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159 ‘낙타’의 관성과 ‘친고(親古)’에 갇힌 보수 야당, 연암과 니체의 경고를 읽지 못했
작성자간호윤작성시간26.06.09조회수17 목록 댓글 0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159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159
‘낙타’의 관성과 ‘친고(親古)’에 갇힌 보수 야당, 연암과 니체의 경고
“민주 11곳 국민의힘 1곳 광역단체장 우세!”(최종: 민주12곳 국힘4곳으로 바뀌었어도 결과는 동일) 2026년 6월 3일 지방선거에서 지상파 3사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는 순간, 대중이 목격한 것은 단순한 정당 간의 승패가 아니었다. 거대 양당 체제이기에 그 결과가 자못 씁쓸하면서도 준엄하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야당인 국민의힘이 마주한 참패의 성적표는 단순한 시·도지사 자리의 상실이나 일시적인 민심의 이반이 아니다. 그것은 거대한 시대적 전환기와 맞물린 민심의 질적 변화를 전혀 읽어내지 못한 ‘시대 인식의 둔감함’과, 대안 정당으로서 보여주었어야 할 ‘실질(實質)의 상실’이 불러온 필연적 결과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실존철학과 연암 박지원의 실학사상을 교차하여 이 정치적 파국을 들여다보면, 이번 선거의 본질이 한눈에 드러난다. 이번 선거는 과거의 낡은 관습과 의무를 묵묵히 짊어지던 ‘낙타’와 같았던 대중이, 민생을 외면한 채 명분과 기득권이라는 껍데기만 붙들고 있는 보수 야당을 향해 단호히 거부권을 행사한 준엄한 심판이었다.(잠정 투표율도 4년 전보다 10.1% 높았다.)
니체는 그의 저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의 정신이 세 단계를 거쳐 진화한다고 보았다. 그 첫 번째 단계가 바로 ‘낙타’다. 낙타는 “당신은 해야 한다”는 외부의 무거운 명령과 사회적 관습, 전통적 도덕의 짐을 군말 없이 짊어진 채 사막을 걷는 순종적 존재다. 그동안 국민의힘(보수 야당)의 전통적 지지 기반이나 일부 유권자들은 어쩌면 일종의 낙타와 같은 인내를 보여왔다. 거친 풍파 속에서도 ‘정권 견제론’이라는 당위적 명분, 혹은 ‘과거의 가치관과 질서를 지켜내야 한다’는 관성에 이끌려 묵묵히 표를 던져왔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의 비극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그들은 대중의 묵묵한 인내와 정부 여당에 대한 불만을 자신들에 대한 반사이익이자 영원한 지지로 오판했다. 여전히 과거의 성공 방정식과 철 지난 네거티브 방식에 취해, 낡은 이념적 잣대와 진영 논리라는 무거운 짐을 대중에게 당연하다는 듯 지우려 했다. 시대가 변하고 민심의 요구가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보수 야당은 대안 정당으로서의 비전을 보여주는 대신 과거의 문법으로 대중에게 감정적 호소를 하려 들었다.
이러한 야당의 태도는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그토록 매섭게 혐오했던 당대 사대부들의 ‘친고(親古, 옛것에만 매달려 안주함)’ 및 ‘교조주의적(敎條主義的)’ 태도와 정확히 닮아있다. 연암은 당시 동아시아 질서의 변화와 청나라의 발전된 문물을 외면한 채, 껍데기만 남은 성리학적 명분론(名分論)과 북벌론(北伐論)의 허상에 갇혀 있던 사대부들을 향해 날 선 비판을 퍼부었다. 그들이 외치는 도학(道學)과 명분은 당장 굶주리는 백성들의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공리공론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보여준 가장 치명적인 패착은 선거 전면에 내세운 인물들이 대부분 과거의 정치 자산에 의존하거나 낡은 정치 문법에 익숙한 인물들이었다는 점이다. 새로운 시대의 비전을 제시해야 할 자리에 케케묵은 인물들을 다시 불러 세운 모습은, 변하는 현실을 보지 못하고 조정의 낡은 요직을 수십 년간 갈라 먹던 조선 후기 척신(戚臣)과 권신(權臣)들의 나태함과 유사하다. 인적 쇄신 없는 보수의 외침은 대중에게 그저 기득권을 지키려는 집착으로 비쳤을 뿐이다. 여기서 상대적으로 개혁적 목소리를 내던 인물들마저 정치 전면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지금 세계는 인공지능(AI) 혁명과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 중동발 유가 급등 등 미증유의 대전환기를 지나고 있다. 그러나 야당은 여당의 실정(失政)을 합리적으로 견제하고 민생의 구체적이고 생생한 고통을 해결하는 실천적 대안을 제시하는 대신, 구시대 인물들의 철 지난 이념 공세와 감정에 호소하는 ‘오래된 유령’을 불러내기에 바빴다.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국가의 기틀을 이롭게 한다는 ‘이용후생(利用厚生)’의 실학 정신은 온데간데없고, 당내 주도권 싸움과 정치적 수사만 무성했던 셈이다. 백성들이 흙바닥에서 신음하고 있는데도 그들은 명분과 예법만 논했다. 감나무 아래 입만 벌리고 있던 조선 후기 사대부들의 망령이 21세기 대한민국 야당의 모습 위에 겹쳐 보인다면 과장일까.
그러나 민심은 영원히 무력한 낙타로 머물지 않으며, 실질 없는 명분과 구태의연한 인물에 속지 않는다. 니체가 말한 정신의 두 번째 단계, 즉 기존의 가치를 파괴하고 자유를 쟁취하려는 ‘사자’의 정신이 마침내 이번 선거판 위로 터져 나왔다. 대중은 “더 이상 무조건적인 인내와 복종은 없다”고 선언했다. 여당의 독주를 견제하라는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후생(厚生)의 대안조차 제시하지 못한 야당을 향해 민심은 사자의 이빨을 드러낸 것이다. 연암의 표현을 빌리자면, 겉모습만 그럴듯하게 치장되어 있고 알맹이는 텅 비어 있는 ‘장식용 벽돌’ 같은 정치를 유권자들이 과감하게 부수어버린 격이다. 민심은 이번 선거를 통해 야당 역시 단순한 반사이익의 수혜자가 아니라, 엄연한 심판의 대상임을 증명해 냈다.
진정한 비극이자 숙제는 선거가 끝난 바로 지금부터다. 니체의 철학에서 사자는 거대한 용과 싸워 승리하고 기존의 우상을 파괴할 수는 있지만, 그 자체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지는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 사자는 오직 거부(No)의 정신일 뿐이다. 사자가 낡은 질서를 부순 폐허 위에서 진정한 미래를 열기 위해서는 결국 세 번째 단계인 ‘어린아이’로 나아가야만 한다. 선입견 없이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새로운 규칙을 스스로 만들어내며 천진난만하게 유희하는 단계다. 이것이 곧 니체가 지향한 주체적 인간상인 ‘초인(위버멘쉬)’의 상태다.
마찬가지로 연암 박지원은 옛것을 무조건 파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토대 위에서 시대를 선도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을 주장했다. 옛것을 본받되 변통할 줄 알고, 새것을 만들되 근본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연암의 가르침은 니체가 말한 ‘어린아이’의 정신과 일정한 접점을 이룬다.
▲ 제미나이 삽화
현재 승리를 거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역시, 그들이 곧바로 대안을 가진 ‘초인’의 반열에 올랐거나 ‘법고창신’의 경지에 도달한 것은 결코 아니다. 선거가 시작할 때 모든 곳에서 승리를 점쳤으나 최종 ‘민주12곳 국힘4곳’이란 민심의 무게를 뼈저리게 받아들여야 한다. 냉정하게 말해 여당은 사자가 된 대중이 야당의 무능과 구태에 분노해 터뜨린 파괴적 힘 덕분에 반사이익을 누린 측면이 크다. 정치가 허무주의(니힐리즘)에 빠지지 않고 생산적인 미래로 나아가려면, 여야를 막론하고 대중이 던진 이 파괴적 에너지를 신속하게 ‘새로운 비전 창조(창신)’와 ‘백성의 삶을 실질적으로 윤택하게 하는 정책(이용후생)’으로 전환해 내야 한다.
국민의힘이 이번 참패라는 치명적인 타격을 딛고 다시 수권 정당으로 일어설 수 있는 유일한 길 또한 여기에 있다. 과거의 도그마에 사로잡혀 대중을 낙타로 길들이려 했던 나태한 정치 방식과, 구시대 정치인들을 돌려막기 하던 인적 폐쇄성을 전면 폐기해야 한다. 뼈를 깎는 성찰을 통해 자신들의 과오와 낡은 보수의 패러다임을 스스로 부수어내는 고통스러운 투쟁을 감내해야 한다. 그리고 그 깨어진 폐허 위에서, 연암이 강조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으로 돌아가 참신한 인재들을 발굴하고, 국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정책과 가치를 유연하게 창조하는 ‘어린아이의 심성’을 회복해야 한다. 물론 이 경고는 여당에게도 그대로 해당한다.
연암은 늘 현실 속에서 답을 찾으라고 했다. 민심이 이미 등을 돌린 지금, 국민의힘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과거의 영광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다. 친고의 굴레를 벗고 법고창신의 길로 나아갈 때에만, 낙타는 사자를 거쳐 새로운 시대를 창조하는 어린아이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159|작성자 휴헌 간호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