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2026.3.23.사순 제5주간 월요일
다니13,1-9.15-17.19-30.33-62 요한8,1-11
사람을 살리는 천상 지혜
“다니엘, 예수님”
“주님,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 없나이다.”(시편23,4)
오늘 말씀이 참 좋은 묵상자료가 됩니다. 제1독서 다니엘서중 제13장 “다니엘이 수산나를 구하다”라는 주제의 내용은 장장 63절까지 계속되는 아마 미사전례 제1독서중 가장 긴 독서일 것입니다. “죄많은 인간에 대해 죄없는 문학작품은 쓸 수 없다”고 뉴만 추기경은 말합니다. 긴 독서이지만 우리의 죄악과 더불어 하느님의 지혜를 공부할 수 있어 참 유익합니다. 복음은 “간음한 여인과 예수님”이라는 주제로 역시 사순시기 참 좋은 공부가 됩니다.
죄의 소재가 된 음욕입니다. 무지의 탐욕처럼 우리를 눈멀게 하는 음욕입니다. 에바그리우스의 여덟가지 악덕중 첫째가 탐식, 둘째가 음욕이요, 셋째가 탐욕입니다. <식食, 성性(sex), 돈> 모두가 근본적 욕구이며 지나칠 때 눈멀게 하는 무지의 죄가 됩니다. 이래서 강조되는 <가난, 정결, 순명>의 복음 삼덕이요, <단식, 기도, 자선>의 전통적 수행입니다.
음욕의 타개를 위해 베네딕도 성인은 “정결을 사랑하라” 합니다. 또 “단식을 역시 사랑하라” 합니다. 정결은 평생 과제입니다. 죽어야 끝나는 정결이기에 <정결의 여정>이라 말하곤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여 정결을 선택했다면 정결 역시 훈련이요 습관화 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결코 경계를 늦출 수 없는 것이 과도한 성욕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문제의 발단도 여기서 시작됩니다. 문득 50년전 초등학교 동료교사에게 들은 남성들을 패가망신에로 이끄는 세끝, 즉 <1.손끝, 2.( )끝, 3.혀끝>에 공감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음욕의 유혹에 눈먼 두 원로들은 수산나를 범하려 하다가 실패하여 수치스런 죽음을 당합니다. 복음도 간음하다 사로잡힌 여인에 관한 내용으로 상대방 남성이 누구인지는 모르나 역시 음욕의 결과임을 봅니다. 참으로 뿌리 깊은 지나친 성욕이 문제요 살아 있는 한 영원한 과제임이 분명합니다.
두 말씀을 묵상하면서 천우신조, 구사일생이란 말이 생각났습니다. 간음에 실패한 두 원로의 교묘한 흉계의 덫에 빠져 죽게 된 절체절명의 수산나 처지가 참 아슬아슬합니다. 두 원로의 완전범죄로 끝날뻔 했지만 다니엘을 통한 하느님의 개입으로 천우신조 살아난 수산나입니다. 수산나는 “나리꽃”을 뜻하는 히브리말 슈산을 음역한 말로 나리꽃처럼 하느님을 경외한 순결한 영혼이었음을 다음 묘사가 입증합니다.
“수산나는 매우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주님을 경외하는 여인이었다.” 두 원로의 흉계에 빠져 죽게되었을 때, “수산나는 눈물이 가득한 채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마음으로 주님을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어 죽음을 목전에 두고, “아, 영원하신 하느님! 당신께서는 감추어진 것을 아시고 무슨 일이든 일어나기 전에 다 아십니다...저는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수산나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이 참 반갑고 고맙습니다.
“주님께서 수산나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하느님은 다니엘의 천상적 지혜를 통해 수산나를 구하시니 말 그대로 천우신조입니다. 다니엘은 “하느님께서 심판하신다”는 이름 뜻대로 지혜롭고 정의로운 판결을 합니다. 수산나가 위기에 처한 순간, “하느님께서는 다니엘이라고 하는 아주 젊은 사람안에 있는 거룩한 영을 깨우십니다.”(다니13,45). 다니엘은 그대로 예수님의 예표같고 솔로몬의 지혜를 방불케 합니다.
다니엘의 지혜로운 심문에 두 원로의 거짓은 탄로되고 둘은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맞이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도움을 청하는 무죄한 이들을 결코 저버리지 않으신다는 진리를 보여줍니다. 다니엘의 지혜로운 심문결과 수산나의 결백이 증명되자 ‘온 회중은 크게 소리를 지르며 당신께 희망을 두는 이들을 구원하신 하느님을 찬미하니(다니13,60).’ 참 통쾌한 장면입니다.
오늘 복음도 복음중의 복음, 순복음입니다. 요한복음이지만 복음 내용은 루카복음에 어울리는 내용입니다. 참으로 무자비한 무지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입니다. 인간에 대한 연민은 추호도 없는 하느님 눈에 진짜 죄인들입니다. 예수님을 올가미 씌우려 가련한 여인을,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볼모로 삼습니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로마제국에 세금을 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처럼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참으로 교묘한 진퇴양난의 물음입니다. 어떻게 대답하든 질문의 덫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바로 이때 예수님의 천상적 지혜가 빛을 발합니다. 자비와 지혜는 함께 감을 봅니다. 모두를 살리는 자비롭고 지혜로운 처방에 저절로 감동, 감탄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 물음에 직답을 피하고 침묵중에 몸을 굽히고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십니다. 모두를, 또한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에게도 회개를 촉구하는 장면입니다. 이 물음을 모든 군중에게 깊이 되새기도록 하신 예수님의 시험문제 같기도 합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천상 지혜로 빛나는 천하에 명답입니다.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침묵중에 땅에 무엇인가 쓰십니다. 그러자 죄가 많았을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갑니다. 모두가 스스로 자신을 들여다 보고 회개하게 되어 모두가 상생(win-win) 살아났으니 예수님의 무지의 악에 대한 완벽한 승리입니다.
천우신조, 구사일생, 다니엘의 천상지혜를 통해 수산나가 살아났듯이, 예수님의 천상지혜를 통해 살아난 간음하다 잡힌 가련한 여인입니다. 이 위기의 현장에 남은 사람은 예수님과 여인 둘입니다. 두분의 대화가 깊은 울림의 감동을 선사합니다.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생명과 빛, 희망의 출구, 구원의 출구 예수님을 만나 부활의 삶을 살아가게 된 여인입니다. 예수님도 단죄하지 않았는데 누가 누구를 단죄합니까? 이제부터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주님은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회개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주님을 닮아 자비와 지혜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제 한평생 모든 날에,
은총과 자애만이 따르리니,
저는 오래오래 주님 집에 사오리다.”(시편23,6).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