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운 초여름의 밤공기를 뚫고 반가운 얼굴들이 부산교대 앞 커피긱스(Geeks)에 모였습니다.
이달의 책은 미술비평의 문을 새로 열었다고 평가받는 존 버거의 명저, <다른 방식으로 보기 (Ways of Seeing)>입니다.
밥벌이 현장으로 끌려다니느라 기자(記者)가 토론회 후반부에 겨우 얼굴 도장을 찍는 바람에, 전반부의 그 뜨거웠던 대화를 듣지 못해 아쉽네요.
어쩔 수 없이 토론의 전반부는 Gemini의 상상력에 맡기고 순도 49%의 토론회 후기를 올려봅니다.
Ⅰ. 전반전: 우리가 '보는' 것은 정말 '사실'일까?
커피향 가득한 긱스에서 책의 첫 장을 펼치며 던진 첫 질문은 "우리가 사물을 본다는 것은 과면 무엇인가?"였을 것입니다.
존 버거는 책의 서두에서 "보는 것은 말보다 앞선다"고 단언하지요.
우리는 언어를 배우기 전에 먼저 세상을 보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보는 방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나 '믿고 있는 것'에 의해 끊임없이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저자는 일깨워주고 있지요.
이 지점에서 우리가 그동안 명화를 바라볼 때 얼마나 '지식의 함정'이나 '신비화'에 갇혀 있었는지를 되돌아보게 되네요.
예컨대, 記者가 루브르에서 와글와글 인파들의 탄성이 터지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방탄(?) 유리상자에 모셔져 있는 모나리자를 발견했을 때 느꼈던 그 경이감도 실상은 "이건 수백억 원짜리 위대한 명화야"라는 세뇌된 속물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경험 말이지요.
존 버거는 카메라의 발명이 예술을 바라보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고 말합니다. 과거에는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던 유일무이한 그림이, 복제 기술(사진과 인쇄)을 통해 누구나 방구석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이미지가 되었지요.. 이러한 복제 기술이 가져온 예술의 대중화에 대해 회원들의 긍정적인 평가와, 반대로 예술이 가진 고유한 아우라(Aura)의 상실에 대한 아쉬움이 교차하네요.
Ⅱ. 후반전: 유화, 누드, 그리고 타자의 시선
지각한 기자(記者)가 커피Geeks 세미나실의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들어섰을 때, 토론은 이미 존 버거의 가장 날카로운 비판들이 담긴 유화와 여성의 신체에 대한 주제로 넘어가 있네요.
▸ 유화, 사유재산을 찬양하는 가장 화려한 도구
"우리가 흔히 미술관에서 보던 그 화려하고 사실적인 유화들이, 사실은 당시 부유한 귀족과 자본가들이 '이게 다 내 재산이다'라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 주문 제작한 일종의 '인증샷'이었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웠다"는 KI님의 소감에 모두들 폭풍 공감하네요.
프레스코나 템페라와 달리 시간에 쫓기지 않고 세밀하게 그릴 수 있다는 강점 덕분에 광채, 입체감 묘사에 탁월한 유화의 장점이 지배계급의 과시욕을 극대화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분석은 예술을 바라보던 우리의 순진한 시선을 완전히 깨부수어 주었지요.
▸ 보는 남자와 보여지는 여자: 누드(Nude) vs 벗은 몸(Naked)
토론은 이 책의 가장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성(Gender)과 시선'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존 버거는 서구 미술사에서 여성이 다루어진 방식을 '보는 남자와 보여지는 여자'라는 구도로 명쾌하게 정리하고 있지요.
단순히 옷을 벗고 있는 상태인 'Naked'와 달리, 미술 속의 'Nude'는 철저하게 '남성 관객(시선)'을 의식하여 전시된 상태를 의미한다는... 남성중심적 사고에 철저히 매몰된 서양미술 전통의 파렴치함에 대해 CN님이 직격탄을 날립니다.
하지만 서구 미술사를 보면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을 비롯해서 남성들을 모델로 한 누드 그림이나 조각상도 많지 않느냐, 다비드상의 노출된 거시기는 여성들의 손에 의해 맨질맨질 닳아버렸다는데... 라며 SG님이 애교섞인 반론을 펴보지만 직격탄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네요ㅋㅋ
▸ 좋은 그림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도대체 좋은 그림이란 어떤 것인가요?“
CD님이 다소 뚱딴지 같지만 모두가 의문을 가지고 있는 질문을 툭 던집니다.
이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동시다발적으로 회원들의 입에서 터져나온 정답은 “비싼 그림!”ㅋㅋㅋㅋㅋ
지성(!)과 교양(!)을 갖춘 우리 독토회원들의 입에서 이런 속물적인 답이 나오다니...
개그 답변을 뒤로 하고 토론이 불을 뿜습니다.
거장들의 그림이 걸린 세계 유수의 미술관을 다 섭렵한 선정위원장님 왈 “이론이나 배경지식 다 필요 없고, 그냥 눈으로 보는 순간 딱 좋은 그림인지 별로인 그림인지 보인다!”
하지만 이건 외계인의 분류법이니, 이같은 분류법에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는 대다수 지구인들의 다른 의견들이 연이어 쏟아집니다.
"미술 평론가들이 액자 뒤에서 궁시렁거리는 해석들을 다 배제하고, 순수하게 각자 개인의 취향에 맞는 그림이 최고가 아닐까요?" 라는 취향 존중파..
"결국 예술은 소통이다. 그 시대의 모순을 지적하든,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주든, 그 그림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내 마음에 '확!' 와닿는 그림이 가장 좋은 그림이다."는 메시지 공감파...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주옥같은 답변들이었지만, 여전히 記者에게 미술은 정말 해독 불가의 난수표같네요.
▸ 광고와 선망, 그리고 부자의 방정식
이야기는 책의 후반부인 '현대의 광고'로 이어졌습니다. 존 버거는 현대의 광고가 과거 유화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말합니다. 유화가 소유자의 부를 확인시켜 주었다면, 광고는 대중에게 "이것을 사면 당신은 타인의 선망을 받는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환상을 팔지요.
여기서 아주 흥미로운 화두가 던져졌습니다.
광고는 타인의 선망을 먹고 사는데, 그렇다면 이미 모든 것을 가진 부자들에게는 광고가 효과가 없을까요?
설왕설래가 이어지는데, 나는 부자가 되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는게 정답 아닐까요ㅋㅋㅋ
▸ 마지막 수수께끼: 발터 벤야민과 존 버거의 차이
토론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JI님께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이 책을 보면 독일의 사상가 발터 벤야민의 이론(특히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 자주 언급되고 거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데, 그렇다면 벤야민과 존 버거의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인가요?"
파시즘에 대한 트라우마가 컸던 벤야민에 비해 그로부터 조금 자유로워졌던 존 버거의 시대적 배경을 비롯해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오갔는데요.
지배계급의 신비주의에 갇혀있던 예술이 복제기술로 인해 대중의 손으로 넘어왔다며 비교적 낙관적이고 혁명적인 기대를 하였던 벤야민에 반해, 존 버거는 복제된 이미지들이 소비주의 광고로 둔갑해 사람들에게 결핍을 심고 자본에 종속시키고 있다는 비판적 시각을 가진 점에서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닐
까요?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
우리가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던 시선의 권력 구조를 깨닫게 해 준 존 버거의 텍스트, 그리고 그것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준 독토 회원들의 영양가 가득한 토론 덕분에 이번 달도 우리의 영혼이 한 뼘 더 자란 것 같습니다.
오늘 처음 참석하신 KH님 환영합니다!
지각 취재로 픽션과 논픽션의 비빔밥이 되어 버린 독토 후기에 깊이 사죄드리며, 다음달 토마스 헤더윅의 ‘더 인간적인 건축’과 함께 만나요~
*참석: 강ㅊㅇ, 김ㅇㄱ, 김ㅇㅂ, 박ㅇㅈ, 심ㄱㅈ, 어ㅅㅂ, 윤ㅂㅎ, 정ㅇㅎ, 최ㄴㄹ, 최ㄷㅇ, 하ㅈㅁ, 구ㅎㄱ(새싹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