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2026년 6월 3일 수요일 (홍)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6.06.03조회수157 목록 댓글 82026년 6월 3일 수요일 (홍)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제1독서
<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시작입니다.1,1-3.6-12
1 하느님의 뜻에 따라, 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바오로가,
2 사랑하는 아들 티모테오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은총과 자비와 평화가 내리기를 빕니다.
3 나는 밤낮으로 기도할 때마다 끊임없이 그대를 생각하면서,
내가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깨끗한 양심으로 섬기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6 그러한 까닭에 나는 그대에게 상기시킵니다.
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
7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8 그러므로 그대는 우리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분 때문에 수인이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
9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행실이 아니라
당신의 목적과 은총에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히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 은총은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10 이제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환히 드러났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폐지하시고,
복음으로 생명과 불멸을 환히 보여 주셨습니다.
11 나는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스승으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12 그러한 까닭에 나는 이 고난을 겪고 있지만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누구를 믿는지 잘 알고 있으며,
또 내가 맡은 것을 그분께서 그날까지 지켜 주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18-27
그때에 18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다.
19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만 두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20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21 그래서 둘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지만
후사를 두지 못한 채 죽었고, 셋째도 그러하였습니다.
22 이렇게 일곱이 모두 후사를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23 그러면 그들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2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25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26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모세의 책에 있는 떨기나무 대목에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읽어 보지 않았느냐?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너희는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찬미예수님
성지순례를 가면 ‘지도 신부’라는 이름으로 함께 하게 됩니다.
순례를 시작하면서 몇 가지 당부하는 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순례하는 마음의 자세입니다. 여행객으로 왔다면 순례자가 되어서 돌아가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순례자로 왔다면 거룩한 사람이 되어서 돌아가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단순한 말이지만, 교우들에게는 ‘왜’ 순례하는지를 성찰하게 하는 울림을 줄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건강입니다. 낯선 곳에서 순례는 자칫 긴장하게 됩니다. 시차도 있고, 음식도 달라서 적응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절대 무리하지 말고, 평소에 먹는 약이 있으면 꼭 챙겨 먹으라고 이야기합니다. 순례 중에 몸이 아프면 본인은 물론 함께 순례하는 동료에게도 어려움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소지품입니다. ‘여권, 지갑, 스마트폰’은 꼭 챙겨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특히 여권은 분실하면 순례에 큰 차질이 생길 수 있으니 언제나 몸에 지니고 다녀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세 가지만 잘 지키면 은혜로운 성지순례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35년 동안 성지순례를 여러 번 다녔지만 큰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이런 원칙을 늘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보살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순례 중에 빠지지 않는 것은 ‘미사와 기도’입니다. 미사 중에 강론과 더불어 순례의 여정을 되풀이해 줍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디를 다녀왔는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몇 번씩 다녀온 저도 그렇게 되풀이하지 않으면 잊어버리곤 합니다. 이동 중에 버스 안에서는 ‘묵주기도’를 하자고 합니다. 처음에는 제가 기도를 인도하지만, 나중에는 조별로 묵주기도를 바칠 수 있도록 권고합니다. 묵주기도와 성가는 순례자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주기도 하며, 왜 여기에 있는지 돌아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이번에는 하지 못했는데 순례의 마지막 날에는 전체가 모여서 다과를 나누며 소감 발표를 합니다. 동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번 순례가 얼마나 은혜로운지 새삼 알게 됩니다. 엠마오로 가는 중에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났듯이, 순례의 여정 중에 교우들은 많은 은혜를 받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디모테오에게 사도로서 몇 가지를 당부합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감옥에 갇힌 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박해받고, 고난받는 것이 오히려 은총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비겁함의 영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다고 이야기합니다. 칼을 오래 쓰면 칼날이 무뎌지듯이, 우리의 몸과 마음도 편안함에 익숙해지면 나태해지고, 세상의 유혹에 휩쓸릴 수 있습니다. 성지순례 중에도 자칫 쇼핑에 눈이 먼저 가거나, 이웃의 작은 허물을 지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우리의 행실과 능력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성지순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건강을 허락하시고, 시간을 허락하시고, 능력을 허락하셨기에 성지순례를 올 수 있었기에 더욱 감사드리자고 이야기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부활’ 이후의 삶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불교는 ‘윤회’를 이야기합니다. 마치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되풀이되는 삶을 이야기합니다. ‘생로병사’의 수레바퀴가 계속 돌아가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통,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고통,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고통, 내 마음을 통제하지 못하는 고통이 반복되는 삶을 이야기합니다.
부처님은 이런 번뇌를 벗어나는 길은 ‘깨달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깨달은 사람은 마치 달걀이 병아리가 되듯이 전혀 차원이 다른 삶을 살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애벌레가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되듯이 전혀 차원이 다른 삶을 살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 이후의 삶도 그와 비슷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지금은 희미하게 보이지만 그때는 모든 것이 확실하게 보일 것입니다.”
깨달음의 삶, 부활 이후의 삶은 죽어서만 아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삶을 따라가는 것이 바로 부활 이후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인, 성녀가 걸어갔던 길이 바로 부활 이후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너희는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