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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161 선거관리위원회: “껍데기는 가라!”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161
선거관리위원회: “껍데기는 가라!”
대한민국 선거관리위원회의 후안무치한 행동에 대해 두 주째 글을 쓴다. 초여름의 볕이 짙어 가던 지난 일요일, 한국작가회의 부천지부 회원들과 함께 충남 부여의 백마강 기슭에 자리한 ‘신동엽’문학관을 찾았다. 문학관 마당 한 켠, 청년 신동엽(申東曄, 1930~1969)의 대형 걸개그림 앞에 서서 한참 동안 시인의 매서운 눈빛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단순히 요절한 시인의 유품을 보관하는 박물관이 아니었다. 1960년의 봄, 미완의 혁명으로 남은 4·19의 뜨거운 피가 여전히 식지 않은 채 고동치고 있는 역사적 현장이자, 가짜와 허위가 판치는 오늘날의 현실을 향해 ‘아직도 당신들은 껍데기인가?’라고 날카롭게 묻는 문학적 심판대였다.
신동엽은 5·16 군사정변이라는 거대한 폭력 앞에 4·19의 정의, 자유, 인간, 존엄, 민주주의라는 순결한 열망이 무참히 짓밟히고 군부독재의 서슬 퍼런 칼날이 온 사회를 얼어붙게 만들었을 때, 붓을 꺾는 대신 “껍데기는 가라”고 일갈했다. 그러나 그 부여에서 들리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60여 년 전 시인의 절규가 무색할 만큼 철저히 ‘껍데기’들에 의해 점령돼 버린 세상이다. 민주주의의 심장이어야 할 선거 관리 기관이 도리어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전락해 버린 오늘의 비극 앞에서는 참담함마저 든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의 민낯은 기강 해이를 넘어 국가 헌정 체제를 모독하는 수준이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라는 헌정 사상 초유의 참사를 내고도, 그들은 뒤로 나랏돈을 제 쌈짓돈처럼 쓰며 부패의 단맛을 즐겼다.
중앙선관위는 위원장(대법관 겸임)을 포함한 9인의 위원 집단 체제 아래, 실무를 총괄하는 상임위원(장관급)과 사무처를 두고 있다. 사무처는 사무총장(장관급)과 사무차장(차관급)을 필두로 기획조정실, 선거정책실, 감사관 등 비대한 직제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산하에 17개 시·도 선관위와 249개 시·군·구 선관위, 그리고 세계선거기관협의회(A-WEB) 등 방대한 조직망을 거느린다. 이처럼 헌법기관이라는 독점적 지위와 거대 조직의 음지 속에서 온갖 비리와 특혜의 독버섯이 자라났다.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난 선관위의 부패상은 충격적이다.- 박찬진 전 사무총장, 송봉섭 전 사무차장 등 고위직 자녀의 ‘특혜 채용 및 세습 임용’ 비리- 전·현직 간부들이 법인카드로 유흥업소를 드나들고 골프 비용을 결제한 ‘횡령 및 사적 유용’- 내부 고발자를 조직적으로 따돌리고 징계권을 남용한 ‘조직적 은폐 및 보복 인사’- 감사원의 정당한 직무감찰을 ‘헌법기관의 자율성’을 핑계로 거부한 ‘초법적 감사 방해’- 북한 해킹 공격에 대비한 국정원의 보안 권고를 무시해 선거 시스템을 위험에 빠뜨린 ‘보안 불감증’ 등 일일이 열거하자면 지면이 모자랄 정도다.
<신동엽 초상화 앞에서 필자>
사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의 행적은 가히 가관이다. 그는 재임 중 호주와 뉴질랜드, 유럽 등으로 세 차례나 국외 출장을 떠나며 모두 배우자를 동반했다. 수천만 원에 달하는 비즈니스 클래스 항공료와 최고급 숙박비 등 부부의 체류비는 국민이 피땀 흘려 낸 세금으로 충당되었다. 외국 선거 참관을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정작 일정은 한국전쟁 참전비 헌화 등 외유성 관광으로 채워졌고, 사후 보고서에는 ‘부부 동반’이라는 사실조차 교묘히 숨겼다.
선관위 관료들은 선거인 수가 고작 120여 명에 불과한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로 3박 4일 출장을 떠나, 업무는 반나절 만에 끝내고 나머지 일정표는 아예 ‘공란’으로 둔 채 휴양지를 즐겼다. 유럽 연수 후 제출한 보고서가 네이버 블로그와 위키백과를 그대로 베낀 조잡한 표절이었다는 사실은 이 집단이 얼마나 부패가 심각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주권자의 신성한 투표용지를 인쇄할 돈은 아깝고, 자신들의 안락한 부부 동반 여행과 휴양지 골프채를 휘두를 돈은 마르지 않는 샘물이었던가.
이 모든 참상의 뿌리에는 대한민국 법원의 오만과 직무유기가 똬리를 틀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선관위 관료들의 도덕적 해이만을 손가락질하지만, 정작 이 거대한 부패 구조의 정점에 서서 통제해야 할 책임자들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의 법관들이다.
헌법상 중앙선관위원장은 현직 대법관이 맡고, 전국의 17개 시·도 및 249 개 시·군·구 선관위원장 역시 관할 법원의 법원장과 부장판사들이 맡는 것이 이 나라의 오랫동안 굳어진 관행이다. 선거 행정의 최종 책임자들이 거의 다 판사들인 셈이다. 재판이라는 본업을 핑계로 평소에는 출근조차 하지 않고 결재 서류에 도장만 찍던 비상근 법관 위원장들은, 선관위 조직이 세금으로 부부 동반 외유를 떠나고 휴양지에서 유람하는 동안 과연 무엇을 했단 말인가.
그들은 최고 엘리트라는 선민의식에 갇혀 권한만 누렸을 뿐, 조직의 썩은 고름을 도려낼 최소한의 감시조차 방기했다. 오히려 선관위 내부 관료들이 외부 감사를 피하려 할 때마다 ‘사법부의 독립’이나 ‘헌법기관의 자율성’이라는 신성한 방패를 빌려주며 거악을 방조했다. 이름만 대법관이고 판사면 무엇하는가. 꼭 우리 속담의 ‘허울좋은 하눌타리요, 개발에 편자 격’인 것을. 민주주의의 보루여야 할 사법부가 도리어 부정부패를 비호하는 ‘역시 껍데기’라는 이 서글픈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는가.
국민의 피땀 어린 혈세를 도둑질하며 외유를 즐기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 선관위의 관료들, 그리고 그들의 상전으로 군림하며 직무를 유기한 사법부의 권력자들이야말로 이 시대가 가장 먼저 청산해야 할 역겨운 ‘껍데기’들이다. 신동엽 시인은 이념과 탐욕에 물들지 않은 ‘아사달’과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하는 세상을 소망했다. 가짜와 허위의 껍데기들이 가고, 오직 주권자의 신성한 권리와 인간다운 온기만이 남는 세상. 이제 다시 외쳐야 한다. “껍데기는 가라! 국민의 주권과 오직 성결한 민주주의라는 알맹이만 남고, 특권과 부패의 껍데기들은 모두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