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진 태주학파 미학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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他们以 “齐家” 为起点进行社会重建的
实验,在现有的社会组织之外另起炉
灶,无疑是泰州学派出位之思的一种
实际操作。
그들은 "제가(齊家)"를 기점으로 사회 재건을 위한 실험을 진행하여
기존의 사회 조직 외에 다른 방도를 세웠는데 의심할 여지없이
태주학파 출세 사상인 일종의 실제
운영이다.
起点 [qǐdiǎn] : 기점. (=出发点)
스타트 라인(start line).
重建 [chóngjiàn] : 재건(再建)하다.
现有 [xiànyǒu] : 현유의. 현행의. 현존의.
起炉灶 (qǐ lú zào) : 새로 시작하다. 다른 방도를 세우다
炉灶 [lúzào] : 부뚜막.
无疑 [wúyí] : 의심할 바 없다. 틀림없다. 두말할 것 없다.
实际 [shíjì] : 실제(의). 실제적이다. 현실적이다.
操作 [cāozuò] : 조작(하다). (손으로) 다루다. 일하다.
梁漱溟也高度评价泰州学派的社会
改造运动,“很佩服王心斋” , 说自己
放弃出家念头转而进行 “乡村建设”
的实务与 “泰州学派的
儒家精神相通的”。
양수명도 태주학파의 사회 개조 운동을 높이 평가하여 "왕심재에 감동했다"
하고 자기 출가를 단념하였다고
말하며 "농촌 건설"의 실무와
"태주학파의 유가정신이 서로 통함"을 진행하였다.
梁漱溟 (Liang Shuming) :
몽골족, 본명 환정(環亭) , 자 수명(壽銘), 필명 수명(水命), 중국의 저명한 사상가, 철학자, 교육자, 사회활동가, 국학의 대가, '중국의 마지막 대유가'라고도 불림.
佩服 [pèi‧fú] : 탄복하다. 감탄하다. (=拜服, 钦佩)
放弃 [fàngqì] : (원래의 권리·주장·의견 따위를) 버리다. 포기하다. (=弃让, 抛弃)
出家 [chū//jiā] : 불교 집을 떠나 (절이나 도관에 가서) 중이나 도사가 되다. (→入道)
念头 [niàn tóu] : 생각. 마음. 의사. [‘主意’(의견)에 대해서, 별로 정리되지 않은 막연한 생각을 말함]
念头转 [niàntóu zhuăn] : 발상의 전환
以今天目光回望风云际会的中晚明
乃至中古以来的中国,泰州学派人物
以其独特的儒者形象,群体性簇拥在
嘉靖、隆庆、万历三朝的近百年间,
若从王艮25岁 "过阙里,谒孔圣及颜
曾思孟诸庙, 瞻拜感激,奋然有任道
之志” 的明正德二年(1507)算起,到
李贽在北京通县的狱中割喉自杀的万
历三十年(1602),可以说他们在 16
世纪的中国成为最为抢眼的一道人文
风景线。
오늘 시선으로 풍운의 시기
중만명 내지 중고 이래의
중국을 돌아보면
태주학파 인물들은
독특한 선비적 이미지로
가정, 융경, 만력 등 삼대에
최근 100년 동안
집단성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왕간 25세에
"阙里를 지날 때 공자 및
안자 증자 자사 맹자 등
모든 묘를 알현하고
우러러 감사드리며 분연히
임도의 뜻을 가지다"의
명정덕 2년(1507)을 따지면,
이지(李智)가 북경 통현(通縣)의 옥중에서 목이 잘려 목숨을 끊은 만력 30년(1602년)까지
그들은 16세기 중국에서 가장
눈길을 끈 한 줄기의
인문의 특색이 되었다.
目光 [mùguāng] : 식견. 시야.
눈빛. 눈길. 눈초리. (=眼神)
回望 [huíwàng] : 되돌아보다
风云 [fēngyún] : 바람과 구름. 복잡하게 급변하는 정세.
际会 [jìhuì] : 만나다. (=际遇). 모이다. 회합하다. (좋은) 기회. 시기. 때.
风云际会 (fēngyúnjìhuì) : 인재들이 흔치 않은 기회로 서로 만나게 되다.
乃至 [nǎizhì] : 더 나아가서. (=乃至于, 甚至)
以来 [yǐlái] : 이래. 동안. (=以还, 已来)
남짓.
独特 [dútè] : 독특하다. 특수하다
形象 [xíngxiàng] : 형상. (→形态, 样子)
(문학 작품에서의) 형상. 구체적이다.
簇拥 [cùyōng] : (많은 사람이) 빼곡히 둘러싸다. (=簇捧)
群体性 (qúntǐxìng) : 집단성
孔圣 (kǒngshèng) : 공자의 존칭
瞻拜 [zhānbài] : 배견(拜見)하다. 참배하다. 우러러보다.
感激 [gǎn‧jī] : 감격(하다). (→感动)
감사하다.
奋然 [fènrán] : 흥분하는 모양. 분발하는 모양. 떨쳐 일어서는 기운이 세차고 꿋꿋한 모양.
任道 [rèndào] : 중임을 맡은 사람.
割 [gē] : (낫·칼 따위로) 자르다. 베다. 절개하다. 떼어 내다.
(곡식·풀 따위를) 베다. 재해.
喉 [hóu] : 인후(咽喉). 목구멍. (=喉头, 咽喉)
割喉 [gēhóu] : 격렬한 상업적 경쟁을 비유하여 쓰는 말.
成为 [chéngwéi] : …으로 되다.
最为 [zuìwéi] : 제일. 가장. 맨 먼저. [2음절의 형용사나 동사 앞에 놓여 최상급을 나타냄]
抢眼 [qiǎngyǎn] : 눈길을 끌다.
황홀케 하다. (=夺目)
一道 [yídào] : (강·다리·길·선(線)·요리(料理)·제목(題目) 등의) 하나. 같이. (=一路)
人文 [rénwén] : 인문. 인류의 문화(현상).
风景线 [fēngjǐngxiàn] : (관광)명소. 명승지. 관광지(대). 관광루트.
경관(景觀). 풍경. 광경. 모습. 양상. 특색. 흥밋거리. 볼거리. 관심거리. 관심사. 구경거리. 유행. 명물. ...
他们与名为中庸、持正、稳健、韬晦,
实乃乡愿、怯弱、首鼠两端的般儒家
士大夫相比照,的的确确是一群卓然
独立的另类,是 “特殊”的儒者。
也正是这群儒者,使我们看到了正宗
儒家君子自強不息的阳刚之美。
如果把这百年历史长卷比作一部长剧
的话,那么以王艮父子为主导的泰州
学派前期,可以说是偶尔带点正剧色
彩,而以颜钧、何心隐、李贽等为
主角的后期,只能说是具有很强的
悲剧色彩。
그들은 중용·지정·온건·도회라는
이름의 향원·겁약·수서 양끝에 있는
반유가 사대부와 비교되어 확실히
한무리의 뛰어난 독립적으로
남다르며 "특수"한 선비들이었다.
바로 이 선비들이 우리들에게
전통 유교 군자의 자강불식하는
강건미를 보여준다.
만약 이 100년 역사의 장편을 한 편의 장편극에 비유한다면
그러면 왕간 부자가 주도했던
태주학파의 전기가 되고
가끔은 정극 색채를 띠고
안균, 하심은, 이지 등을
주인공으로 한 후기는
비극적 색채가 짙다고
할 수밖에 없다.
持正 [chízhèng] : 정도(正道)를 지키다.
불편부당(不偏不黨)하다. 공평하다.
稳健 [wěnjiàn] : 믿음직하다. 침착하고 힘있다.온건하다. 침착하다. 뜸직하다. 묵직하다.
韬晦 [tāohuì] : (☞韬光养晦)
韬光养晦 [tāo guāng yǎng huì] :
재능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다. 때를 기다리다. (=韬晦, 韬藏, 韬光晦隐)
乡愿 [ xiāngyuàn ] : 향원. 마을의 신망을 얻기 위해 선량을 가장한 사람.
속인의 인기를 모으는 위선자
怯弱 [qièruò] : 겁이 많고 나약하다.
약하다. 가냘프다
首鼠两端 [shǒu shǔ liǎng duān] :
구멍에서 머리만 내밀고 엿보는 쥐.
태도가 분명하지 않고 우유부단하다.
우물쭈물하여 결단을 못 내리다.
결단성이 없다.
相比 [xiāngbǐ] : 비교하다. (=比较)
照 [zhào] : 비치다. 비추다. 빛나다.
(거울 따위에) 비추다. 사진
相比照 [xiāngbǐzhào] : 비교 대조하다
儒家 [ Rújiā ] :유가. 유학자.
[선진(先秦) 시대 사상가(思想家)의 일파로서 공자(孔子)·맹자(孟子)를
대표로 하여 예치(禮治)를 주장하고 전통적인 윤리를 강조하였음]
的的确确 (dídíquè què) :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一群 [yìqún] : 일군. 한 떼. 한 무리.
卓然 [zhuórán] : 탁월하다. 뛰어나다. (=卓尔, 卓卓)
另类 [lìnglèi] : 남다른 사람. 색다른 것.
남다르다. 색다르다
阳刚 [yánggāng] : 남자의 강건한 기질.
正宗 [zhèngzōng] : 불교 정종.정통(파).
정종의. 정통의. 전통적인.
阳刚之美 [yánggāngzhīměi] : 강건미. 남성미
长卷 [chángjuàn] : 긴 두루마리.
长剧 (zhăng jù) : 장편극
主导 [zhǔdǎo] : 주도하다. 주도적인 것.
偶尔 [ǒu’ěr] : 간혹. 이따금. 때때로.
(↔经常). 우연히 발생한. 우발적인.
正剧 [zhèngjù] : 연극 정극.
色彩 [sècǎi] : 색채. (→颜色)
경향. 편향. 조기백화 오색 비단.
悲剧 [bēijù] : 연극 비극. (↔喜剧)
비극. 비참한 일.
해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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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8 끝줄 중간~ p59 17줄
그들은 "제가(齊家)"를 기점으로 사회 재건을 위한 실험을 진행하여
기존의 사회 조직 외에 다른 방도를 세웠는데 의심할 여지없이
태주학파 출세 사상인 일종의 실제
운영이다.
양수명도 태주학파의 사회 개조 운동을 높이 평가하여 "왕심재에 감동했다"
하고 자기 출가를 단념하였다고
말하며 "농촌 건설"의 실무와
"태주학파의 유가정신이 서로 통함"을 진행하였다.
오늘 시선으로 풍운의 시기
중만명 내지 중고 이래의
중국을 돌아보면 태주학파 인물들은
독특한 선비적 이미지로
가정, 융경, 만력 등 삼대에
최근 100년 동안
집단성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왕간 25세에
"阙里를 지날 때 공자 및
안자 증자 자사 맹자 등
모든 묘를 알현하고
우러러 감사드리며 분연히
임도의 뜻을 가지다"의
명정덕 2년(1507)을 따지면,
이지(李智)가 북경 통현(通縣)의 옥중에서 목이 잘려 목숨을 끊은 만력 30년(1602년)까지
그들은 16세기 중국에서 가장
눈길을 끈 한 줄기의
인문의 특색이 되었다.
그들은 중용·지정·온건·도회라는
이름의 향원·겁약·수서 양끝에 있는
반유가 사대부와 비교되어 확실히
한무리의 뛰어난 독립적으로
남다르며 "특수"한 선비들이었다.
바로 이 선비들이 우리들에게
전통 유교 군자의 자강불식하는
강건미를 보여준다.
만약 이 100년 역사의 장편을 한 편의 장편극에 비유한다면
그러면 왕간 부자가 주도했던
태주학파의 전기가 되고
가끔은 정극 색채를 띠고
안균, 하심은, 이지 등을
주인공으로 한 후기는
비극적 색채가 짙다고
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