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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로 운

작성자박승학|작성시간26.06.06|조회수19 목록 댓글 0

보배로운 사람 (고후 4:7-11)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보배로운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보배로운 사람”이란 어떤사람일까요?
애굽의 7년 흉년에서 건져내고 가족 70인을 구원한 요셉, 혹은 430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생활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해 낸 모세. 본문의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 바울은 보수 유대교인으로 기독교를 박해하러 가다가 다메섹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회개하여 전 생애를 그리스도의 복음전도와 14권의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바울의 업적은 우리 기독교를 진리의 초석에 세우려고 보내신 보배로운 일군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그 모본이십니다.

보배로운 사람이란?
첫째. 예수를 중심에 모신 사람입니다.
7절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여기 보배는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질그릇은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이 말씀 속에는 멸망할 죄인임을 깨달아 예수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음을 깨달아 예수를 나의 왕으로 모시는 믿음입니다. 이런 자각이 없이는 예수님을 바로 모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계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 말씀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하신 말씀입니다. 자신들은 나름대로 잘 믿는다고 착각했지만 주님이 보실 때는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모시면 주님은 밖에 계실 수밖에 없습니다.
골2:3에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예수님에게 온갖 보배가 가득합니다. 예수님이 보배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주로 믿는 사람은 보배를 품은 사람입니다. 예수를 품어야 합니다. 잠4:8에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세상의 모든 것을 가졌어도 예수 없으면 검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빌3:7-9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찬송가 94장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우리가 진정 이 찬송과 같이 고백할 수 있다면 그는 예수를 중심에 모신 사람입니다. 고후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천국 비유 중에 밭에 감취인 보화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밭의 보화를 얻기 위해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산 것처럼 세상에 맘 빼앗기지 않고 내 마음의 전부를 바쳐야 비로소 예수님을 온전히 모실 수 있습니다. 물을 담으면 물그릇이고 보배를 담으면 보배그릇입니다. 보배되신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 보배로운 사람입니다.

2.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8-9절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 하였습니다. 예수를 보배로 모신 사람이 누리는 승리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성령이 충만하면 어떤 어려움을 당해도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또 달리 표현하면 기도하는 사람이 보배로운 사람입니다. 기도할 때 성령 충만함을 받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이기는 성령이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곳에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힘이 센 사람은 무거운 것도 무겁게 느껴지지 않고, 몸이 따뜻한 사람은 추워도 춥게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다 이겨집니다. 이걸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갈5:22-23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했습니다.
바벨론에서 금신상 앞에 엎드리지 않았다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고발하여 풀무불에 들어갈 때 그 뜨거운 불도 그들을 태우지 못했습니다. 사탄도 음부의 권세도 우리를 이기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자나 깨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그 가정의 보배요, 그가 다니는 그 교회의 보배요, 그가 소속한 나라의 보배입니다. 이스라엘의 방패 엘리사는 나라의 보배였습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기도 없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벧전5:8-9)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한 열심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성령 충만을 받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쓰실 보배로운 사람이 됩니다. 기도의 불을 일으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주님의 고난을 피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10절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당시 로마의 사형 가운데는 사형수에게 죽은 시체를 묶어 함께 썩어져 죽게 했습니다. 그 독한 악취와 시체의 물이 사형수를 썩게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고난의 예수님을 생각하며 우리도 죽어지자는 말씀입니다. 죽는다는 것은 잘 길들여진 말과 같이 하나님을 믿고 감사하고 순종하고 충성하는 것입니다. 믿고 순종하는 것이 죽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죽기까지 기쁘시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12:2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할 부분이 있고 본받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기 위해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 모본을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고난의 주님을 묵상하던 성 프란시스의 손과 발과 옆구리에 고난의 상처가 생겼습니다. 바울도 갈6:17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했습니다. 주님을 고난을 묵상하며 따라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신앙 가운데서도 최고의 신앙입니다.

목숨을 드리는 것도 순교이지만 매일 매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도 순교입니다. 그래서 롬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님처럼 보배로운 사람이 되게 하시려고 예수님을 보내셨고 성령님을 주셨습니다. 보배 되신 예수님을 온전히 믿고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늘 기도함으로 성령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자기 십자가,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가장 보배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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