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158신세계 그룹 정용진 회장의 사과문에 대하여
휴헌 간호윤 ・ 2026. 5. 28. 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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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158
신세계그룹 정용진 회장의 사과문에 대하여
글[文章]은 사람의 마음을 담는 그릇이요, 그 사람의 사유가 도달한 깊이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그래 글을 ‘서즉기인(書卽其人,글은 곧 그 사람이다)’이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특히나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사과문(謝過文)’은 그 어떤 글보다 정직해야 하며, 얄팍한 ‘수사(修辭)’나 책임 회피의 ‘계산’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적 비극을 조롱거리로 전락시킨 스타벅스코리아의 이른바 ‘5·18 탱크데이’와 ‘책상에 탁!’ 마케팅 논란은 많은 국민에게 큰 충격과 실망을 안겼다. 1980년 광주의 비극적 유혈 진압을 연상시키는 ‘탱크’라는 단어와,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의 잔혹한 은폐 문구인 ‘책상에 탁!’을 공식 이벤트에 결합한 행위는 단순한 마케팅 리스크가 아닌 민주주의 역사에 대한 모독이었기 때문이다.
사태의 엄중함을 인식한 듯, 신세계그룹 정용진 회장은 직접 카메라 앞에 서서 고개를 숙였다. 회장 취임 이후 첫 대면 사과이자 세 번이나 허리를 굽힌 파격적인 행보였다. 그러나 그가 낭독한 사과문의 실체와 회견장을 빠져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우리는 진정한 사과의 의미를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그것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참회록이었는가, 아니면 성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꼼수로 기획된 위기관리 매뉴얼의 낭독이었는가.
이번 사과문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은 바로 후반부 구절이다. 정 회장은 “지금은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이 더 필요한 시기”라며, “각자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 더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같다”고 말했다. 이 문장은 언뜻 보면 사회적 통합을 도모하는 숭고한 메시지처럼 읽힌다. 그러나 사과문이라는 맥락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이 수사는 심각한 논리적 왜곡이자 본질 흐리기가 된다.
‘생각은 다를 수 있다’는 표현은 가치관의 다양성이나 정책적 이견을 논할 때 쓰는 말이다. 국가 권력에 의해 무고한 시민들이 학살당한 5·18 민주화운동과 청년이 고문으로 숨진 사건은 ‘다양한 생각’의 영역이 아닌, 인류 보편의 인권과 정의에 관한 문제다. 이를 단순한 견해 차이로 치부하는 순간, 역사적 범죄와 이를 비하한 잘못은 한낱 ‘서로 다른 의견’ 중 하나로 축소된다.
또한 ‘함께 앞으로 나아가자’는 제안은 가해의 책임을 지닌 주체가 피해자와 대중에게 요구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진정한 사과는 피해자가 그 진정성을 인정하고 “이제 함께 가자”고 손을 내밀 때 비로소 완성되는 법이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사과문 말미에 슬그머니 화합의 주도권을 쥐려는 태도는, 반성의 주체와 객체를 전도시키는 행태이다.
사과의 진정성은 텍스트 자체뿐만 아니라 그 글이 발표되는 과정과 태도를 통해서도 입증된다. 이번 회견에서 정 회장은 약 5분간 준비된 사과문을 읽은 뒤, 기자들의 질문을 일절 받지 않은 채 회견장을 빠져나갔다. 질문과 답변이 생략된 사죄는 사과가 아니라 ‘일방적 통보’에 불과하다. 기업의 최고 결정권자가 대중 앞에 서는 이유는 단순히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함이 아니라, 대중이 품은 의구심과 분노에 성실히 답하겠다는 책임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실제로 신세계 측은 실무진의 휴대전화 제출 거부나 서버 보존 기간 문제 등을 이유로 ‘고의성을 입증할 자료를 찾지 못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국민이 가장 궁금해하고 분노하는 핵심—어떻게 대기업의 결재 라인에서 이런 부적절한 문구가 여과 없이 통과되었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문답을 피한 채 퇴장한 뒷모습은, 오늘의 사과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일회성 퍼포먼스’로 보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도덕적 가치에서 허물을 고치는 핵심은 ‘개과천선(改過遷善)’에 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자신의 잘못을 온전히 직시하는 성(誠), 즉 지극한 정성과 참된 마음이다. 진짜 사과문에는 화려한 미사여구나 대중을 훈계하려는 태도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진짜 사과문이 담아야 할 세 가지 철칙이 있다. 첫째가 철저한 자기 직시이다.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거나 ‘생각이 다르다’는 식의 자기방어 기제를 완벽히 제거하고, 발생한 과오의 본질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다음이 피해자 중심의 서사이다. 사과의 목적은 나의 마음이 편해지거나 기업의 이미지를 쇄신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 입은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데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열린 소통과 책임이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 쏟아지는 날 선 비판과 질문을 정면으로 받아내고, 그에 따르는 물질적·사회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태도를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
정용진 회장의 이번 사과문은 ‘내용의 일관성’과 ‘태도의 진정성’에서 깊은 괴리를 보여준다. 글[사과문]의 완성은 사과문 읽기를 마칠 때가 아니라, 그 글을 받아 든 이들의 상처가 아물 때 비로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의 과거 ‘멸공’ 발언 등을 함께 떠올려 보면, 새삼 ‘사람이 되고서야 글이 있다’라는 우리네 속담도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