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6월 16일 (녹)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아버지처럼 사랑하라고 이르십니다.>작은형제회 오 상선 바오로 신부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6.06.15조회수155 목록 댓글 7연중 제11주간 화요일
제1독서
<너는 이스라엘을 죄짓게 하였다.>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21,17-29
18 “일어나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라엘 임금 아합을 만나러 내려가거라.
그는 지금 나봇의 포도밭을 차지하려고 그곳에 내려가 있다.
19 그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주님이 말한다. 살인을 하고 땅마저 차지하려느냐?’
그에게 또 이렇게 전하여라. ‘주님이 말한다.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던 바로 그 자리에서 개들이 네 피도 핥을 것이다.’”
20 아합 임금이 엘리야에게 말하였다. “이 내 원수! 또 나를 찾아왔소?”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또 찾아왔습니다.
임금님이 자신을 팔면서까지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21 ‘나 이제 너에게 재앙을 내리겠다. 나는 네 후손들을 쓸어버리고,
아합에게 딸린 사내는 자유인이든 종이든 이스라엘에서 잘라 버리겠다.
22 나는 너의 집안을 느밧의 아들 예로보암의 집안처럼,
그리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안처럼 만들겠다.
너는 나의 분노를 돋우고 이스라엘을 죄짓게 하였다.’
23 주님께서는 이제벨을 두고도,
‘개들이 이즈르엘 들판에서 이제벨을 뜯어 먹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24 ‘아합에게 딸린 사람으로서 성안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먹어 치우고,
들에서 죽은 자는 하늘의 새가 쪼아 먹을 것이다.’”
25 아합처럼 아내 이제벨의 충동질에 넘어가 자신을 팔면서까지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른 자는 일찍이 없었다.
26 아합은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쫓아내신 아모리인들이 한 그대로
우상들을 따르며 참으로 역겨운 짓을 저질렀다.
27 아합은 이 말을 듣자,
제 옷을 찢고 맨몸에 자루옷을 걸치고 단식에 들어갔다.
그는 자루옷을 입은 채 자리에 누웠고, 풀이 죽은 채 돌아다녔다.
28 그때에 티스베 사람 엘리야에게 주님의 말씀이 내렸다.
29 “너는 아합이 내 앞에서 자신을 낮춘 것을 보았느냐?
그가 내 앞에서 자신을 낮추었으니,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내가 재앙을 내리지 않겠다.
그러나 그의 아들 대에 가서 그 집안에 재앙을 내리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43-4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3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45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46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47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알라반의 말씀사랑
오늘 미사의 말씀은 아버지처럼 사랑하라고 이르십니다.
"원수를 사랑하여라"(마태 5,44).
원수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개인차가 있을 겁니다. 대개는 나와, 내가 사랑하는 이들, 내게 소중한 이들의 목숨을 빼앗거나 상해를 입힌 사람을 가리키지요. 하지만 이념과 사상이 달라서 서로 맞서고 대적하는 이들을 원수의 범주에 넣기도 합니다.
"이 내 원수! 또 나를 찾아왔소?"(1열왕 21,20)
제1독서에서 아합 임금이 엘리야에게 외칩니다. 엘리야는 나봇의 일로 분노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러 위험을 무릅쓰고 아합 임금 앞에 섰지요. 아합은 무장을 하지도 않고 폭력을 쓸 이유도 없는 엘리야를 왜 원수라 부를까요?
원수의 범위에는 사사건건 나를 공격하고 상처 입히는 이들은 물론, 나와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도 포함됩니다. 내 생각이나 계획과 대립각을 세우고 엇나가는 이, 내 어둠과 죄악에 대해 직언을 하는 이, 결국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도 넓게 보면 적이고 원수일 수 있습니다.
"아합은 이 말을 듣자 제 옷을 찢고 자루옷을 걸치고 단식에 들어갔다"(1열왕 21,27).
나봇에게 저지른 극악무도한 범죄에 대해 하느님께서 상응하는 징벌을 내리시리라는 예언자의 전언에 아합은 당장 태도를 바꿉니다. 옷을 찢고 자루옷을 걸치고 단식을 하는 것은 회개와 참회의 전형적 행동입니다. 바라 마지않던 포도원을 차지한 기개 따위는 눈씻고 찾아 볼래야 찾을 수 없습니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합 임금이 원수라 칭할 정도로 성가시고 불편한 존재인 엘리야의 말을 들었다는 점이고, 그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느님을 믿었다는 점입니다. 원수라 여겼던 존재에게서 자기 성장의 단서를 발견했다고 한다면 너무 거창할까요...
"그가 내 앞에서 자신을 낮추었으니"(1열왕 21,29).
결국 하느님은 자신을 낮춘 아합 임금의 태도를 보시고 내리시려던 벌을 유예하십니다. 그 태도에서 통회의 마음을 보신 겁니다. 나봇의 억울한 죽음을 생각하면 당장 두 쪽을 내어 처단해도 시원찮을 악인이지만, 아합 역시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피조물이지요.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
예수님의 자상한 당부입니다. 우리가 당장 나를 힘들게 하는 원수에게 집착해 하느님 자녀라는 본질을 놓치지 않길 바라시는 마음에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인간 실존을 잘 아시는 그분은 원수 사랑이 감정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그리 쉽지 않다는 걸 모르시지 않기에 우격다짐하듯 강요하지는 않으시지요. 그저 너희 아버지처럼, 너희가 사랑하고 또 너희를 사랑하는 그 아버지처럼 되어 보라고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경계가 없습니다. 구분하고 나눠서 일부분만 사랑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의 원천이신 하느님께서 그러실 수 없기 때문이지요. 하느님의 사랑으로 사랑할 때 사랑입니다. 공정하고 정의롭고 치우침 없는 사랑, 나를 낮추고 너를 높이는 사랑, 나를 죽여 너를 살리는 사랑입니다. 이에 반하는 것은 편애와 집착이고 자기애와 욕정, 애욕과 과시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혹 원수로 여겨지는 이가 있습니까? 그이 때문에 힘드시죠? 그를 포함해 온 세상 모든 피조물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뜨겁고 진실하게, 담백하고 순수하게 아버지의 사랑을 닮아보려 애써 봅시다. 그 자체로 이미 우리는 아버지 사랑 안에 있습니다. 아멘.
▶ 작은형제회 오 상선 바오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