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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주학파 미학범주

11."진 태주학파 미학범주" P58 여섯째 줄~끝줄 중간

작성자하전|작성시간21.05.19|조회수46 목록 댓글 0


11.
"진 태주학파 미학범주"
P58 여섯째 줄~ 끝줄 중간

到了颜山农即己付诸实践,在家乡办
“萃和会”。据记载:“ 会及一月,
士农工商皆日出而作业,
晚皆聚宿会堂,联榻究竟。
会及两月,老者八九十岁,牧童十二三岁,各透心性灵窍,信口各自吟哦,
为诗为歌,为颂为赞。
......直犹唐虞瑟僴,煊赫震村谷,闾里为仁风也。”
而罗近溪曾经筹建江西全省的学会,
把全省 “同志” 组织起来,并有专人负责供应、联络。
而何心隐仿照颜钧也在自己的家乡办
起了“聚和堂”。
他献出家财,购义田,亲自主理一族之政,通其有无,族内子弟宿于祠、聚于柌、食于柌,学成之后,冠婚衣食,皆
在祠内酌处,鳏寡孤独失所者,皆有
所养。

안산농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실천에 옮겨 고향에서 “萃和会(췌화회)”를 창설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일월이 되면
사농공상은 모두 해가 뜨면 작업을 하고
저녁이면 모두 회당에 모여 숙식한다.
2월이 되면 노인들은 8, 90세
목동은 12, 3세가 되어
각자 심성의 요령을 터득하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각자 읊조리고,
시를 짓고 노래 하고 칭송하고 찬양한다.
......直犹唐虞瑟僴,명성이 마을 골짜기를 빛냈고 향리에서 은덕이 바람처럼 널리 퍼졌다."
또한 나근계는 일찍이 강서 모든성의 학회를 계획하여 모든 성을 "同志"로 묶어 아울러 전담자가 있어 보급과 연락을 책임지게하였다.
그리고 하심은은 안균을 따라 자기의 고향에서 “聚和堂”을 창설하였다.
그는 가산을 바쳐 공동소유의
전답(义田)을 사들이고
일족의 정사를 직접 주관하고
그 유무를 통하여
집안의 자제들이 사당에서 숙식하게 하고
사당에 모여 사당에서 식사하고
학업을 마친 후
관혼의식은 모두 사당에서 처리하고
홀아비와 과부와 고아와 늙어서 자식이 없는 사람과 의지할 곳을 잃은 사람은 모두 부양하였다.


办 [bàn] : (일 따위를) 하다. 처리하다. 취급하다. 다루다.
창설(創設)하다. 경영하다. 운영하다.
사무실. [‘办公室’의 준말]

及 [jí] : (도)달하다. 이르다. 미치다.
(비교해서) 미치다. 비교되다. 따라가다. 좇아가다.
(시간·기회를) 틈타서. …하는 틈에.

联榻 (lián tà) : 공동침대

究竟 [jiūjìng] : 결말. 일의 귀착. 결과.
도대체. 대관절.

信口 [xìnkǒu] :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함부로 말하다. [주로 부사성 수식어로 많이 쓰임] (=信嘴, 讯口)

吟哦 [yín’é] : 음아하다. 읊다. 음영하다. (=吟咏)

煊赫 [xuānhè] : 훤혁하다. 명성이 대단하다.

闾里 [lǘlǐ] : 마을. 시골. 향리. (=闾伍)

仁风 [rénfēng] : (군주의) 은덕이 바람처럼 널리 퍼지다. [군주나 지방 수령의 덕정을 칭송하는 말.] 부채.

曾经 (céngjīng) : 일찍이. 이전에. 이미. 벌써. (→业经, 已经)

筹建 [chóujiàn] : 건설[설립]을 계획하다.

专人 (zhuānrén) : 전담자. 특파원. 특별히 파견한 사람.

仿照 [fǎngzhào] : (기존의 방법·양식에) 따르다. (원형대로) 모방하다. 본뜨다.
负责 [fù//zé] : 책임이 있다. 책임을 지다.
담보하다. 보장하다. 책임감이 강하다.

供应 [gōngyìng] : 제공(하다). 공급(하다). 보급(하다). (=供给)

联络 [liánluò] : 연락(하다). (=连络)

献 [xiàn] : 바치다. 드리다. 올리다.
나타내다. 표현하다. 보이다.

家财 [jiācái] : 가재. 집 재산. 가산. (=家产)

购 [gòu] : 사다. 사들이다. 구입하다. (→买)

义田 [yìtián] : 옛날, 일족 또는 한 마을 중의 극빈자를 구제하기 위한 공동 소유의 전답.
(=义庄)

亲自 [qīnzì] : 몸소. 친히. 직접. (→自己, 亲身)

主理 [zhǔlǐ] : 맡아 보다.

有无 [yǒuwú] : 있는가 없는가. (=有没有)
유무.

冠婚 (guānhūn) : 冠礼와 婚礼

冠礼 [guānlǐ] : (남자가 성인이 되어 관모를 쓰는) 관례

婚礼 [hūnlǐ] : 결혼식. 혼례. (=昏礼)

酌处 [zhuóchǔ] : 작처하다. (일을) 고려하여 처리하다.

鳏寡孤独 [guān guǎ gū dú] :
홀아비와 과부와 고아와 늙어서 자식이 없는 사람. 의지할 데 없는 사람.

失所 [shīsuǒ] : 의지할 곳을 잃다.
타당하지 못하다.

养 [yǎng] : 먹여 살리다. 기르다. 양육하다. 부양하다. (가축이나 화초 따위를) 기르다. 가꾸다. 사육하다. 치다. 재배하다.
수양(收養)의.


何心隐的“聚和堂”比颜钧的“ “萃和会”
组织性更強,沒有率教、率养 、
辅教 、辅养等专职人员,兼具经济,
教化、社会救助等方面的职能,并
取得了初步的实效。

하심은의 "聚和堂(취화당)"은 안균의
“萃和会(췌화회)”에 비하여
조직성이 더 강해 가르침을 받들어 부양하거나 교육을 돕거나 보조하는
등의 전임인원이 없이
경제·교화·사회구호 등의 기능을 겸비해 아울러 초보적인 실효를 거뒀다.

率 [shuài] : 인솔하다. 거느리다. (→带)
따르다. 그대로 하다.
경솔하다. 신중하지 않다.

率教 [shuàijiào] : 가르침을 받들다.

輔 [fǔ] : 돕다. 보좌하다. 부(副).

专职 [zhuānzhí] : 전임. 전적으로 담당하다.

人员 [rényuán] : 인원. 요원. 성원. 멤버.

职能 [zhínéng] : 직능. (사람·사물·기구 등의) 기능. 공능. 효용. (→功能, 机能, 效能, 作用)

取得 [qǔdé] : 취득하다. 얻다. 획득하다. (→得到, 获得, 获取)


黄宗羲也称赞其“身理一族之政,
冠婚葬祭赋役,一切通其有无,
行之有成”。

황종희도 "몸소 일족의 정사를 맡아 관혼장제(冠婚葬祭)에 부역하였는데,
모든 것이 유무상통하여 행함에 성과가 있었다"고 칭찬하였다.

赋役 [fùyì] : 조세(租稅)와 부역.
국세(國稅)의 총칭.
국가나 공공 단체가 특정한 공익사업을 위하여 보수 없이 국민에게 의무적으로 책임을 지우는 노역.


何心隐还依托“聚和会”组织族人抵抗
邑令的赋外之征,被逮捕人狱,判绞
罪,后改为充军。
候外庐在《中国思想通史》中认为何心隐的 “聚和会” “从政治性组织上讲,
是一种社会运动的集团”。

하심은은 또한 “聚和会"'에 의지하여
가족을 조직하여 읍령의 세금 외에
토벌에 저항하였는데
체포된 사람은 교수형에 처했으나
나중에 충군(充军)으로 바뀌었다
후외려(候外庐)가 《중국사상통사》에서
하심은의 “聚和会” 는
정치적 조직상으로 말하면
일종의 사회운동의 집단"이라고 말했다.

依托 [yītuō] : (어떤 명의를) 빌다. 빌리다. 차용하다. 빙자하다.
의지할 곳. 의지. 근거. 지주(支柱)

抵抗 [dǐkàng] : 저항(하다). 대항(하다).

邑令 .[yìlìng] : 현령.

赋 [fù] : 주다. 부여하다.
세금을 거두다. 징수하다.
(옛날의) 농지세. 전답세.

征 (zhēng) : (주로 군대가) 먼길을 가다.
정벌하다. 토벌하다. 증명(하다). 검증(하다).

狱 [yù] : 감옥. 교도소.
혁명전, 범죄 사건. 소송 사건.

判 [pàn] : 나누다. 분별하다. 판단하다.
헤어지다. 분명하다. 명백하다.

絞 [jiǎo] : 비틀다. 꼬다. {전용} 뒤엉키다. 얽히다. 비틀어 짜다. 죄어 짜다.
타래. [섬유 제품인 실·털실 따위를 세는 단위]

充军 [chōng//jūn] : 옛날 유형(流刑)의 일종으로 범죄자를 먼 곳으로 보내 군인으로 충당하거나 노역(勞役)에 종사케 하다. (→充发, 配军)

认为 [rènwéi] : 여기다. 생각하다. 보다. 인정하다. 생각. 이해. 의견.



해석만
P58 6줄~ 끝줄 중간
안산농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실천에 옮겨 고향에서 “萃和会(췌화회)”를 창설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일월이 되면
사농공상은 모두 해가 뜨면 작업을 하고
저녁이면 모두 회당에 모여 숙식한다.
2월이 되면 노인들은 8, 90세
목동은 12, 3세가 되어
각자 심성의 요령을 터득하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각자 읊조리고,
시를 짓고 노래 하고 칭송하고 찬양한다.
......直犹唐虞瑟僴,명성이 마을 골짜기를 빛냈고 향리에서 은덕이 바람처럼 널리 퍼졌다."
또한 나근계는 일찍이 강서 모든성의 학회를 계획하여 모든 성을 "同志"로 묶어 아울러 전담자가 있어 보급과 연락을 책임지게하였다.
그리고 하심은은 안균을 따라 자기의 고향에서 “聚和堂”을 창설하였다.
그는 가산을 바쳐 공동소유의
전답(义田)을 사들이고
일족의 정사를 직접 주관하고
그 유무를 통하여
집안의 자제들이 사당에서 숙식하게 하고 사당에 모여 사당에서 식사하고
학업을 마친 후
관혼의식은 모두 사당에서 처리하고
홀아비와 과부와 고아와 늙어서 자식이 없는 사람과 의지할 곳을 잃은 사람은 모두 부양하였다.
하심은의 "聚和堂(취화당)"은 안균의
“萃和会(췌화회)”에 비하여
조직성이 더 강해 가르침을 받들어 부양하거나 교육을 돕거나 보조하는
등의 전임인원이 없이
경제·교화·사회구호 등의 기능을 겸비해 아울러 초보적인 실효를 거뒀다.
황종희도 "몸소 일족의 정사를 맡아 관혼장제(冠婚葬祭)에 부역하였는데,
모든 것이 유무상통하여 행함에 성과가 있었다"고 칭찬하였다.
하심은은 또한 “聚和会"'에 의지하여
가족을 조직하여 읍령의 세금 외에
토벌에 저항하였는데
체포된 사람은 교수형에 처했으나
나중에 충군(充军)으로 바뀌었다
후외려(候外庐)가 《중국사상통사》에서
하심은의 “聚和会” 는
정치적 조직상으로 말하면
일종의 사회운동의 집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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