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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대란: 한가위 둥근 달을 보며, 그야말로 ‘개가 웃을 일!’ - 인천신문
“언론 노출은 처음이라서 카메라 앞에 이렇게 서는 것도 어렵습니다. 사실 언제 어디가 아파도 상급병원에서 VIP 대접을 받는 권력자들이 의료 현안에 대해서, 의료 정책에 대해서 결정한다는 게 화가 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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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71
의료대란을 보며-그야말로 ‘개가 웃을 일!’
“언론 노출은 처음이라서 카메라 앞에 이렇게 서는 것도 어렵습니다. 사실 언제 어디가 아파도 상급병원에서 VIP 대접을 받는 권력자들이 의료 현안에 대해서, 의료 정책에 대해서 결정을 한다는 게 화가 납니다. 저는 마취과 전공의였습니다. 저는 소아 마취를 전문으로 하는 의사를 꿈꿔왔습니다. 그렇지만 그 꿈을 접었습니다. 제가 드릴 말씀은 여기까지입니다.” 앳된 얼굴의 서울삼성병원 전공의 대표가 검찰에 출두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하는 말이다. 의료대란의 피해는 환자뿐 아니다. 의료인과 의료 교육, 관련 업계까지 일파만파 퍼져간다.
이러니 누구나 다 인정하는 한국 보수계의 원로 조갑제 선생까지 이런 말을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개를 좋아한다는 것, 그런 것은 뭐, 세상이 다 아는데. 과연 ‘그가 키우는 개만큼 인간 생명을 존중하는지’에 대해서 의구심이 될 정도입니다. 사실이 아닌 것이 들통이 났는데도 그것을 계속 들고나가면서 많은 국민들의 생명에 위해를 가할 때,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런 대통령은 존재 자체가 위험하니까. 국민들은 그럼 보고만 있어야 되느냐. 국민들이 윤석열의 교체에 대해서 이제 심각하게, 심각하게 생각할 단계에 왔다는 느낌을 더욱 갖게 됩니다.” 저 이뿐만 아니다. 보수논객을 자청하는 이들도 윤석열 정부에 등을 돌린 지 오래다.
다음 주면 추석 연휴다. 우리의 최대 명절이지만 국민들 마음은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응급실 가기가 하늘에 별 따기가 되어버려서다. ‘응급실 뺑뺑이’란 말이 올해의 고사성어가 될 판이다. 이런데도 총리란 자는 “‘응급실 뺑뺑이’ 속출에도 “의료 붕괴 걱정할 상황 아냐”라고 말한다. 그 대통령에 그 총리이다. 응급실에 오지 못하게 응급실 의료 수가를 급기야 350%까지 올렸다.
이러니 ‘그가 키우는 개만큼 인간 생명을 존중하는지?’와 같은 의문이 드는 것이다. 이래저래 개판인 대한민국, 개 이야기 좀 해보겠다. 위대한 개들의 이야기는 즐비하다. 개에 대한 속담도 여간 많은 게 아니다. 심심 파적으로 세어보니 한글학회에서 펴낸 <우리말 큰 사전>에는 어림잡아 52개나 된다. 대부분 상대의 허물을 꾸짖는 비유로 등장한다. 그만큼 우리와 삶을 같이하는 동물이라는 반증이다.
각설하고 18세기, 지금부터 3세기 전이다. 어전(語典)에 ‘애완견’, 혹은 ‘반려동물’이라는 명사가 없을 때다. 계층이 지배하는 조선 후기, 양반이 아니면 ‘사람’이기조차 죄스럽던 때였다. 누가 저 견공(犬公)들에게 곁을 주었겠는가. 그 시절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선생은 ‘개를 기르지 마라(不許畜狗)’하였다. 왜 그랬을까?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개는 주인을 따르는 동물이다. 또 개를 기른다면 죽이지 않을 수 없고 죽인다는 것은 차마 할 수 없는 일이니 처음부터 기르지 않는 것만 못하다(狗能戀主 且畜之 不得無殺 殺之不忍 不如初不畜也).”라고. 선생의 말눈치로 보아 ‘정(情) 떼기 어려우니 아예 기르지 마라’는 소리이다. 당시 개는 보신용이었던 시절 아닌가. 그러려면 키우던 개와 정을 떼야만 했다. 학문이라는 허울에 기식(寄食) 한 수많은 지식상(知識商) 중, 정녕 몇 사람이 저 개(犬)와 정(情)을 농(弄) 하였는가?
이렇게 미물 목숨도 걱정했던 선생이었기에 서얼(庶孼)을 가까이했고 벼슬이나 하려는 과거를 접고 만백성에게 실용되는 학문인 실학(實學)을 하였다. 선생을 연구해 보니 매우 여린 심성과 강인함을 동시에 갖고 불의를 보면 몸을 파르르 떠는 의협인(義俠人)이자 경골한(硬骨漢)이었다. 위선자들에게는 서슬 퍼런 칼날을 들이대는 단연(斷然)함을 보이다가도 가난하고 억눌린 자, 심지어는 미물에게까지 목숨붙이면 모두에게 정을 담뿍 담아 대하였다. 정녕 ‘개를 키우는 이’라면 저런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개를 키우며 사람에게 정은 주지 않고 폭력을 쓰며 생명에 위해를 가하고, 키우는 개가 ‘개사과’할 때나 필요한 개라면, 개 키울 자격이 없다. 작금의 의료대란, 개에 관한 52개 속담 중 하나만 가져오면, 그야말로 ‘개가 웃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