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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 (39) 헌법재판소 판결: '신상의 말류(申商之末流)'가 아닌지?

작성자간호윤|작성시간23.08.01|조회수13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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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 (39) 헌법재판소 판결: '신상의 말류(申商之末流)'가 아닌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민의 기본권을 지켜 준다는 헌법재판소 홈페이지 머리말이다. 그러나 '헌재, 이상민 탄핵 기각!' 헌법재판소에서 선고한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 심판 사건의 선고 재판 결과이다. 그것도 9명 전원 만장일치이다. 2022년 10·29 이태원 참사가 있은 지 269일 만이요, 올해 2월8일 국회가 이 장관의 탄핵 소추를 의결한 날로부터 167일 만이다. 부실 대응 책임이 있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국회의 탄핵심판 청구가 기각됐다. 참사 관련 구속 피의자들이 모두 보석으로 석방된 상황에서 재난관리의 컨트롤 타워인 이 장관까지 책임에서 벗어났다.

이유는 “재난기관 특정되지 않아 책임 없어” “헌법과 법률의 관점에서 피청구인(이상민 장관)이 재난안전법과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해 국민을 보호할 헌법상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보기 어렵다.” 또 이 장관의 참사 관련 발언에 대해서도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재난안전관리 행정 기능이 훼손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이다. 국회가 지적한 헌법과 법률상 문제에 대해 헌재는 대부분 인정하지 않았다. 법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다. 국가 안전상의 문제로 피해자 159명이 주검이 되었는데,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한다. 분명한 태업(怠業)에 면죄부를 준 셈이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 분명 법과 현실의 괴리요, 국민 법 감정과도 배치되는 판결이다. 국민의 기본권을 지켜준다는 대한민국 헌법재판소가 그렇게 결정했으니 5,155만 중, 단 한 명도 이를 거부하지 못한다. 그렇게 법 앞에 주권자인 국민은 없었다. 법치주의 국가이기에 그렇다.

이청준(李淸俊,1939~2008) 선생의 <벌레 이야기>가 떠오른다. <벌레 이야기>는 영화 <밀양>의 원작이기도 하다. 내용은 이렇다. 「마흔 살에 얻은 늦둥이, 다리 한쪽이 불편한 알암이가 유일하게 좋아하던 주산학원을 다녀오다 사라진다. 애태우는 알암이 엄마에게 이웃인 김 집사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원하면 돌아온다고 교회로 인도한다. 하지만 알암이는 사체로 발견된다. 자리에 누운 알암이 엄마에게 다시 김 집사가 범인이라도 찾자며 기도한다. 범인은 뜻밖에도 알암이가 그렇게 좋아하던 주산 학원의 원장이었다. 원장은 사형수가 되고 알암이 엄마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원장에 대한 원한과 저주로 나날을 보낸다.

김 집사는 다시 찾아와 하나님을 믿고 범인을 용서하자고 달랜다. 그래야 죽은 알암이도 좋은 곳으로 가지 않겠느냐고. 알암이 엄마는 결국 원장을 용서하기 위해 교도소로 면회를 간다. 하지만 사형수인 원장의 얼굴은 의외로 평온하다. 원장은 그동안 하나님이라는 신앙을 받아들였단다. 알암이 엄마는 절규한다. “내가 그를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먼저 용서합니까. 그럴 권리는 주님에게도 있을 수 없어요.”라며.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릴 즈음, 알암이 엄마는 라디오에서 '원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용서하였기에 지금 너무나 편안한 마음으로 하늘나라로 가지만 이 세상에 남아있을 알암이 엄마가 걱정'이라는 방송을 듣는다. 알암이 엄마는 고통과 절망감을 이기지 못하여 자살하고 만다.」

이 <벌레 이야기>는 1981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이윤상 군 유괴 살인 사건이 실제 모델이다. 제자를 유괴해서 살해한 주영형은 사형 집행 전에 이런 유언을 남겼다. “나는 하나님의 품에 안겨 평화로운 마음으로 떠나가며, 그 자비가 희생자와 가족에게도 베풀어지기를 빌겠다.” 이 말을 듣고 이청준 선생은 '참혹한 사건보다 더 충격'을 받아 이 소설을 썼다. 이번 판결을 보며 이태원 참사로 주검이 되어 돌아 온 159명의 가족들은 또 한 번 절망적인 심정일 것이다. 분명 국가의 방임이요, 직무 유기인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물을 곳 없다는 선고를 보는 국민의 심정도 참담하다.

법률 〈춘향전〉도 그렇다. 〈춘향전〉은 연애 소설이지만 그 속엔 법이 도사리고 있다. 중세의 법으로 보자면 피고인 천민 춘향에 대한 재판기록이다. 춘향은 반인반물(半人半物)이기에 변 사또는 관장의 명에 거역하고 조롱했다는 죄목으로 '죄당만사(罪當萬死,만 번 죽어 마땅하다)'라는 판결을 내린다. <법률 춘향전>이라면 그렇게 춘향은 이승을 하직했고 이 법이 조선 전제정치의 방패 구실을 하였다. “암행어사 출도야!”는 그때나 이때나 소설에서나 가능할 뿐이다.

이런 법을 비웃는 말이 '신상의 말류(申商之末流, 신불해와 상앙이 존숭한 법은 말류다)'이다. '신상(申商)'은 신불해(申不害)와 상앙(商鞅)의 병칭으로 '비앙(非鞅)'이라고도 한다. 신불해는 전국시대 한(韓)의 재상으로서 형명(刑名,형벌 이름)에 근거해 15년간 다스렸고 상앙 역시 전국 시대 진(秦)의 재상으로서 20년간 엄격한 법치주의 정치를 행하였다. 그러나 상앙은 그의 법이 너무 각박한 탓으로 사람들의 원망을 사서 끝내 극형에 처해졌다. 또 한 명, 법을 존숭한 법가(法家)로서 독살 당한 한비자(韓非子)가 있다. 그는 신불해, 상앙과 함께 법을 모질게 집행하여 '참각(慘刻, 사납고 독하다)'이라 하였다. '신상의 말류'는 이렇게 나왔다.

『당률(唐律)』 「명례(名例)」에 “형벌[법]의 목적은 형벌[법]을 쓰지 않게 하는 데 있다(以刑止刑)” 하였다. 즉 법을 집행하는 목적은 미연에 범죄를 방지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헌재의 판결이 우리에게 건네는 것은 '법 돌아가다가 외돌아가는 세상'이란 속담이다. 법대로 하면 잘 되는 세상 같지만 오히려 그릇된 방향으로 간다는 뜻이다. 옳은 것과 그른 것이 뒤죽박죽이 되어 갈피를 못 잡는다는 말이다. 이번 헌재 판결이 법의 목적에 부합하는 지? 우리네 삶의 갈피를 잡아 주는지? 신상의 말류는 아닌지? 묻고 싶다. 로마 법학자 울피아누스(Ulpianus)의 법에 대한 정의로 끝맺는다. 그는 약 280책에 이르는 방대한 저서를 남겼으며 전 세계 법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법(jus)'은 '정의(iustitia)'에서 나왔다. 법이란 선(善)과 공평(公平:정의)의 기술이다(Jus est ars boni et aequi).”

▲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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