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주님의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 말라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3,1-4.23-24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2 그가 오는 날을 누가 견디어 내며
그가 나타날 때에 누가 버티고 서 있을 수 있겠느냐?
그는 제련사의 불 같고 염색공의 잿물 같으리라.
3 그는 은 제련사와 정련사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을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
4 그러면 유다와 예루살렘의 제물이 옛날처럼, 지난날처럼 주님 마음에 들리라.
23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24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이 땅을 파멸로 내리치지 않으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세례자 요한의 탄생>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57-66
57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58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59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60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61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62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63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64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65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66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달라스 교구에서 시노드 회의하는 중에 한국에서 카톡이 왔습니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소식입니다. 비상계엄은 국가의 재난, 내란, 전쟁과 같은 말 그대로 비상한 상황에서 선포하는 수단입니다. 비상계엄으로 국가는 정보를 독점하고, 정부에 비판적인 정치인의 활동을 제한 할 수 있습니다. 비상계엄으로 집회의 자유를 제한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해지려면 국민의 정치적인 관심이 적거나, 문맹률이 높아야 합니다. 교통수단이 열악해서 정보의 소통이 어려워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4·19 혁명, 광주 민주화 운동, 6.10 항쟁을 이루어낸 국가입니다. 합법적으로 현직 대통령을 탄핵하여 정권을 평화롭게 교체한 나라입니다.
고도로 발전된 정보와 통신을 소유한 나라입니다. 비상계엄을 해제할 수 있는 의석을 가진 야당이 있는 나라입니다. 한마디로 비상계엄은 21세기를 사는 나라에서 19세기의 방법을 사용하려는 시도입니다. AI의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식 방법을 사용하려는 시도입니다. 정부가 그런 시대 상황을 알고도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면 어리석은 판단입니다. 그런 시대 상황을 모르고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면, 비상계엄이 가져올 경제적인 손실을 예측 못했다면 국가를 운영할 자격이 없는 정부입니다.
2000년 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변화시킬 새로운 길을 준비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군대를 동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언론을 통제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정보를 독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시작은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예루살렘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작은 당시 세상을 지배하던 로마가 아니었습니다. 마리아가 찾아갔던 ‘아인카렘’이었습니다. 저도 아인카렘을 다녀왔습니다.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아인카렘은 조용한 동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인카렘에서 한 아이가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요한’입니다. 오늘 독서는 요한에 대해서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이 땅을 파멸로 내리치지 않으리라.” 사람들은 그를 세례자 요한이라고 불렀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요르단강에서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며 죄의 용서를 상징하는 의식을 행했습니다. 이 세례는 예수님의 공적 활동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회개와 죄의 용서를 설교하며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알렸습니다. 그의 설교는 백성들의 마음을 돌이켜 하느님께 향하도록 돕고, 메시아를 맞이할 준비를 시켰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에는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응답했던 마리아의 순명이 있었습니다. ‘남모르게 파혼하려는 마음을 바꾸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했던’ 요셉의 결단이 있었습니다. 멀리 동방에서 예수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서 새벽길을 떠났던 동방의 박사들이 있습니다. 밤새워 양들을 돌보았던 목동들이 있습니다.
평생 성전에서 기도하며 하느님의 거룩함과 하느님의 의로움이 드러나는 때를 기다렸던 시메온과 한나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며 기도했던 마리아의 친척 엘리사벳이 있습니다.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정했던 사제 즈카리야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평생 예수님의 앞길을 준비했던 세례자 요한이 태어났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새벽을 여는 사람의 자세를 분명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저기 하느님의 어린 양이 오십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입니다.
나는 점점 작아져야 하고, 그분은 점점 커지셔야 합니다. 내 뒤에 오실 분이 있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도 풀 자격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벽을 열었던 세례자 요한에게 무릎을 꿇고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에서는 작은 이라도 세례자 요한보다 큽니다.”
세상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우리 곁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것에 눈이 먼 사람, 자신의 욕망을 따르는 사람, 권력에 취한 사람은 ‘임마누엘’이 곁에 있어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이제 곧 성탄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면 좋겠습니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성자께서 강생하실 날이 가까웠으니 동정 마리아에게서 사람이 되신 말씀, 저희와 함께 사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부당한 종인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