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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분과

박정찬 수필가 가온문학 등단작품 올립니다

작성자달토끼|작성시간19.03.15|조회수49 목록 댓글 3

2019년 계간 <가온문학> 봄호 신인문학상 당선작

 

 굿모닝, 숙자씨

박정찬

 

우리 부부는 부천 중동 먹자골목 뒤에 조그마한 기획 사무실 하나를 가지고 있다. 말이 사무실이자 구멍가게나 다름없다, 그런데 가게에 매일 커피를 마시고 가는 단골손님 한사람이 있었다. 그는 걸인 행색을 하고 하루에 한 두 번씩 들러 커피를 마셔도 되냐며 온다. 가게를 연지 벌써 10년이 넘었으니 참으로 오래된 인연이다.

어떤 날은 정수기 위 박스에 새로 사둔 종이컵 비닐 봉투가 다섯 개나 들어있는 것을, 들어오자마자 봉투의 비닐을 전부 뜯어 놓는다고 애를 쓴다. 자기 맘대로 전부 뜯어 놓고는 그중에 하나만 쓰고 간다. 나는 물건을 만지는 것도 맘에 내키지 않았지만 그가 만진 곳은 청결하지도 않을 것 같아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누가 뜯어 달라고 했나. ~’

속으로 이렇게 말하며 문을 나서는 그에게 눈을 흘기기도 한다. 그러던 중 검정색으로 된 초코파이나 빨강색은 싫어하고 포장지가 노란색으로 된 것은 좋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포장색이 다른 날은 그냥 휙 돌아서 나가버리고 절대로 안 마신다.

하루는 커피를 매일 다섯 개씩 가져가도 되겠느냐고 물어봐서 고개를 끄덕여 허락을 했더니 올 때마다 한웅큼씩 주머니에 넣고 씨익 웃으며 돌아선다. 늘 못마땅해 하는 나는 하루에 다섯 개면 한 달이면 커피가 한통이 된다면서 투덜대기도 했다. 그가 가지고 가는 커피가 마음에 안 들어 일부러 검은색 포장 껍질로 바꾸어 보기도 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 남편은 지나가는 그를 한사코 가게 안으로 불러들여 커피 한잔을 대접한다. 몇 해 전 여름, 퇴근길에 어두운 골목 끝에서 자리를 깔고 얼굴만 빼꼼이 내놓은 채 누워있는 그를 보았다. 자기의 홈빠라나 뭐라나 하며 말이다. 그때부터 우리 부부는 그를 숙자씨라고 별명을 붙였다.

우리 남편은 그런 숙자씨를 끔찍이도 챙긴다. 왜 그런 사람에게 마음을 쓰냐며 핀잔도 주고 가게 안으로는 들이지 말라고 했다. 손님들도 싫어할 거라고 말려도 도통 말을 들어주지 않는지라 잔소리도 그만 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부부는 점심으로 자장면을 먹고는 그릇을 밖에 내어 놓은 적이 있었다. 조금 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그가 비닐을 열고 남아있던 음식을 먹고 있었다. 남편은 정색을 하며 남이 먹다 남은 음식을 함부로 먹으면 세균에 감염된다고 야단이었다. 그리고는 그의 손에 얼마를 쥐어주고는 차라리 음식을 사먹으라고 했다.

그때부터 그는 우리가게 단골 고객이 되어 버렸다. 그가 가끔씩 배가 고프다며 가게를 찾아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컵라면이라도 같이 먹는 사이가 되었다. 그것도 착한 마음을 담아 다가올 겨울을 맞이해 올해도 얼어 죽지 말고 잘 견디라며 따끈하게 차를 건넨다. 추운데 돌아다니지 말고 복지기관에 들어가 살면 추위에 떨지 않고 좋을 텐데 하며 아쉬워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겨울이 돌아왔다. 남편은 퇴근 후 숙자씨 이야기를 또 꺼낸다. 그가 대단하다며 아직은 죽지 않았다고 기특해 한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거의 한 달이 다 가도록 그는 통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었다. 남편은 가게를 들어서자마자 놀라운 표정으로 호들갑을 떨었다.

여보! 여보~ 숙자씨가 밤사이 얼어 죽었나봐

그러면서 침통해 했다. 마치 무슨 큰 죄를 지은 죄인처럼 수심에 찬 그늘진 목소리였다. 가게에 온 다른 손님도 그 소식 들었다면서 어제 먹자골목에서 노숙자 둘이 죽었다고 했다. 어젯밤 무척이나 춥더니 견디지 못하고 술병을 옆에 놓은 채 쪼그리고 앉아서 술을 마시다 얼어버렸단다. 출동한 119 구급대가 시신을 운반해 갔다는 이야기다.

남편은 그가 추위를 잘 피하지 못했다고 슬픈 내색을 했다. 가까운 친척이나 되는 것처럼 가슴아파하는 내색은 진심어린 표정이었다. 그동안 무심히 지나가버린 시간들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남편에게 위로의 말을 했다.

설마~. 여태껏 잘 버텨온 숙자씨가 죽었을 리가 없어요. 다른 사람이겠지, 여보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그가 경력(?)이 있어서 그리 쉽게 죽을 인물은 아니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또 한 달여 남짓 지났을 때쯤 어느 날이었다. 아침 출근길에 그를 발견했다. 분명 죽었다고 생각했던 그가 저만치에서 고물을 들고 걸어오고 있는데 분명히 숙자씨였다. 우리 부부는 반가운 마음으로 그 앞에 멈춰 섰다.

이 사람아! 죽었다며 어찌 살아왔어!”

왜요? 무슨 좋은 일이 있나요?”

우리가 반가워 물어 보는 말에 그는 천연덕스럽게, 그리고 스스럼없이 말을 끝나기가 무섭게 쌩하니 바쁜 척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남편은 그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를 쳤다.

이봐요! 숙자씨 우리 가게에 좀 들러! 커피가 남아돌아간다니까!”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피식 나왔다. 언제 부턴지 하늘에서는 흰 눈이 살포시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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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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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최명선 | 작성시간 19.03.16 축하드리며 환영합니다. 계속 좋은글 부탁드려요.
  • 작성자우형숙 | 작성시간 19.03.16 <60인, 부천을 노래하다> 한영 번역시집을 출판해준 곳이군요
    출판사도 겸하고 있고 문예지도 발간하는 곳인데
    좋은 작품 잘 가려내는 심사위원단이 있고
    대표도 소신있는 대단한 분이셔요
    특히 인성이 반듯해요
    박정찬 선생님, 좋은 곳에서 등단하심을 축하드립니다 ~
  • 작성자최미아 | 작성시간 19.04.05 선생님
    꽃 만발한 봄날에 등단하셨네요.
    축하드립니다. 글도 잘 읽었습니다.
    숙자씨는 아직도 안녕하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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