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준령이 병풍처럼 드리워진 최북단 동부전선의
808고지 810고지 여기에 1개 대대의 방어진지가 있다.
그 진지 공사를 하기위해 77년 초여름 **R *BN병사들이 ***훼바를 출발
완전군장으로 그 산기슥에 투입되었다.
명당자리 계곡에 v자홈 철조망 지지대를 수평각으로 대고는 햄머로 박으니
홈을타고 물이 기차게나왓다 자연석을모아 정돈을해서 운치있는 우물터를 꾸몃다.
참나무를 배어다 철조망을 분해한 철사줄로 묶어서 골조를 세운후 갈대지붕을
올려 정자를 지으니 행정반과 식탁 회의실로쓰는 중대본부 다용도실이되었다.
잠은 허접한 분대텐트에서자고 대형 가마솥에서 지은밥은 설익을때가 많았다.
아침 점호후 말단 후임들은 바케스와 짭밥통을메고 대대쪽 야전 취사장에
식사 수령을가고 선임들은 물통 세멘포대 철근 모래가 담긴 마대자루등을
한짐씩메고 진지공사 현장에 올려다 놓은 다음에야 아침식사를 햇습죠.
배식후 식사잔반을 거두고 식기닦는것 모두가 쫄병들의 몫이다. 우물가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설걷이를 마칠쯤 양치와 세수할 틈도없이 작업출동 모여 ~
철골을 맞추고 형틀을 조립한후 쎄멘을 붓는다. 소대장은 감독 분대장은 십장
졸병은 날라조 고참은 비비조 설계도면은 공대출신이 아는척 폼을잡는 방카작업
노가다 초기엔 8명이메고 절절메던 철골 형틀을 숙달이된후엔 4명이 메고날랏다.
땀에젖은 전투복을 세탁할겨를도 시설도없는 야전생활이 가을까지 이어지면서
누군가는 총칼은 녹슬고 삽날은 빛나~ 가엽은 어머니 왜나를 나셧나요~를 불럿다.
때론 횃불 작업을 하기도햇고 힘에겨운 작업에다 한데 잠자리
영양이 부실한 짬밥식사 급기야 한 동료가 몸살 감기로 몸져누웟다
오한과 발열에 전신피로 증상으로 한술도 못먹으니 돌팔이 위생병이 처방한
치료약을 먹기위해서 반합에 짬밥을넣고 물을부어 정성으로 끓이고 식혀서
식사를 돕던 추억이 눈물겹습니다
그 산골에도 점호 야간경계근무 집합 전입신고 휴가신고 제대회식 중대 작전회의
대대op 통신대 위생병등 당연히 야전화장실까지 있을건 다있고 군대할건 다햇다.
그래도 투입전의 엄동설한 GOP경계근무와 화목작업에 비하면 캠핑 기분이들었다.
그 현장에서 맞은 추석아침 고향에서 조상님께 정갈하게 차례를 올리던 시간임을
못잊었는지 양반자손 한 병사가 깨끗하게 빨아입은 전투복으로 멋을 내고는
짬밥통을 지게에 지고와서 밥을 타려고 대기하고 있을때 오가던 농담이 생각난다.
우아~ 추석 기분내냐 ? 지게지고 멋내바야 누가보냐 새꺄 !
그날 추석날 오후엔 대대 야전 취사장 옆쪽에 가설무대가 설치되고 위문공연
문선대쇼가 열렷다. 우렁찬 악단의 빵빠레 야들야들한 미녀가수들의 향연
선정적인 율동의 스트립쇼가 쥐긴다 그날밤 군발이들의 페니스가 요동을쳣을게다.
이때가되면 산골 군대에서 맞은 추석명절과 고난의 행군이 떠오릅니다.
그때쌓은 내공이 오늘의 ** 정신인것이며 오늘까지 **부대를 잊지못하는
사연이 되엇습니다. 풍요로운 한가위 보름달같은 행복이 함께하시기 바랍니다.
충 성 !
옴겨온 글 입니다 ~~~~#
😀
74년 원형 빵카 공사하느라
엄청힘들었지요.
저도그때 목수노릇 했지요
😀
77년도면 저와 비슷하네요 7월입대
88여단강원도고성반암리) 장신리에서 전방 까치봉gop 오수동계곡 고진동계곡 진지공사 교통호공사
군인이아니라 노가다 3년하다 왔습니다
😀
77년도 빵카작업은 각 부대에서 몇명씩 차출해서 갔는데... 우리부대는 일주일에 2명씩, 참 고생 많았지요.
군번 1262****입니다.
😀
589에서 서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동막리에 있던 628 포병대대에서
근무 했네요. 말년에 589에 나무하러
갔다가 말년병장만나서 방카구경
제대로 했슴니다. 8-9부능선에 있는
개인호로 들어가서 셔터열고 들어가니
중심부에 원형벙커 내무반 의무실 있고
정상으로 올라가는 원형계단이 있고
이정표에 동서남북으로 강릉 인천 부산등
화살표로 표시되어 있었슴.
보안이라고 발설하지 말라고 해서
전역할때까지 혼자만 알고 있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