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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書藝)의 응용(應用)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술대학에 응용미술과가 있었다.
그러다가 공예와 디자인 등으로 세분되면서
그 이름은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전문(專門)에 있어서
응용이란 말은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서예가 본래부터 실용성을 견지하고 있었던바
지금도 기록이나 전달의 수단
그리고 예술․장식․의례(儀禮) 등 다방면에 응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일반에게 다가오는 인식은
서예는 대수롭지 않은 것
또는 서예는 그냥 쓱쓱 쓰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끔 하는
동기부여의 일환이기도 하다.
전문서가한테 공고문(公告文)이나
혼서지(婚書紙) 또는 화환리본 같은 것들,
또는 촌지(寸志)․ 화혼(華婚)․ 부의(賻儀) 등의
편지 봉투를 써 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서소(代書所)에 가서 쓰라고 일러주면
의아한 듯 금방 쓰면 될 것을
무얼 그리 도도하게 구느냐는 눈으로 바라본다.
주위 사람들에게 이러한 부탁을 들어주는 것은
조그마한 봉사(奉仕)일 수는 있다.
그러나 경필로 스스로 소박하게 쓰거나 배워서 쓰거나
또는 대서소에 가서 부탁하라고 가르칠 수 있는
의연함이 있어야 된다.
이보다 더 심한 것은
작품 쓰다가 버리는 것 중에
한 장 달라고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에 꼭 덧붙이는 황당한 말은
표구는 자기가 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가들은
그들이 글씨의 어려움을 모르는 무지의 소치에서
나오는 발상임을 알아
완곡하게 타일러주는 것이 옳은 일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사례로부터
서예의 위상이 땅에 떨어진 것을 회복해야 되겠다는
서가마다의 각성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직시해야 된다.
다른 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게
비추어지는 서예는 어떨까?
조각은 반년 일 년은 쪼아대어야 하고
그림도 몇 개월씩은 걸려야 완성된다고 한다.
도자기도 심혈을 기울여 빚어서 구워본 후
대부분 파기한다고 하는 등 모두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서예는
그 자리에서 금방 쉽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반문을 한다.
그 반문은 한 순간에
그 한 획을 긋기 위해서
수 십 년간 갈고 닦은 인고의 세월은
조금도 생각해 줄 여지조차도 없는
몰지각한 미술인의 발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서예의 특질과 고유성을 모르는
무지의 소산을 측은히 여길 뿐이다.
그 옛날 위 문제(魏文帝) 조비(曹丕)가
동생인 조식(曹植)을 죽이기 위한 빌미로
일곱 발자국 걷기 이전에 시를 한 수 지으라고 하였다.
조식은 “콩 삼는데 콩대 태우니
콩이 솥 가운데에서 울고 있네.
본래 한 뿌리에서 났거늘 서로 볶기를 어찌 이리 급할까
[煮豆燃豆萁, 豆在釜中泣, 本是同根生, 相煎何太急]”라는
시를 즉석에서 지었다.
조식은 화를 면했고,
이 시는 명시(名詩)가 되어
「칠보시(七步詩)」란 이름으로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순간에 작품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작가 역량의 결정체이다.
연작(燕雀)이 어찌 홍곡(鴻鵠)의 뜻을 알 수 있으랴!
여기에서 서예의 응용(應用)에 관한 예를 몇 가지 들어본다.
사찰(寺刹)이나 사당(祠堂)․서원(書院) 등에서
현판(懸版)․ 주련(柱聯)․ 영련(楹聯)․ 입석(立石)
등을 볼 수 있는 것처럼 글씨를
음각․ 양각으로 나무나 돌에 새기는 전통은
매우 오래 되었다.
요즈음은 서각(書刻)의 전문 분야를 계승하여
그 전공자들의 숫자가 많아졌다.
전통문화 계승의 일환으로
‘각자장(刻字匠)’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차원에서 예우하고 있다.
따라서 서각가(書刻家)들이 서예작품이나
고전 글씨를 다양한 도법(刀法)으로 새기고
채색도 하며 장식을 다는 등 하나의 풍격을 이루고 있다.
또 연하장이나 편지는 실용의 일환이면서도
매우 정중한 의사표시의 수단인 것이므로
뜻하지 않게 작품으로 부각되기도 한다.
응용서예는 십 여 년 전부터 활성화된 이른 바
‘현대서예’를 빼놓을 수 없다.
현 서단에 신선한 충격이라고 하면 충격이고
지난(至難)한 정통 서예에 대한 거부,
또는 회피라고 보면 그렇기도 한
‘현대서예’를 추구하는 단체가
또 하나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현대서예’는 작품표현에서 보여지는 것과 같이
대체로 그림에 가깝거나
선(線)만으로의 구성의 의미가 짙기 때문에
서예작품이라고 하기보다는 응용서예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현대서예가 추구하는 것은
고전 서예에 대한 대항으로서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다 같이 공감하는
서예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물론 그 중에는 아직도
서예다운 면모를 유지하고 있는 이가 다소 있기는 하다.
그러나 대체로 전통적인 재료나 용구
심지어는 문자도 떠난 단지 획에 의한
기이한 구성이 주류를 이룬다.
서양화인지 한국화인지 판화인지
구분되지 않는 작품들이 출현하고,
특히 조각․ 조소의 형상은 더욱 눈을 끈다.
뿐만 아니라 서예는 예술도 아니고
서예의 본령(本領)은 자연의 낙서라고 까지 한 표현도 있었다.
이러한 발상은
서예의 대중화라든지 다른 예술과의 공존
또는 작품 값에 대한 미묘한 곳까지 고려한 가상함이 있다.
그러나 그 가상한 뜻에 함정이 있음을 발견한다.
지고(至高)한 학문이나 예술 같은 전문분야는
대중화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마리아 칼라스가 아무리 노래를 잘 부른다 하더라도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말매미 소리만큼이나 시끄러운 것이다.
세계가 열광하는 축구황제는 펠레나 마라도나라고 하지만
관심 없는 사람에겐 아무 의미가 없다.
피카소의 작품을 보고 명품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전문(專門)의 길이란 오직 혼자 걸어가는 가시밭길이다.
예도(藝道)의 길은 형극(荊棘)의 길이라 한 것처럼
서예의 길이나 판소리 같은 길이 그것이다.
세상에는 지기(知己)도 한둘이고
진정한 스승․ 제자도 한 둘인 것처럼
예술은 진정한 유안자(有眼者) 한 둘만이라도 족한 것이다.
같은 평면작업이지만
서양화는 면을 다 채우기 때문에 호당 얼마로 계산한다.
한국화도 얼마 전까지 전지나 반절 등으로 따지더니
이제는 여백이 다 사라져 버리면서
서양화같이 호당 얼마로 계산하는 지경이 되었다.
현대서예도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는 셈이다.
값 문제 때문에
면을 다 메우고 색칠하고 덧칠하고 한다고 해서
서예가 대중에게 대접받는다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어쨌든 작가가 나름대로 취향․취지에 따라
작품을 자유롭게 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현대서예와 비슷한 작업은
이차대전 이후 서양에서도 있었던 일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일찍이 서양화가인 남관,
동양화가인 이응노나 김기창 같은 이들이
이미 서예를 응용하여 그림화한 전례가 있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현대서예’가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면
굳이 ‘현대서예’란 단어를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일본에서 일찍이
‘묵상(墨象)’이나 ‘전위서도(前衛書道)’라고 한 것처럼
특색 있는 고유명사를 붙여
독자적으로 발전해 나간다면
또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식견이 있는 예술가나 학자들 중엔
많은 사람들이
서예가 모든 예술의 기조가 되는 신비한 예술이라고 여긴다.
특히 중국 사람의 안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서예는 앞에서 누차 이야기 한 것처럼
다른 예술하고 성격과 차원이 사뭇 다르다.
지고한 예술인 서예를 하는 전문인은 자존(自尊)을 지켜
다른 예술에 기조(基調)로써 보탬을 주는 역할을 할 뿐
남의 장르를 따라가는 오류를 범함으로써
‘가장 서예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란
평범한 진리를 희석시키지는 말아야 될 것이다.
연작(燕雀) ; 제비와 참새처럼 작은 새를 말함
홍곡(鴻鵠) ; 기러기와 고니를 이르는 말로 큰 새를 말함
형극(荊棘) ; 나무의 온갖가시.
‘고난’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기조(基調) ; 사상, 작품, 학설 따위에 일관해서 흐르는
기본적인 경향이나 방향
참고문헌 ; <<서예통론>> 선주선저, 인터넷 국어사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