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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서법

난정서 구 체재, 편집 임서, 난정서에 대하여

작성자하전|작성시간22.11.02|조회수144 목록 댓글 1



난정서 법첩 표지



蘭亭敍節臨
(난정서 절임
: 난정서를 끊어 베끼어 씀)

본문
永和九年 歲在癸丑 暮春之初
會于會稽山陰之蘭亭 修稧事也

독음
영화구년 세재계축 모춘지초
회우회계산음지난정수계사야

해설
영화 9년 계축 늦봄 초 회계산음의
난정에 모여 수계 행사를 열었다.



체재



편집본

문장을 선택한 부분을 복사하여 
글자를 체재에 맞추어 
간격을 유지하여 편집하였다.
 
행서는 가로 줄은 맞추지 않고 
세로 줄만 가지런하게 맞추어 
흐름이 깨지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글씨를 쓸 때에도 
문장이 시작하는 부분에서 
먹을 묻혀 쓰고 
문장이 끝나는 부분에서 
붓을 떼며 
다시 문장이 시작하는 부분에서 
다시 먹을 묻혀 쓴다. 
 

낙관 집자

 

 
 

집자한 글자를 순서대로
아래로 이어 붙이기를 하였다. 

 
 

 

 
편집본과 낙관본을 함께 붙였다. 

낙관 줄은 본문 보다 아래에 
놓여져야 한다. 
이름 아래에도 이름과 호 도장 자리와 
여백이 남아야 한다. 
아래의 예를 살펴보자.


임서

1/2지 크기는
가로 35cm 세로 136cm 정도의 크기이다.


 
 
난정서에 대하여
 
난정서는
천하 제일의 행서(行書)로 여겨진다.
 
진(晉)나라 목제
영화 9년(353)년 3월 3일에
왕희지는 사안 41명과 함께
회계의 산음(山陰)에 있는
난정(蘭亭)에서
성대한 계사를 거행하였다.
굽이굽이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면서 시를 지었는데
당시 나이 51세인 왕희지는
거나하게 술을 마신 뒤
잠견지(蠶繭紙)에다
서수필(鼠鬚筆)을 사용하여
단숨에 천고의 명작이라고 알려진
난정서를 썼다.
 
전문은 모두 28행으로
전체의 글자수는 324자이다.
 
작품 전체가 굳세고
아름다우면서도 표일한 맛이 충만되고,
종회의 형세의 변화가 무궁하며
행서에서 볼 수 있는 기복과 변화,
강한 리듬감, 형태의 다양한 변화,
점획의 서로 상응하는 것들이
충분히 표현된 작품이다.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왕희지의 난정서는
그의 7대손인 지영(智永)에게
전해졌으며
지영이 다시 제자인 변재(辨才)에게
이를 물려 주었다.
당 태종은 어사인 소익을
변재가 있는 곳으로 파견하여
그를 속여서
난정서를 취한 다음
구양순, 저수량, 우세남등에게
임모를 하도록 명령하였다.
진본은 당태종의 부장물이 되었으며
지금 전해지는 것은
당나라 때 임모 본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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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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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하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11.02 오늘은 2022년 11월2일
    수요일이다.

    우리후배들
    탈없이 다 잘있지?

    회장이 난정서 임서 작품한다기에

    임서 작품 방법에 대한
    기록을 하는 중이다.

    봄에는
    전체적으로
    임서전을 하기에
    참고하면 되겠다

    학교 가는 중에 보낸다ㆍ
    오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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