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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152 성전(聖典)의 거울 앞에선 이스라엘: 『탈무드』와 ‘소유’의 논리

작성자간호윤|작성시간26.04.20|조회수16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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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 52 - 한겨레:온

유대교의 정신적 성전이요, 존재 이유라고도 하는 『탈무드』, 이 책은 ‘사랑’, ‘자비’, ‘나눔’, ‘이타심’ 등을 최상위 가치로 두는 바람직한 인생을 위한 처방전으로 유대인들은 이를 암송하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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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152

성전(聖典)의 거울 앞에선 이스라엘: 『탈무드』와 ‘소유’의 논리

유대교의 정신적 성전이요, 존재 이유라고도 하는 『탈무드』, 이 책은 ‘사랑’, ‘자비’, ‘나눔’, ‘이타심’ 등을 최상위 가치로 두는 바람직한 인생을 위한 처방전으로 유대인들은 이를 암송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현 지도부가 이란과 그 이웃나라들에게 보여주는 군사적 폭력성은 이러한 고결한 가르침과 상충하는 측면을 드러낸다. 정당한 이유 없이 타인의 생명을 해치는 행위는 곧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파괴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탈무드』가 인간이 지향해야 할 고도의 도덕적 지혜라면, 오늘날 이스라엘 지도부에게 그것은 현실적 목적을 위해 선택적으로 활용되는 도구적 텍스트로 전락하고 있다. 2천 년 디아스포라의 고난 속에서 공동체를 지탱해 온 법의 근간이자 생존의 지혜였던 『탈무드』가 지금은 자신들의 안보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한 ‘선민사상’과 ‘보복의 율법’으로 해석되는 경향까지 나타난다. 성전의 가르침을 폭력 정당화의 방패로 삼는 태도는 유대 정신의 본질과 뚜렷한 괴리를 드러낸다.

『탈무드』를 통해 본 네타냐후의 이스라엘은 심각한 윤리적 긴장을 보인다. 여기서 『탈무드』는 그들의 폭력을 비추는 가장 날카로운 거울이 된다. 이스라엘 지도부는 ‘안보’와 ‘생존’이라는 세속적 욕망을 앞세우며 성전의 가르침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성전이 가르치는 보편적 인류애와 그들의 파괴적 행위 사이의 간극,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저지르는 이율배반의 실체가 아닐까.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대인 인문주의 철학자 에리히 젤리히만 프롬(Erich Seligmann Fromm,1900~1980)은 그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To Have or to Be)』에서 현대 사회의 병폐를 ‘소유 양식’의 지배로 진단했다. 소유 양식에 매몰된 인간은 타인을 ‘나의 안녕을 위해 관리하거나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 지도부의 전쟁 논리는 ‘소유’ 중심적 사고의 특징을 강하게 드러낸다. 그들에게 영토와 안보는 반드시 ‘소유’해야 할 대상이며, 이를 위협하는 존재는 ‘제거’하거나 복속시켜야 할 객체로 전락한다.

프롬이 『도전받는 절대자(You Shall Be as Gods)』에서 지적했듯, 신은 ‘존재(Being)’ 그 자체이지 ‘소유(Having)’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지도부는 신의 이름으로 국가권력을 우상화하고 그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생명을 파괴하고 있다. 이는 프롬이 가장 경계한, 신을 욕망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극단적 우상숭배의 변주다.

『탈무드』 속 솔로몬의 재판은 오늘날 네타냐후에게 준엄한 질문을 던진다. 아기를 반으로 나누어 주라는 명령 앞에, 진짜 어머니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소유권을 포기했다.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 지도부는 ‘국가’라는 소유의 명분 아래, 아기를 반으로 가르려 칼을 휘두르는 격이다.

진정한 지도자라면 자신의 승리보다 생명의 보존을 우선시해야 한다. 생명을 파괴하면서 얻은 승리가 과연 그들이 지키려 했던 ‘약속의 땅’의 가치와 부합하는가? 『탈무드』에는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자는 온 세상을 구하는 것과 같다”는 구절이 있다. 이 가르침을 따른다면, 무고한 이웃의 생명을 앗아가는 폭력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현 지도부는 ‘안보’라는 미명하에 군사력을 행사하며, 타인의 생명권을 상대적으로 경시하는 위험한 논리를 정당화하고 있다.

자국민의 생명은 신성시하면서도, 상대방의 민간인 피해는 ‘부수적 손실’로 치부하는 태도는 『탈무드』가 경계하는 ‘오만한 정의’에 불과하다. 더욱이 반복되는 보복은 상대의 증오를 키우고, 또다시 이스라엘의 불안을 야기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평화로운 해결을 강조하는 『탈무드』의 지혜와는 철저히 배치되는, 이성보다 파괴가 앞서는 행태라 하겠다.

『탈무드』를 온 국민이 암송한다 해도, 실행하지 않으면 그 지혜는 허상에 불과하다. 이제 묻고자 한다. “당신들이 휘두르는 칼날 끝에, 신이 부여한 생명의 무게가 과연 남아 있는가?”라고. 힘으로 굴복시킨 평화는 언제든 더 큰 폭발을 예고하는 화약고다. 이스라엘은 이제 『탈무드』라는 성전(聖典,신앙의 최고 법전)의 거울 앞에 서서, ‘소유’의 논리를 버리고 ‘존재’의 길로 돌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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