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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주학파 미학범주

14. "진태주학파 미학범주"P60 10줄~  P60 마지막 줄

작성자하전|작성시간21.06.09|조회수42 목록 댓글 0


14.
"진 태주학파 미학범주"
P60 10줄부터  P60 마지막 줄까지
  其一,从 “处"的大节来说,
泰州学派前期的讲讲学不辍,
既推广了他们的尊身立本的
大成仁学和百姓日用之道,
又为他们嬴得了广泛的尊重和
声誉,也得到了官方的支持,
甚至被从祀乡庙,达到了
“身尊道尊” 的两全之美;
而同样是为了实现 “处” 的
“大节”,颜钧、何心隐等人的
讲学活动却有失 “身尊” 之偏。

그 하나는 “处"의 큰 절개를
말해서 태주학파 전기에는 강의가
끊이지 않았고 이미 그들의
존신 입본의 대성 인학과 백성의
일용지도를 널리 보급했으며
또 그들을 위해 폭넓은  존중과
명성과 명예를 충분히 얻었고
정부당국의 지지도 받았다.
심지어는 향묘 제사까지
지내게 되었는데,
'신존도존(身尊道尊)'의 두 가지
완미에까지 도달하였다.
같은 처(處)의 대절(大節)을
이루기 위함인데
안균, 하심은 등의
강학 활동은 신존의 편향을 보였다.

讲学不辍 (jiǎngxuébùchuò) :
끊임없이 학문을 하다

推广 [tuīguǎng] : 널리 보급하다. 확충[확대]하다. 일반화하다. (→普及)

嬴 [yíng] : 가득하다. 충만하다. 넉넉하다. 충분하다.

广泛 [guǎngfàn] : (공간적인 의미에서) 광범(위)하다. 폭넓다. (→广阔, 广大)

声誉 [shēngyù] : 성예. 명성과 명예. (=荣誉)

官方 [guānfāng] : 정부 당국. 정부측.
관리가 지켜야 할 예법. (=官纪)


具体表现在泰州学派人物与官场
关系由融洽、疏离到冲突。
早期泰州学派尤其是王艮父子与
当地的官员保持了良好的关系,
受到官方的器重和优待,官府还
出资为他们构筑东淘精舍供他们
讲学之用,也经常邀请他们到官
办的书院讲学,甚至还保荐他们
到朝廷做官。

구체적으로 태주 학파의
인물과 관리 사회의 관계에서
화합과 소외에서 충돌로 이어졌다.
초기 태주학파 특히 왕간 부자는
현지 관리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며 관청의 존중과
우대를 받았고
관청에서 자금을 들여
그들을 위해 东淘精舍를
건설하여 그들의 강학의
용도에 제공하였고
역시 항상 그들을
관청의 서원으로 초청하여
강학을 가르치도록 하고
심지어 그들을 보증 추천하여
조정에 나가 관리가 되도록 하였다.

官场 [guānchǎng] : 폄하·폄훼 관리 사회. [주로 관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허위·사기·아첨·알력 등의 특징을 강조하는 말...
송대(宋代)의 관영[국영] 시장(市場).

融洽 [róngqià] : 사이가 좋다. 조화롭다. 융화하다. (→和睦, 和谐)

疏离 [shūlí] : 심리 소외(疏外).
소원해지다.

冲突 [chōngtū] : 충돌(하다).
모순되다. 겹치다.

尤其 [yóuqí] : 특히. 더욱. (=尤以)

当地 [dāngdì] : 당지. 그 지방.
현지. 현장. 방바닥.

保持 [bǎochí] : 보지하다. 지키다. 유지하다.

受到 [shòu‧dao] : …을 받다.

器重 [qìzhòng] : (주로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중시하다. 신임하다. (=器敬)

优待 [yōudài] :  우대(하다). 특별 대우(하다). (↔薄待)

出资 [chūzī] : 자금을 공급하다. 출자하다.

构筑 [gòuzhù] :  구축하다.

精舍 [jīngshè] : 학사(學舍). 서재.
절. 사원. (=静舍)

供 [gòng] : (제물을) 바치다.
공물(供物). 제물.

经常 [jīngcháng] : 늘. 항상. 언제나.
(→常常, 时时)
보통이다. 일상적이다. 정상적이다.
(→平常, 日常)

邀请 [yāoqǐng] : 초청[초대](하다).
(→聘请, 邀聘, 延聘, 招请)

官办 [guānbàn] : 국가가 경영하다.
관청이 주최하다

保荐 [bǎojiàn] : 보증(하여) 추천(하다).

做官(儿) [zuò//guān(r)] :  관리가 되다. 벼슬하다. (→喜雀登枝), (=作官(儿))


据《年谱》记载,在王艮47和
55岁时,抚台刘梅谷和御史吴
疏山多次疏荐他就职。
他们有时也帮助地方官员解决
一些困难,协调官民关系。

《年谱》기록에 근거하여보면
왕간이 47세와 55세에
부대 유매곡과 어사 오소산은
그를 여러 차례 추천하여 취임시켰다.
그들은 때로 지방 관리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민관 관계를 조정하는 것을 도왔다.

抚台 [fǔtái] : 抚 =撫. 어루만질 무
(명청 시기 지방 군정 대신)의 존칭.

巡抚 [xúnfǔ] : 명대(明代), 임시로 지방에 파견하여 민정·군정을 순시하던 대신.
청대(淸代), 지방 행정 장관. (→部院)

多次 [duōcì] : 여러 번. 자주.
(=多回, 屡次)

荐 천거할 천, 꽂을 진

就职 [jiù//zhí] : (정식으로) 취임하다. [비교적 높은 직위를 가리킴] (→任职)
대만어 취직하다.

协调 [xiétiáo] : 협조(協調)하다.
(의견을) 조정하다. 조화하다.


但他们有意识与官场保持一定
的距离,几次被荐皆不就。
即使遇到皇帝的宠佞,王艮也
敢于据理力争,并以自己的
人格力量感化他们。

그러나 그들은 관청과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의식이 있었는데
몇 차례 추천을 받았으나
받지 않았다.
황제의 총애를 받더라도 왕간은
대담하게 이치에 의거하여
강력히 논쟁하고 자신 인격
역량으로 그들을 감화시켰다.

保持 [bǎochí] : 지키다. 유지하다.

宠佞 (chǒngnìng) : 총애하고 아첨을 잘하다

敢于 [gǎnyú] : 대담하게 …하다. 용감하게 …하다.

据理力争 [jù lǐ lì zhēng] : 사리에 근거하여 힘껏 논쟁하다. 논리로 따져서 쟁취하다.



正德十四(1519),“武宗南巡,
驻跸维扬,所过骚动”。
王艮正义凛然地回绝了嬖幸佛太监、
神总兵索取鷹犬的要求,并以自己的
孝行和规劝 “主上早旋跸,以安天下”
的 “善言” 感动了佛太监。

정덕 14(1519), "무종이 남쪽을
순시하고 跸维扬(필유양)에서
머무를 때에 소동이 있었다"
왕간은 왕의 총애를 받는 佛太监과
신총병의 독촉하는 주구의 요구를
정의롭고 위엄이 있게 거절했고
아울러 자신의 효행과
충고로써 "천자께서 아침에
선필하시어 천하를 안정시키십시오"
라는 "선언"은 불태감을 감동시켰다.

凛然 [lǐnrán] : 매우 엄하다. 늠연하다. 위엄이 있다.

回绝 [huíjué] : 거절하다. 사절하다.

嬖幸 [bìxìng] : (비천한 출신으로) 왕의 총애를 받는 사람. (=嬖御)

太监 [tàijiàn] : 환관(宦官). (=老公)
환관의 우두머리.

总兵 [zǒngbīng] : 명청(明淸) 시대, 군대를 통솔하고 한 지방을 지키는 벼슬.
군대를 통솔하다

索取 [suǒqǔ] : 받아 내려 독촉하다. 요구하다. 얻어 내다. 구하다. (=索要)

鹰犬 [yīngquǎn] : (사냥에 쓰이는) 매와 개. 앞잡이. 주구(走狗).

规劝 [guīquàn] : 권고하다. 충고하다. 타이르다.

主上 [zhǔshàng] : 옛날, 주상. 천자.

跸 = 蹕 [bì] : 경필(하다). [제왕이 행차할 때, 통행을 금하여 길을 치우는 일]
제왕의 거가. 어가



해석만
14.
P60 10줄부터  P60 마지막 줄까지
그 하나는 “处"의 큰 절개를
말해서 태주학파 전기에는 강의가
끊이지 않았고 이미 그들의
존신 입본의 대성 인학과 백성의
일용지도를 널리 보급했으며
또 그들을 위해 폭넓은  존중과
명성과 명예를 충분히 얻었고
정부당국의 지지도 받았다.
심지어는 향묘 제사까지
지내게 되었는데,
'신존도존(身尊道尊)'의 두 가지
완미에까지 도달하였다.
같은 처(處)의 대절(大節)을
이루기 위함인데
안균, 하심은 등의
강학 활동은 신존의 편향을 보였다.
구체적으로 태주 학파의
인물과 관리 사회의 관계에서
화합과 소외에서 충돌로 이어졌다.
초기 태주학파 특히 왕간 부자는
현지 관리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며 관청의 존중과
우대를 받았고
관청에서 자금을 들여
그들을 위해 东淘精舍를
건설하여 그들의 강학의
용도에 제공하였고 역시 항상 그들을
관청의 서원으로 초청하여
강학을 가르치도록 하고
심지어 그들을 보증 추천하여
조정에 나가 관리가 되도록 하였다.
《年谱》기록에 근거하여보면
왕간이 47세와 55세에
부대 유매곡과 어사 오소산은
그를 여러 차례 추천하여 취임시켰다.
그들은 때로 지방 관리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민관 관계를 조정하는 것을 도왔다.
그러나 그들은 관청과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의식이 있었는데 몇 차례 추천을 받았으나 받지 않았다.
황제의 총애를 받더라도 왕간은
대담하게 이치에 의거하여
강력히 논쟁하고 자신 인격
역량으로 그들을 감화시켰다.
정덕 14(1519), "무종이 남쪽을
순시하고 跸维扬(필유양)에서
머무를 때에 소동이 있었다"
왕간은 왕의 총애를 받는 佛太监과
신총병의 독촉하는 주구의 요구를
정의롭고 위엄이 있게 거절했고
아울러 자신의 효행과
충고로써 "천자께서 아침에
선필하시어 천하를 안정시키십시오"
라는 "선언"은 불태감을 감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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