 것입니다.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며,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16절)
사랑의 특징은 둘도 아닌 하나입니다. 그래서 불과 같고 그런 모습의 질투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우상에 대해 강한 부정적 반응, 질투의 모습을 보이십니다.
예수님께서도 갈라지고 냉냉한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 마을에 대해서도
강한 반어법의 표현을 하십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출처: 구름 흘러가는 원문보기 글쓴이: 말씀사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