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P83 세째 줄 ~ p84 여섯 째 줄
曾经师事王襞并且深受罗近溪、
王龙溪影响的李贽, 是否属于
泰州学派有很多讨论, 本人认为
可以把他归人泰州门下。
일찍이 왕벽을 스승으로 모셨으며,
나근계(羅近溪)와 왕룡계(王龍溪)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이지는 태주학파에
속하는지 아닌지는 여러 가지 논의가
있는데, 나는 그를 태주 문하에 둘 수
있다고 생각한다.
襞 : 주름 벽
深受 (shēnshòu) : 깊이 받다
크게 받다
黄宗羲的<<明儒学案>> 没有
把李贽列人泰州学案, 是因为
他首先被排在了儒者之外,
不但泰州学案没有他, 在整个
<<明儒学案>> 中都没有他的
位置。
황종희의 <<명유학안>>에는
이지를 태주학안에
열거하지 않았는데 그가 먼저
유자(儒者)에서 밀려났고
태주학안에는 그가 없을 뿐만 아니라
<<명유학안>> 전체에 그의
자리가 없다.
学案 (xué’àn)
학파의 원류를 기재한 서적
예컨대 ‘明儒学案’·‘宋儒学案’ 따위
列人 [ liè rén ] : 有名望的人。
名望 (míngwàng) :
명사 명망. 명성과 인망(人望).
좋은 명성.
首先 (shǒuxiān) : 명사 맨 먼저.
우선. 무엇보다 먼저.
첫째. [열거하는 경우에 쓰임]
동사 남보다 앞서다. 선두를 달리다.
今天看来, 李贽尽管有一些蔑视
孔子权威的言论, 但在李贽的
圣人榜上, 孔子还是处于第一位的,
他说: "夫天生一人, 自有一人之用,
不待取给于孔子而后足也。
지금보니 이지는 비록 공자의 권위를
멸시하는 발언이 있었지만
그러나 이지의 성인명단에는
공자는 여전히 제 일의 위치에 있는데
그는 "하늘이 낸 한 사람이며 스스로 독보적인 사람이며 공자에게 주어지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도 족하다.
若必待取足于孔子, 则千古以前无
孔子, 终不得为人乎?"
他只是认为判断是非的标准不应
是孔子的言论, 不要教条地理解
孔子,反对后世儒者随意穿凿附会;
其次, 李贽行世态度不失儒者的
本色,他具有儒家的人世精神,
自觉肩负社会批判的道义责任;
再次, 他讨论的问题仍然是儒家的
主要问题。
만일 반드시 공자에게서 만족을
얻으려 한다면, 천고에 공자가 없었으니,
끝내는 성인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
아닌가? 그는 다만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공자의 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공자를
교조(教条)적으로 이해하지 말고,
후대의 유학자 마음대로
억지로 둘러대는 것을 반대한다.
둘째, 이지의 사람 됨의 태도는
유학자다운 본분을 잃지 않고
그는 유가의 인간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 비판의 도의적 책임을 자각적으로
짊어졌다. 거듭 그가 논의한 문제는
여전히 유가의 주요 문제였다.
千古 (qiāngǔ) : 명사 문어 천고.
아주 오랜 옛날. 태고.
부사 문어 영원히.
(→千载, 千秋)
명사 문어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말로,
영원한 이별을 뜻함.
[주로 화환 등에 씀]
为人 (wéirén) : 명사 사람 됨됨이.
인간성. 위인. 인품.
동사 남과 잘 사귀다.
남과 잘 어울리다.
教条 (jiàotiáo) : 명사 훈련의 주요 항목.
학생이 지켜야 할 규칙. 교훈의 조목(條目).
종교 교조. 도그마(dogma).
교회가 공인한 교의(敎義).
穿凿附会 (chuān záo fù huì) :
성어 견강부회(牽强附會)하다.
억지로 둘러대다.
其次 (qícì) : 다음. 그다음.
부차적인 위치. 이차적인 위치
行世 (xíngshì) : 동사 세상에 널리 전하여지다.
具有 (jùyǒu) : 동사 구비하다. 가지다.
[목적어로는 주로 추상적인 것이 쓰임]
自觉 (zìjué) : 동사 자각하다.
스스로 느끼다.
형용사 자각적이다. (=自意识)
肩负 (jiānfù) : 동사 짊어지다. 걸머지다.
在李贽的著作中,有很多关于
"三纲领"、 "八条目" 的论述
说明了这一点。
이지의 저서 가운데
'3강령', '8조목'에 관한 논술이
많이 나와 이 점을 말해준다.
如果不是当时的社会环境
使得黄宗羲不敢把李贽列为
儒者的话, 黄宗羲是会把李贽
列人泰州学案的, 理由有四:
其一, 李贽自称以王襞为师。
황종희가 이지를 유학자(儒者)로
분류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당시의 사회 환경이 아니었다면
황종희는 이지를 태주학안에
열거할 것인데 이유는 네 가지다.
첫째, 이지는 스스로 왕벽(王襞)을
스승으로 삼았다고 했다.
他对王艮极为仰慕, 他说
"当时阳明先生门徒遍天下,
独有心斋最为英灵",
"盖心斋真英雄, 故其徒
亦英雄也" ;其 二, 李贽在
"百姓日用"、"吃饭穿衣"、
"人伦物理" 、"尊身" 等方面
与泰州学派的主旨一脉相传;
其三, 李贽与泰州学派的传人
耿定理、 焦竑、 何心隐等友善,
并对耿定向没有救何心隐大加
挞伐; 其四, 李贽不拘成说、
直接儒家元典的学术品质与
泰州学派的怀疑精神一脉相承。
그는 왕간을 지극히 흠모하였는데
그는 "당시 양명 선생의 제자들이
천하에 퍼져 있었는데, 오직
心斋만이 가장 출중하다 하였고
"대개 심재는 정말 영웅이므로,
그 제자 또한 영웅이다"
둘째, 이지(李日)는 '백성일용", "먹고 옷입기",
"인륜물리", "존신" 등에서
태주학파의 주지와 일맥상통한다.
셋째, 이지와 태주학파의 계승자
경정리, 초횡, 하심은 등은 우호적이었고
아울러 경정향에게 도움이 없는 것을
은근히 비난하였다.
넷째, 이지는 기존 학설에 얽매이지
않고 직접 유가 원전의 학문적 자질은
태주학파의 회의 정신과 맥을 같이 한다.
英灵 (yīnglíng) : 명사 존칭·존댓말
영령. 죽은 사람의 영혼. (=英魂)
명사 문어 영령. 재능이 출중한 사람.
영재. 명사 정령(精靈). 신령(神靈).
独有 (dúyǒu) : 동사 혼자만이
가지고 있다. 혼자만 갖추고 있다.
부사 유독. 다만. 단지. 오직.
挞伐 [ tàfá ]동사 문어 치다. 토벌하다. 징벌하다.
동사 문어 (남을) 비난하다. 꾸짖다.
나무라다.
成说 (chéngshuō) :
명사 통설(通說). 정설(定說).
정론(定論). 기존 학설.
기존의 약정. 기존의 협의.
一脉相传 =一脉相承
[ yí mài xiāng chuán ]
한 계통으로 이어 내려오다
일맥상통하다
元典 : 경제육전(經濟六典)을 달리
이르는 말. (=元六典)
由于此论对泰州学派与中晚明
文艺思潮 关系极大, 有必要作
详细的论述如下。
이 이론은 태주학파와
중만명 문예사조와의 관계가
매우 크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상세히 논술할 필요가 있다.
由于 [ yóuyú ]동사 …에 의하다.
…에 기초하다.
개사 …때문에. …로 인하여.
…로 말미암아.
[보통 글의 첫머리에 와서 바로 다음의 구절로 이어지는 구절의 원인을 표시함]
접속사 …때문에. …에 인하여.
与王艮贩盐经商身世背景相近,
李贽出身世代经商但家道中落的
泉州商贾之家, 过早地承担起赡养
家庭的责任, 青年时代的李贽将
孔子作为崇拜的偶像, 行事多仿效之,
也逐步产生了成就圣人的意识。
왕간이 소금을 팔아
장사를 하게 된 배경과 비슷한데
이지는 집안 대대로 장사를 했지만
가세가 기울었던 천주상인 집안
출신으로 가족을 부양할
책임을 너무 일찍 떠맡았는데
청년기의 이지는 공자를 숭배의
우상으로 삼았고 일을 하는 데 많은
것을 본받아 차츰차즘
성인의 업적을 깨닫는 의식도 생겼다.
经商 [ jīng//shāng ] ; 동사 장사하다.
身世 ( shēnshì ) : 명사 (주로 불행한 처지의) 신세. 경력. 일생.
相近 [ xiāngjìn ] : 형용사 비슷하다.
접근하다. 근사하다.
형용사 (거리가) 가깝다. 멀지 않다.
承担 (chéngdān) : 동사 담당하다.
맡다. (→担负)
赡养 (shànyǎng) : 동사 부양하다.
먹여 살리다
作为 (zuòwéi) : 명사 소행. 행위.
성과를[성적을] 내다.
…로 하다. …으로 삼다.
…로 여기다[간주하다].
行事 (xíngshì) : 명사 행위.
동사 실행하다. 일을 보다[처리하다].
교제를 잘하다. 접대를 잘하다.
仿效 (fǎngxiào) 동사 흉내내다.
모방하다. 본받다. (=仿俲, 倣效, 效仿)
逐步 (zhúbù) : 부사 한 걸음 한 걸음.
차츰차츰. (→步步, 逐渐, 渐渐)
嘉靖四十五年 (1566) 任北京
礼部司务后的5年间, 与王阳明的
再传弟子李材、 王艮的再传弟子
赵大洲以及徐用检、 王希淳、
李逢阳等为友, 并通过他们的接引
间接接触了王阳明、 王艮、
王畿的理论。
가정45년(1566)
북경예부사무를 지낸 후 5년간
왕양명의 재전 제자 이재,
왕간의 재전 제자
조대주와 서용검·왕희순·
이봉양 등과 벗을 맺고
아울러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왕양명, 왕간, 왕기의 이론을
간접적으로 접했다.
嘉靖 (Jiājìng) : 명사 가정.
명대(明代) 세종(世宗)의
연호(1522~1566).
礼部 (lǐbù) : 명사 예부.
[옛날 중국의 육부(六部)의 하나.
의례(儀禮)·제전(祭典)·학사(學事)·
고시(考試) 등의 일을 맡아봄]
传 [ chuán ] : 동사 전하다.
전수(傳受)하다. 가르쳐 전하다.
전파하다. 퍼뜨리다. 퍼지다.
接引 (jiēyǐn) : 동사 영접하다.
접대하다. 접견하고 인도하다[이끌다].
李贽自己说 "五载春官, 潜心道妙"①,
就是这段经历的写照。
이지 자신이 "오재춘관, 잠심도묘"라고
말한 것이 바로 이 경험의 모습이다.
春官 (chūnguān) : 명사 문어 주대(周代) 6관(官)의 하나로, 예법(禮法)·제사(祭祀)를 관장했고 후에 예부(禮部)라 일컬음. 옛날 봄맞이 때 흙으로 만든 소를 때리던 관리.
潜心 (qiánxīn) : 동사 문어 마음을
집중시키다. 몰두하다. (→专心)
문어 마음을 집중시키다. 몰두하다.
(→专心)
写照 (xiězhào) : 동사 인물의 형상을 그리다.
명사 모습. 모양.
명사,동사 묘사(하다).
李贽在记载他开始接触阳明学的
经过时说:
이지는 그가 양명학을 접하게 된 경위를
기록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참고
① <卓吾论略>, <焚书> 卷三。
해석
일찍이 왕벽을 스승으로 모셨으며,
나근계(羅近溪)와 왕룡계(王龍溪)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이지는 태주학파에
속하는지 아닌지는 여러 가지 논의가
있는데, 나는 그를 태주 문하에 둘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황종희의 <<명유학안>>에는
이지를 태주학안에
열거하지 않았는데 그가 먼저
유자(儒者)에서 밀려났고
태주학안에는 그가 없을 뿐만 아니라
<<명유학안>> 전체에 그의
자리가 없다.
지금보니 이지는 비록 공자의 권위를
멸시하는 발언이 있었지만
그러나 이지의 성인명단에는
공자는 여전히 제 일의 위치에 있는데
그는 "하늘이 낸 한 사람이며 스스로 독보적인 사람이며 공자에게 주어지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도 족하다.
만일 반드시 공자에게서 만족을
얻으려 한다면, 천고에 공자가 없었으니,
끝내는 성인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 아닌가?
그는 다만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공자의 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공자를
교조(教条)적으로 이해하지 말고,
후대의 유학자 마음대로
억지로 둘러대는 것을 반대한다.
둘째, 이지의 사람 됨의 태도는
유학자다운 본분을 잃지 않고
그는 유가의 인간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 비판의 도의적 책임을 자각적으로
짊어졌다. 거듭 그가 논의한 문제는
여전히 유가의 주요 문제였다.
이지의 저서 가운데
'3강령', '8조목'에 관한 논술이
많이 나와 이 점을 말해준다.황종희가 이지를 유학자(儒者)로
분류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당시의 사회 환경이 아니었다면
황종희는 이지를 태주학안에
열거할 것인데 이유는 네 가지다.
첫째, 이지는 스스로 왕벽(王襞)을
스승으로 삼았다고 했다.그는 왕간을 지극히 흠모하였는데
그는 "당시 양명 선생의 제자들이
천하에 퍼져 있었는데, 오직
心斋만이 가장 출중하다 하였고
"대개 심재는 정말 영웅이므로,
그 제자 또한 영웅이다"
둘째, 이지(李日)는
" 백성일용", "먹고 옷입기",
"인륜물리", "존신" 등에서
태주학파의 주지와 일맥상통한다.
셋째, 이지와 태주학파의 계승자
경정리, 초횡, 하심은 등은 우호적이었고
아울러 경정향에게 도움이 없는 것을
은근히 비난하였다.
넷째, 이지는 기존 학설에 얽매이지
않고 직접 유가 원전의 학문적 자질은
태주학파의 회의 정신과 맥을 같이 한다.
이 이론은 태주학파와
중만명 문예사조와의 관계가
매우 크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상세히 논술할 필요가 있다.
왕간이 소금을 팔아
장사를 하게 된 배경과 비슷한데
이지는 집안 대대로 장사를 했지만
가세가 기울었던 천주상인
집안 출신으로 가족을 부양할
책임을 너무 일찍 떠맡았는데
청년기의 이지는 공자를 숭배의
우상으로 삼고 일을 하는 데 많은
것을 본받아 차츰차즘
성인의 업적을 깨닫는 의식도 생겼다.
가정45년(1566)
북경예부사무를 지낸 후 5년간
왕양명의 재전 제자 이재,
왕간의 재전 제자
조대주와 서용검·왕희순·
이봉양 등과 벗을 맺고
아울러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왕양명, 왕간, 왕기의 이론을
간접적으로 접했다.
이지 자신이 "오재춘관, 잠심도묘"라고
말한 것이 바로 이 경험의 모습이다.
이지는 그가 양명학을 접하게 된 경위를
기록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