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교도를 핍박한 메리(Mary I)여왕
16세기 영국을 통치한 메리는 헨리(Henry) 8 세와 첫번째 부인 캐더린(Katherine of Aragon)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그러나 캐더린이 아들을 낳지 못하자, 헨리8세가 후계자를 얻으려 앤(Anne of Boleyn)과 다시 결혼함으로써 캐더린과의 결혼을 무효화시킨다. 그 결과로 캐더린의 딸, 메리는 사생아로 전락된다. 그 때부터 아마 메리는 약 20여년간 억울함과 분노로 원한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1553년 드디어 메리는 여왕으로 등극하면서, 신교도들을 핍박하며, 공포의 통치자가 되었다. 약 4년 몇 개월 통치기간 동안, 신교도 276명을 무참히 처형시킨다. 그녀의 박해로 그녀는 “피의 메리”(Bloody Mary)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화형시키면서 그들에게 고통을 더해 주려고 일부러 젖은 장작을 사용하여 몇 시간씩 타게 했던 것이다.
1955년 신교도 75명이 영국 각 처에서 화형에 던져졌다. 성경 번역가 존 로저스(John Rogers)도 런던에서 화형되었고, 감독 휴 래티머(Hugh Latimer of Worcester)와 니콜라스 리들리(Nicholas Ridley of London)도 순교를 당했다.
불꽃이 그들의 몸을 불사를 때, 래티머는 “이날은 우리가 영국에 하나님의 은혜로 횃불을 지르는 것이요, 이 불은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This day we shall light such a candle, by God’s grace, in England, as I trust shall never be put out.)’하며 순교했다.
주목할 또 한사람은, 대감독 크랜머(Thomas Cranmer of Canterbury)인데, 크랜머는 헨리 8세가 앤과 결혼하고자 할 때, 캐더린과의 결혼은 애초부터 무효라 주장한 사람이다.
성서적 근거(레위기 20:21)를 들어 그 결혼을 무효화시키는데 앞장섰던 사람이다. 캐더린은 원래 헨리 8세의 형 아더(Prince of Wales)의 부인이였는데, 아더가 죽자, 헨리 8세의 부인이 되었다.
메리는 크랜머가 얼마나 미웠던지 크랜머 친구들의 화형을 보게 한다. 마음이 약했던 크랜머는 6번 번복하다가 마지막에는 순교한다. 그 때 약 신교도 8천명이 바젤, 쥬리히로 망명을 떠났다.
표면상으로는 메리가 구교도(카토릭신자)로 그에 반대하는 신교도들을 악랄하게 핍박하며 죽였던 것이지만, 실제로는 자기에게 상처준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은 없애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과거의 상처로 인해 사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많은 생명을 앗아간 잔인한 여왕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우리들은 메리와 같은 실수를 누구에게도 저지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특히 정사(正邪)에 밝아야 할 목회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고, 투명하게 일들을 처리 해야 할 것이다. 더우기 한 인간에 관한 일을 다룰 때에는 더욱 그럴 것이다.
공(公)과 사(私)를 구분할 줄 아는 통찰력과 분별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자기 마음에 안 맞고, 자기와 생각, 가치관, 세계관이 다르다고 분명한 근거도 없는데, 매도하고, 상처 주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검 증되지 않은 개인의 말을 듣고, 사사로운 감정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은, 일의 대소사를 막론하고, 정당한(legitimate) 처사가 아닐 것이다. 한 마리 잃은 양을 찾아야 할 목회자들이, 오히려 울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양들을 울 밖으로 내쫓는 듯한 일에 일익을 한다면, 하나님께 두려운 일이다.
새해에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서로 격려하며, 칭찬하며, 덕을 세우는 믿음의 공동체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대양 깊숙이 흐르는 물 같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자기 처한 자리에서 비록 적은 능력이지만, 끝까지 충성하면서, 누구에게도 당당하고, 떳떳한 하나님께 인정받는 목회자가 되고 싶다
댓글 0공유하기
16세기 영국을 통치한 메리는 헨리(Henry) 8 세와 첫번째 부인 캐더린(Katherine of Aragon)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그러나 캐더린이 아들을 낳지 못하자, 헨리8세가 후계자를 얻으려 앤(Anne of Boleyn)과 다시 결혼함으로써 캐더린과의 결혼을 무효화시킨다. 그 결과로 캐더린의 딸, 메리는 사생아로 전락된다. 그 때부터 아마 메리는 약 20여년간 억울함과 분노로 원한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1553년 드디어 메리는 여왕으로 등극하면서, 신교도들을 핍박하며, 공포의 통치자가 되었다. 약 4년 몇 개월 통치기간 동안, 신교도 276명을 무참히 처형시킨다. 그녀의 박해로 그녀는 “피의 메리”(Bloody Mary)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화형시키면서 그들에게 고통을 더해 주려고 일부러 젖은 장작을 사용하여 몇 시간씩 타게 했던 것이다.
1955년 신교도 75명이 영국 각 처에서 화형에 던져졌다. 성경 번역가 존 로저스(John Rogers)도 런던에서 화형되었고, 감독 휴 래티머(Hugh Latimer of Worcester)와 니콜라스 리들리(Nicholas Ridley of London)도 순교를 당했다.
불꽃이 그들의 몸을 불사를 때, 래티머는 “이날은 우리가 영국에 하나님의 은혜로 횃불을 지르는 것이요, 이 불은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This day we shall light such a candle, by God’s grace, in England, as I trust shall never be put out.)’하며 순교했다.
주목할 또 한사람은, 대감독 크랜머(Thomas Cranmer of Canterbury)인데, 크랜머는 헨리 8세가 앤과 결혼하고자 할 때, 캐더린과의 결혼은 애초부터 무효라 주장한 사람이다.
성서적 근거(레위기 20:21)를 들어 그 결혼을 무효화시키는데 앞장섰던 사람이다. 캐더린은 원래 헨리 8세의 형 아더(Prince of Wales)의 부인이였는데, 아더가 죽자, 헨리 8세의 부인이 되었다.
메리는 크랜머가 얼마나 미웠던지 크랜머 친구들의 화형을 보게 한다. 마음이 약했던 크랜머는 6번 번복하다가 마지막에는 순교한다. 그 때 약 신교도 8천명이 바젤, 쥬리히로 망명을 떠났다.
표면상으로는 메리가 구교도(카토릭신자)로 그에 반대하는 신교도들을 악랄하게 핍박하며 죽였던 것이지만, 실제로는 자기에게 상처준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은 없애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과거의 상처로 인해 사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많은 생명을 앗아간 잔인한 여왕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우리들은 메리와 같은 실수를 누구에게도 저지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특히 정사(正邪)에 밝아야 할 목회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고, 투명하게 일들을 처리 해야 할 것이다. 더우기 한 인간에 관한 일을 다룰 때에는 더욱 그럴 것이다.
공(公)과 사(私)를 구분할 줄 아는 통찰력과 분별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자기 마음에 안 맞고, 자기와 생각, 가치관, 세계관이 다르다고 분명한 근거도 없는데, 매도하고, 상처 주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검 증되지 않은 개인의 말을 듣고, 사사로운 감정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은, 일의 대소사를 막론하고, 정당한(legitimate) 처사가 아닐 것이다. 한 마리 잃은 양을 찾아야 할 목회자들이, 오히려 울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양들을 울 밖으로 내쫓는 듯한 일에 일익을 한다면, 하나님께 두려운 일이다.
새해에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서로 격려하며, 칭찬하며, 덕을 세우는 믿음의 공동체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대양 깊숙이 흐르는 물 같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자기 처한 자리에서 비록 적은 능력이지만, 끝까지 충성하면서, 누구에게도 당당하고, 떳떳한 하나님께 인정받는 목회자가 되고 싶다
댓글 0공유하기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