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6월 3일 수요일 (홍)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작은형제회 오 상선 바오로 신부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6.06.03조회수116 목록 댓글 66월 3일 수요일 (홍)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제1독서
<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시작입니다.1,1-3.6-12
1 하느님의 뜻에 따라, 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바오로가,
2 사랑하는 아들 티모테오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은총과 자비와 평화가 내리기를 빕니다.
3 나는 밤낮으로 기도할 때마다 끊임없이 그대를 생각하면서,
내가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깨끗한 양심으로 섬기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6 그러한 까닭에 나는 그대에게 상기시킵니다.
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
7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8 그러므로 그대는 우리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분 때문에 수인이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
9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행실이 아니라
당신의 목적과 은총에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히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 은총은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10 이제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환히 드러났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폐지하시고,
복음으로 생명과 불멸을 환히 보여 주셨습니다.
11 나는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스승으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12 그러한 까닭에 나는 이 고난을 겪고 있지만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누구를 믿는지 잘 알고 있으며,
또 내가 맡은 것을 그분께서 그날까지 지켜 주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18-27
그때에 18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다.
19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만 두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20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21 그래서 둘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지만
후사를 두지 못한 채 죽었고, 셋째도 그러하였습니다.
22 이렇게 일곱이 모두 후사를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23 그러면 그들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2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25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26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모세의 책에 있는 떨기나무 대목에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읽어 보지 않았느냐?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너희는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알라반의 말씀사랑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 각자에게 부활이 어떤 의미인지 묻습니다.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다"(마르 12,18).
예수님 시대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죽음 이후의 삶은 인간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입니다. 경험을 쌓아 공유할 수 없을 뿐더러 증명할 수 없는 영역이라 그렇지요. 게다가 죽음은 인간의 약함과 고통이 절정에 이르러야 관통하는 문으로 보이니, 무지에 두려움까지 더해져서 그런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마르 12,25).
예수님께서 부활을 이야기하십니다. "다시 살아남"! 하지만 부활 이후의 삶은 지상 삶의 형태와 다르다고 하십니다. 지상 삶의 구조에 집착해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차원입니다.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마르 12,25).
혼인 제도를 빌어 부활 이후에 대해 여쭈니 예수님도 그에 상응하는 예를 드시지요. 자손 번식이 혼인의 목적 중 하나라면 천상의 삶에는 그 목적성이 불필요합니다. 또 자기 증여와 상호적 사랑이라는 목적성 역시 이미 보편적으로 이루어진 상태이니 굳이 두 사람을 엮어 발휘할 이유도 없을 터입니다.
"산 이들의 하느님"(마르 12,27).
중요한 건 우리의 아버지 하느님이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라는 점입니다. 창조와 소멸의 주권자시고 생명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그분은 우리 죽음 이전과 이후에도 변함없는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육의 눈으로 볼 때 펄펄 살아 움직이건, 육의 생명이 소진되어 저 세상으로 건너갔건, 우리는 하느님 앞에 살아 있습니다. 무한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의 눈에 우리 생명의 연속성이 육신의 죽음 따위로 단절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 숨을 받아 생명을 누리기 시작한 순간부터 다시 생명의 나라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때까지 우리는 그분 앞에 살아 있는 존재이고, 그분은 살아 있는 우리의 살아계신 하느님이십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히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2티모 1,9).
하느님께서 우리가 구원되고 거룩히 살기를 원하십니다. 죽음 이후만이 아니라 이 지상의 삶에서도 그러기를 바라시지요. 구원과 성화는 죽음 이후 어느 순간에 짠 하고 이루어지는 사건이기 이전에 이미 이 지상에서부터 돋아나 자라는 나무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폐지하시고 복음으로 생명과 불멸을 환히 보여 주셨습니다"(2티모 1,10).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죽음 이후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버린 사람입니다. 구원과 성화는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이제로부터 영원히 누리는 상태이니까요. 또 당신 죽음으로 죽음을 폐지하시고 우리의 생명이 되어 주신 예수님 덕분에 우리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생명을 꿈꿀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벗님은 지금 구원과 성화의 여정을 걷고 계시지요? 그렇다면 죽음 이후에도 그처럼 살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살아 숨쉬고 춤추며 지상에서부터 몸에 밴 찬미와 흠숭, 사랑을 완성해 나갈 것입니다. 그 행복을 앞당겨 전율하고 용약하는 오늘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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