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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신부 강론

[스크랩] 2024년 12월 10일 대림 제2주간 화요일/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4.12.10|조회수209 목록 댓글 5

 

제1독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로하신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40,1-11
1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 너희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
2 예루살렘에게 다정히 말하여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죗값이 치러졌으며
자기의 모든 죄악에 대하여
주님 손에서 갑절의 벌을 받았다고 외쳐라.
3 한 소리가 외친다. “너희는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사막에 길을 곧게 내어라.
4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거친 곳은 평지가 되고 험한 곳은 평야가 되어라.
5 이에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리니 모든 사람이 다 함께 그것을 보리라.
주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6 한 소리가 말한다. “외쳐라.”
“무엇을 외쳐야 합니까?” 하고 내가 물었다.
“모든 인간은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
7 주님의 입김이 그 위로 불어오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진정 이 백성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
9 기쁜 소식을 전하는 시온아, 높은 산으로 올라가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루살렘아, 너의 목소리를 한껏 높여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라.
유다의 성읍들에게
“너희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시다.” 하고 말하여라.
10 보라,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당신의 팔로 왕권을 행사하신다.
보라, 그분의 상급이 그분과 함께 오고
그분의 보상이 그분 앞에 서서 온다.
11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8,12-1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13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본당에서 ‘죽음 교육’이 있었습니다. 죽음 교육의 첫 시간에 김소엽 시인의 ‘죽음은 마침표가 아닙니다.’라는 시를 읽었습니다. 오늘은 그 시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죽음은 마침표가 아닙니다./ 죽음은 영원한 쉼표, / 남은 자들에겐 끝없는 물음표./ 그리고 의미 하나. 땅 위에 떨어집니다./ 어떻게 사느냐는 따옴표 하나,/ 이제 내게 남겨진 일이란/ 부끄러움 없이 당신을 해후할/ 느낌표만 남았습니다.” 죽음 교육의 목적은 잘 사는 방법을 찾는 거였습니다. 죽음 교육의 목적은 잘 익어가는 거였습니다. 

 

죽음 교육에서 ‘인생의 그래프’를 그려보았습니다. 좋았던 일, 보람 있었던 일, 행복했던 시간을 찾아보았습니다. 괴로웠던 일, 슬펐던 일, 아쉬웠던 일, 불행했던 시간을 찾아보았습니다. 인생은 희극과 비극이 어우러지는 쌍곡선이라는 말처럼 많은 분이 행복했던 기억, 불행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비교적 평탄했던 저의 인생에도 기쁨과 슬픔이 있었습니다. 희망과 절망도 있었습니다. 인생의 그래프에서 안 좋았던 시간은 극복하고, 좋았던 시간은 반복하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죽음 교육에서 ‘솔개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솔개는 장수하는 새에 속한다고 합니다. 40살 무렵이 되면 솔개는 부리는 커지고, 날개는 무거워지고, 발톱이 무디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면 솔개는 높은 산 위로 올라가서 6개월간 인고의 시간을 가진다고 합니다. 먼저 커진 부리를 바위에다 부딪친다고 합니다. 그러면 부리가 떨어져 나가고 새로운 부리가 나온다고 합니다. 그렇게 새로 나온 부리로 무디어진 발톱을 뽑아 버린다고 합니다. 그러면 새로운 발톱이 나온다고 합니다. 무거워진 날개 깃털을 뽑아 버린다고 합니다. 

 

그러면 새로운 깃털이 날개를 덮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면 솔개는 새로워진 몸과 마음으로 다음 30년을 힘차게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 ‘솔개’처럼 살아야 합니다. 솔개가 부리를 바위에 부딪쳐서 없애 버리듯이 낡은, 우리의 습성을 없애야 합니다. 솔개가 약해진 발톱을 뽑아 버리듯이 나약한 우리의 습성을 뽑아 버려야 합니다. 솔개가 무거워진 깃털을 뽑아 버리듯이 못된 우리의 습성을 뽑아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도 하느님께로 나갈 수 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거친 곳은 평지가 되고 험한 곳은 평야가 되어라. 이에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리니 모든 사람이 다 함께 그것을 보리라.” 그날이 오면 유배가 끝날 것이라고 합니다. 그날이 오면 평등의 세상, 자유의 세상이 올 것이라고 합니다. 그날은 장소의 이동이 아닙니다. 제가 살았던 서울도, 지금 살고 있는 달라스도 그날이 아닙니다. 골짜기가 깊다면 서울도 달라스도 그날이 아닙니다. 언덕이 높다면 지금 살고 있는 달라스도 그날이 아닙니다. 골짜기가 메워진다면, 언덕이 평평해진다면 어디에 있어도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그날이 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분명 골짜기가 있습니다. 학력, 지역, 이념, 직업, 계층의 골짜기가 있습니다. 너무 깊어서 넘어가기도 힘들고, 넘어오려는 사람의 손을 뿌리치기도 합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듯이 우리의 삶도 짧은데 우리는 골짜기를 메우기보다는 더 깊게 만들곤 합니다. 이런 골짜기를 메우는 길은 영원하신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산과 언덕이 있습니다. 권력, 재물, 명예라는 바벨탑이 있습니다. 바벨탑은 교만, 욕심, 허영, 위선, 가식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 탑을 낮추어 평평하게 하는 길은 영원하신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양’을 찾는 착한 목자 이야길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성공도 실패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기쁨과 슬픔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부유함과 가난함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행운과 좌절도 있습니다. 그러나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길 잃어 방황하는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마음 안으로 들어오시려고 기다리십니다. 그러기에 신앙인은 ‘희망’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주님의 날이 가까이 왔다. 보라,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러 오시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출처 : 우리들의 묵상/체험  ▶ 글쓴이 :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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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평화의샘 | 작성시간 24.12.10 오늘도 고맙습니다 🙏
  • 작성자김광시 | 작성시간 24.12.10 아멘 💖💖💖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4.12.10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4.12.10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Silvester | 작성시간 24.12.11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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